[Opinion] 1992년, 보스니아 내전을 돌아보다. [영화]

글 입력 2021.08.23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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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an’s land‘는 무인지대, 즉 자연적, 인위적으로 한정된 구역을 의미한다.

 

영화 내의 ’무인지대‘는 중립적 상황을 상징한다. 이 영화는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대치라는 역사적 배경을 다룬다. 3년 8개월에 걸쳐 일어난 이 ’보스니아 내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일어났던 가장 처참한 민족 분쟁들 중 하나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개의 공화국들과 2개의 자치주로 구성된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이 세워졌다. 1991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함께 연방에서 탈퇴하였고, 그 뒤를 이어 마케도니아 또한 독립을 알렸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또한 ’신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창설하였다.


당시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보스니아계 48%. 세르비아계 37.1%, 크로아티아계 14.3%, 기타 0.6%로 이루어져 있었다. 구성원들의 인종, 종교와 문화가 다양했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독립을 선언했을 때, 구성원들의 독립에 대한 입장은 각기 달랐다.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는 독립을, 세르비아계는 세르비아가 이끌던 '신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에 남기를 희망하면서 내전이 일어난다.

 

*


영화는 어두운 밤, 길을 잃은 보스니아 군인들이 이동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길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날이 밝을 때 다시 이동하기로 결정하지만, 동이 틀 때에야 그곳이 세르비아의 참호 속임을 깨닫는다. 그들은 도망치지만 결국 모두가 목숨을 잃고, 치키만이 살아남는다.


정찰을 위해 나왔던 세르비아 군인 니노는 죽은 보스니아 군인 ’세라‘의 등에 지뢰를 설치한다. 치키는 빈 참호로 숨어 들어가지만, 니노와 맞닥뜨리게 되고 총으로 니노를 위협한다. 두 사람이 서로를 위협하고 있을 때, 죽은 줄 알았던 세라가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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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부비 트랩이 되어 움직일 수 없는 세라와, 서로를 위협하는 니노와 치키가 무인지대에 남겨지게 된다. 그들은 중립적 지역을 뜻하는 무인지대에 남겨지지만, 영화는 니노와 치키의 쉴 새 없는 충돌을 그린다.


그들은 영화의 중반에서는 서로 악수를 건네고 함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협력한다. 출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치키의 여자친구가 니노와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하지만, 전쟁의 오랜 아픔은 개인의 화해와 노력으로는 쉬이 치료될 수 없는 매우 깊고 어두운 영역이다. 풀린 분위기도 잠시, 위기가 닥치자 이들은 긍정적인 관계 수립을 단숨에 포기하고 상처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그들의 증오에는 이유가 없었다. 단지 상대가 보스니아 사람, 세르비아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총을 겨누고 칼로 찌를 수 있게 되는 극단적인 증오심이 생기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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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책임 소재를 두고 설전을 벌일 때, 승자는 언제나 총을 가진 쪽이었다. 치키가 총을 가졌을 때, 니노는 마지못해 세르비아가 전쟁을 먼저 시작했다고 인정한다. 니노가 총구를 겨눴을 때에는 치키 또한 별 수 없이 보스니아가 먼저 전쟁을 시작했다고 인정한다.


무력을 통해서 믿고 싶은 사실이 진실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것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고, 오로지 무력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게 하려는 모습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


무인지대에 갇힌 세 명의 군인은 옷을 벗고 흔들며 구조를 요청하지만, 보스니아에서도 세르비아에서도 아군인지 적군인지 확실치 않다는 이유로 구호를 유보한다. 결국 유엔 평화군이 평화로운 진압을 위해 개입하게 되고, 이슈로 인해 취재하려는 기자들이 현장에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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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마치 물 흐르듯 해결될 듯 보이는 희망적인 장면들이 이어지지만 유엔 평화군은 바로 눈 앞에서조차 이들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 총을 쏘기 직전, 치키는 자리만 지키고 서 있는 기자들과 유엔군들을 보면서 “너희들 돈 벌고 싶어? 비참하게 죽여줄까?” 하고 말한다.

 

결국, 치키와 니노는 총칼전을 벌이고 그들 모두 싸늘한 주검이 된다. 그들이 쓰러지자마자 기자는 카메라맨에게 “찍었어요?” 하고 묻는다. 인도주의라는 포장에 불과했던 언론의 상업적인 태도, 의식을 알 수 있었다.


지뢰 제거반이 도착하지만,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세라의 몸에 설치되어 있는 대인 지뢰 해체를 포기한다. 불안감에 몸을 떠는 세라를 아무도 위로하지 않는다. 결국 모두가 책임을 회피하고 그를 떠난다. 언론은 치키와 니노가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세라의 지뢰제거가 거의 끝났다는 거짓 방송을 내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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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을 방관하고 떠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군인들에게서 개인의 휴머니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전쟁 속의 비인간적인 시스템을 느꼈다. 극적인 장면을 포착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방관하는 기자들에게서 ’진실‘에는 관심이 없는 정의롭지 못한 언론의 모습을 보았다.

 

*


움직이면 지뢰가 터져서 죽고, 움직이지 않아도 결국에는 굶어 죽거나, 추위에 죽어야 하는 세라가 괴로운 표정으로 누워 있는 무인지대 속 참호의 참담한 모습을 바추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다니스 감독은 보스니아 국제 분쟁의 부조리함과, 유엔을 비롯한 국제 사회의 방관, 무능함을 비판하고자, ’진퇴양난‘의 상황을 그려 상황에 대한 참담함을 표현하고자 했으리라.


당시의 참상을 자료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나로서는, 겪어보지 않은 ’전쟁‘에 대해 감히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었고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책임을 인정하고, 서로 용서를 구하는 것은 상황을 이롭게 하는 한 가지 중요한 방안이다.

 

모두가 각자의 책임을 기꺼이 지려 했다면, 이유 없는 극단적인 증오심을 막고,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며, 합의하려는 의지를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

 


[이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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