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음속의 그늘에 한 줌의 빛이 깃드는 순간 -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展

후지시로 세이지의 작품세계
글 입력 2021.08.20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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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라는 말이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보면, 그림자는 어쩐지 부정적인 이미지로 쓰일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 그림자는 밝은 기운과 대비되는 무언가의 어두운 이면과 같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후지시로 세이지:빛과 그림자의 판타지展>에서의 그림자는 정반대의 이미지로 해석된다. 빛뿐만 아니라 그림자로 전하는 감동이 것이 얼마나 희망적이고 따듯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전시였다.

 

동양의 디즈니라 불리는 98세 카게에(그림자 회화)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의 전시를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6월 10일~10월 12일까지 진행되며, 희망, 사랑, 공생을 주제로 한 동심 가득한 작품들과 성화를 포함한 160여 점의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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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에 제작은 모든 것에 빛을 비추고 생명을 불어넣는 수작업이다”

 

후지시로 세이지는 1924년 도쿄 출생으로, NHK방송 개국 실험방송부터 방송콘텐츠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10대에 남다른 재능으로 일본의 독립미술협회전, 국화회전, 춘양회전, 신제작파전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그의 작품은 NHK 방송 개국 시험 방송에서부터 방송 컨텐츠의 큰 역할을 담당하며 대중에게 깊이 스며들었고 수많은 기업에도 사랑을 받아왔다. 수차례의 국가 훈장과 명성 높은 예술·문학상을 받았으며 98세인 지금도 폭넓은 작품 활동으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카게에는 내게 다소 생소한 장르였기에 전시를 감상하기에 앞서, 카게에에 대해 알아보았다. 카게에는 [카게 - 그림자], [에 - 그림] 이라는 뜻의 일본어로, 밑그림을 그리고 잘라 셀로판지를 붙이고, 조명을 스크린에 비추어 색감과 그림자로 표현하는 독특한 장르의 작품을 말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이팅 광고 매체의 모티브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어두운 전시장 내부를 들어가자마자 후지시로의 신비로운 작품세계가 나를 압도했다. 아크릴 판이 내뿜는 빛과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스토리, 다섯 군데에 설치된 수조와 모니터를 통해 끝없이 펼쳐지는 카게에 작품들이 몰입도를 높여주었다. 그 중에서도 처음 눈에 띄는 것은 그의 모노크롬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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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와 아기토끼와 고양이, 사진 출처-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2차 세계대전 직후 초토화가 된 도쿄에서 후지시로 세이지는 카게에 제작을 시도했다고 한다. 평화를 기원하고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잿더미가 된 들판 어디서라도 구할 수 있는 골판지와 전구를 사용한 빛과 그림자의 카게에. 새까만 실루엣과 빛의 절묘함이 대비된 심플한 작품은 감상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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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은 고양이 눈, 사진 출처-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그는 작품 중에는 고양이의 눈을 닮은 인물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그가 젊은 시절 처음으로 아사히 신문 일요일판에 작품이 연재되었을 때, 시를 써준 ‘기타바타케 야호’씨의 시 속에서 그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시그니처 캐릭터가 태어났다고 한다. 후지시로는 그를 새내기 시절 작품의 장난기 있는 감성에 가장 영향을 준 은인이며 스승으로 여겼다.


그는 1958년부터 5년 동안 한 잡지에 삽화를 담당하며, 모노크롬 제작을 통해 연재를 했다. 캐리커쳐의 예리하게 자른 선과 심플하고 세련된 등장인물의 묘사가 돋보인다. 컬러 작품뿐만 아니라 흑백 작품에서도 명암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여 묘사와 사실적인 표현이 느껴졌는데, 이는 밝은 빛과 어두운 빛의 밸런스, 오려붙인 재료, 질감의 투과율까지 치밀하게 계산하여 완성하였기에 가능했다.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뭇잎 하나, 눈송이 하나,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오려낸 흔적이 느껴진다.


한 분야의 거장이 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무언가 공통점이 있다. 심플한 듯 보이는 작품들도 들여다보면 치밀하고 집요하게 파고든 흔적이 보인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냉철한 계산을 통해서 만들어진 작품들은 우리에게 꿈과 희망, 따스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화려한 작품 뒤편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의 흔적, 그 대조적인 모습 또한 빛과 그림자와 닮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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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의 꿈, 사진 출처-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전시장에서 제공되는 오디오 도슨트를 들으며 전시를 감상하였는데, 대부분이 후지시로가 그린 동화에 대한 스토리의 내용들이었다.

 

그는 그림책뿐만 아니라 인형극과 그림자극에도 참여하며 일본 상업연극 역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과 ‘포도주병의 이상한 여행’, 후지시로 카게에 극의 최고봉으로 평가되는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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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로용 유토피아, 사진 출처-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그는 겐지 동화작가와 만나 처음으로 카게에 작가로서 눈을 떴다고 한다. “세계가 모두 행복해지지 않는 동안은 개인의 행복은 있을 수 없다”는 겐지 동화작가의 말에 가장 공감한다는 그는 평화에 대한 메시지도 놓치지 않았다.


전쟁을 경험한 그는 히로시마 원폭의 모습을 빛과 그림자로 그려내기도 하며, 기근으로 말라가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위해 카게에로 그림책을 제작해내기도 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언제나 희망의 메시지가 묻어났다.


 

"전람회를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만났던 것을 마음속에 간직해주세요. 그리고 문득 떠올려 주세요. 그때, 아름다운 빛이 마음속에 들어온다는 것을. 마음에 그늘이 있다면 밝은 빛으로 감싸 준다는 것을 빛과 그림자가 조화를 이뤄 마음에 평온을 주고 작은 꿈이, 커다란 희망이 삶의 기쁨으로 될 수 있기를. 또 만납시다."

 

- 후지시로 세이지

 


어두운 전시장에서 홀로 그가 만들어낸 빛과 그림자의 세계에 푹 빠져, 그가 그려낸 그림책의 한 귀퉁이로 스며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오랜 시간 그의 작품 앞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작품은 한 점의 그림으로도 동심으로 되돌려놓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재난으로 위로가 필요한 시기, 답답한 현재의 상황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다면 후지시로 세이지의 작품 세계를 잠시 들여다보면 어떨까. 마음속의 그늘에 잠시나마 한 줌의 빛이 깃드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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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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