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출판사와 저자의 사이에서 - 편집자의 세계

조율과 균형을 담당하는 중간자, 편집자의 삶
글 입력 2021.08.20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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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95km를 달리는 지구력 끝판왕 운동경기, 마라톤.

 

어마무시한 거리를 달려야 하는만큼 지구력 뿐만 아니라 정신력 또한 중요한데, 이런 고된 경기를 하는 선수들에게 페이스 조절은 필수이다. 그렇기에 마라톤에서는 선수들의 기록 증진을 위한 보조자, 일명 '페이스 메이커'가 존재한다.

 

페이스 메이커는 자신이 이끄는 선수와 한 팀이 되어 호흡을 맞춰가는데, 가장 우선된 역할은 선수의 바람 막이를 자처하는 것이다. 자신이 지원하는 선수 바로 앞에서 달려 선수로 가해지는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해 에너지를 덜 쓰게끔 한다. 그 결과 뒤 따라오는 선수는 자연히 체력을 오래 비축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이 마라톤 기록 갱신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페이스 메이커는 앞서가는 역할 뿐만 아니라 경쟁 선수의 스피드를 관찰하기도 하며 상대 선수를 자극하여 무리한 페이스를 뽑아내는 일을 담당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을 믿고 따라오는 선수의 상태를 끊임없이 관찰해야하며, 자신 또한 30km라는 긴 거리를 달리기 때문에 본인 페이스 조절 또한 필수이다.

 

이렇듯 마라톤 우승자들의 이면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페이스 메이커들의 헌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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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업계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보통 '책' 하면 '작가'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출판사'도 더불어), 사실 그 뒤에는 책이 잘 나올 수 있도록 여러방면으로 애쓰는 '편집자'들이 있었다.


이번에 읽게 된 <편집자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군분투하는 편집자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리고 <편집자의 세계>는 많은 출판물의 종류 중 잡지를 만드는 편집자의 이야기를 집중 취재한다.

 

<편집자의 세계>는 미국의 명편집자 15명을 소개한다. 그리고 각 편집자들이 어떻게 잡지에 발을 들여놓게 됐는지, 그들은 편집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어떤 소신과 신념을 지닌것인지 상세히 독자에게 알려준다.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마치 하나의 역사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 '역사'란, 잡지의 역사이기도 하고 편집자의 역사이기도 하다. 즉, 잡지를 논하는 데에는, 해당 잡지를 담당하는 편집자를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잡지 그 자체가 되기를 원했던 편집자, 아놀드 깅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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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콰이어>의 창간자이자 편집자인 아놀드 깅리치는 '잡지는 참다운 의미로 인간 바로 그 자체이다'라고 믿었다. 이는 잡지 또한 한명의 인간처럼 자신만의 개성이 있다는 뜻이며 편집자가 어떤 개성을 지니고 있냐에 따라 잡지 분위기가 결정된다는 의미이다. 또한 잡지의 성격을 바꾸려면 편집자를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를 품고 있기도 하다.

 

그런 신념을 지닌 깅리치였기 때문일까, 그는 자신의 분위기를 바꾸는데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에스콰이어>가 미국의 상류층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깅리치는 '<에스콰이어>는 부유한 미국인을 위한 잡지'라고 광고했고, 그에 따라 <에스콰이어>에 돈 많은 독자들을 위한 글, 이를테면 고급 레스토랑에서 그곳의 대표 메뉴를 즐기는 법, 바다 낚시의 즐거움을 느끼는 법 같은 글을 조금씩 실어 독자의 호응을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런 글을 잡지에 싣는 편집자답게 자신 또한 귀족적인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터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짧은 콧수염을 기르고, 최고급 트위드 양복에 깃털이나 조그만 장식을 단 모자를 애용했으며, 우아한 클래식 승용차를 타고 연대산 포도주를 즐겨 마셨다. 사무실에는 도금된 에스프레소 머신을 갖추어 손님들에게 블랙 커피를 권했고 세계 최고 바이올린 명기를 4대나 수집했다.

 

그는 <에스콰이어> 그 자체가 되기 위해 머리부터 발 끝까지 자신을 바꾸었고 '살아있는 잡지'가 되기 위한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에스콰이어>가 현재까지 가장 대표적인 잡지 중 하나로 손 꼽히고, 그가 명편집자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그의 혁신을 위한 노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편집자의 중요한 능력과 에티켓, 그리고 그들의 위치


 

세계 최대 단행본 출판사인 <랜덤하우스>의 설립자인 베넷 세르프는 모름지기 편집자라면, '출판사의 이익과 저자의 이익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언급한 페이스 메이커가 상대 선수와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해야했듯이(경쟁자에 비해 너무 느리지도, 응원하는 선수가 버거워할 정도로 빠르지도 않게끔) 베넷 세르프는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와 원고를 제공해주는 저자 사이의 마찰을 편집자가 적절히 중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출판사 <퍼트넘>의 사장인 윌리엄 타그는 출판인으로서 지켜야 할 12가지 에티켓으로 다음을 내세웠다.


 

1. 저자와 그의 원고는 편집자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다.

 

2. 저자에게 가능한 한 정중하게 대하라.

 

3. 모든 저자의 편지나 전화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신속히 응답하라.

 

4. 저자가 보낸 원고에 대한 회답을 필요 없이 늦춰서는 안 된다.

 

5. 저자에게는 정기적으로 판매 실적과 관계되는 소식들으르 보고해야 한다.

 

6. 책이 출판되면 원고를 저자에게 신속히 반환하라.

 

7. 인세에 관한 조항은 저자가 충분히 납득하도록 설명하라.

 

8. 저자에 관한 신문기사는 저자가 신속이 수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9.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저자를 점심이나 만찬에 초대하라.

 

10. 편집자는 항상 저자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그 저자가 마음으로 느끼고 있도록 해야 한다.

 

11. 저자와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12. 저자의 대리인을 대할 때도 존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편집자는 저자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저자에게는 가장 믿음직스러운 친구이자 오랜 기간 함께 하는 동반자가 바로 편집자이다. 위의 에티켓 목록에 보면 모든 에티켓은 '저자'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실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저자가 없으면 편집자도 없기 때문이다. 원고를 제공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것을 편집하는 능력이 있어봤자 뭘 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편집자는 철저히 저자와의 관계에 의존한다.

 

그렇지만 편집자는 동시에 출판사에 소속되어 있는 고용인이기도 하다. 출판사에서 출판할 책을 찾기 위해 부던히 원고를 받아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편집자의 또 다른 주요한 능력 중의 하나이다. 출판사의 이익을 위해 잘 팔릴만한 원고를 찾아내어 작가와 협상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출판사의 입김을 애둘러 전달해야 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저자와 출판사 사이에서 부던히 왔다갔다 하며 둘의 격차를 조금씩 좁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특징 때문에 편집자의 포지션은 어찌보면 조금 모호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저자의 활동에 크게 관여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면서 출판사의 방침에 적극적으로 따르는 사람이니 무어라 확실히 정의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불확실한 특징 때문에 편집자는 대중들의 스포트라이트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중간자'의 삶에 대하여



우리 세상의 '중간'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다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생산자와 소비자 중간에 위치한 운반자, 가수와 안무가 사이에 위치한 백댄서, 마라톤 선수와 감독 사이에 위치한 페이스 메이커, 예술가와 관객 사이에 위치한 전시 기획자 모두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직종이자 소속이 모호한 직종이다. 그들은 고객의 행복을 위해, 가수와 마라톤 선수의 발전을 위해, 관람가의 만족을 위해 발에 불이 나도록 활동을 하고 있지만 쉽사리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잊혀지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쉽게 잊혀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존재 또한 쉽게 망각하고 만다.

 

하지만 뭐라 규정할 수 없는, 그런 '중간'이 있기 때문에 우리 세상은 원활히 돌아갈 수 있다.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무수히 많은 중간자들이 있기에 우리는 조금 더 편리한 생활,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고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 그들의 작업물을 체험할 수 있다.

 

페이스 메이커가 마라톤 선수를 묵묵히 이끌고, 편집자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자를 지원하고 있듯이 이 세상 모든 중간자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비춘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떠올려보았다. 아마 내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중간자에 포함되어 이 세상에 보여지는 결과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리라.

 

우리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있는 사람들을 다시금 상기하며 그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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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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