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책의 나라를 구하러 온 구원의 천사를 찾아서 - 편집자의 세계

글 입력 2021.08.1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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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내 책: 내게도 편집자가 생겼습니다>라는 에세이에서 예순 번이 넘는 투고 끝에 출판이라는 꿈을 이룬 작가 이경은 자신의 글을 책으로 완성해 준 편집자라는 존재를 ‘구원의 천사’라고 부른다. ‘구원의 천사를 찾아서’라는 말은 저자가 <난생처음 내 책> 원고를 투고할 당시 지었던 가제로, 하마터면 편집자가 내용도 확인하지 않고 패스할 뻔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다행히 편집자는 인내심을 발휘해 내용을 확인했고, 그 책은 위와 같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나 역시 저자가 지은 가제보다 내용도 쉽게 짐작되고, 소박하면서 진솔한 느낌이 담긴 최종 제목이 이 책에 훨씬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모호한 가제가 마냥 싫지만은 않다. 작가 지망생으로서 거듭되는 거절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내 글을 책으로 만들어 주는 편집자를 ‘구원의 천사’로 여기는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된다.

 

공교롭게도 <난생처음 내 책>을 어느 정도 읽었을 무렵 <편집자의 세계>를 읽기 시작했다. ‘편집자’에 대해서 작가의 입장에서 쓴 책과 편집자의 입장에서 쓴 책을 같이 읽는 건 꽤나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아무리 위대한 글이어도 편집자가 없다면 독자에게 닿을 수 없다. 두 권의 책을 읽는 동안 작가에게는 첫 번째 독자로, 독자에게는 숨은 창작자로 존재하는 이 편집자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었다.

 

<편집자의 세계>는 이렇게 대단한 편집자를 사람들이 인정해 주었으면 하는 한국 출판 1세대 편집자 고정기의 염원을 담아 만들어진 책이다. 그는 미국 문화의 황금기를 이끈 15인의 편집자를 소개하며 대중들이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접하는 데 “활자 매체의 중매자이고 연출자”인 편집자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려준다.

 


표지(평면)_편집자의 세계.jpg

 

 

맥스웰 퍼킨스, 아놀드 깅리치, 비넷 세르프, 드윗 월레스…. 목차에 나오는 모든 이름이 생소했다. 그렇지만 <에스콰이어>, <뉴요커>, <코스모폴리탄>과 같은 잡지 이름이나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허먼 멜빌과 같이 그들과 함께 작업했던 작가의 이름은 너무나 익숙했다. 어찌 모르겠는가, 미국은 물론 전 세계 문화를 형성한 이름들인데.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는 순간 그 곁엔 언제나 위대한 편집자가 있었다.

 

전 세계 수많은 편집자 중에서 이 책은 미국, 그것도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한 사람들 위주로 다뤘다. 책을 읽다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활자의 힘을 믿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바이킹 프레스의 편집자 파스칼 코비치와 그의 운명적 파트너 존 스타인벡의 이야기를 보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스타인벡의 다음 소설 <달은 지다>는 출판 전 예약 판매만 6만 5000부가 팔렸고, 출판된 이후 다시 10만 부가 팔렸다. <통조림 공장가>는 예약 판매만 9만 부였고 출판 후 그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P.287

 

 

앞장에는 이보다 더 화려한 성공 신화가 기록되어 있다.

 

 

<분노의 포도>는 출판되자마자 큰 사회적 선풍을 일으켜 일 년도 가지 않아 43만부나 팔렸고, 1939년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제1위를 기록했다. 1940년에는 퓰리처상을 받았고 독자 투표로 1939년도 베스트셀러 중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기도 했다.

 

-P.285~286

 

 

20세기 초반은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예술과 문화가 창조되는 시기인 동시에 아직 디지털 광풍에 휩쓸리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말은 즉 활자 매체가 대중문화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었던 때였다는 뜻이다. 그 시대에 맞게 15인의 편집자들이 만든 책은 모두 사회의 통념을 깨부수거나 새로운 취미를 알려주는 등 어떤 방식으로든 당시 대중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그들의 성공 신화를 단순히 시대를 잘 만난 덕이라고 말할 순 없다. 시대를 잘 만났다는 건 그 시대를 예민하게 읽어냈다는 뜻이다. 작가와 달리 편집자는 언제나 대중의 취향을 우선시해야 한다. 시의적절한 기획으로 대중의 마음을 저격하고 새 시대를 만들어나가는 그들이 너무나 대단해보였다. 물론 그들에게도 대중에게 외면 받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편집을 향한 집념을 꺾을 수는 없었다. 이들의 열정을 보니 과연 나는 시대의 흐름을 읽으려고 했는지, 내 일에 얼마나 진심으로 임하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에 딱 하나,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 무렵 펠커는 레슬리 울드리치를 알게 되어 결혼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이혼했다. 두 번째 부인은 할리우드의 신인 배우였던 파메라 티핀으로 가련한 얼굴에 육체미가 좋았던 배우였다. 펠커는 이 파메라 티핀과도 <뉴욕>을 창간한 1년 후인 1969년에 이혼했다.

 

-P. 251

 

 

‘가련한 얼굴에 육체미가 좋았던’이라는 수식어가 굳이 필요했을까? 이 책의 편집자는 왜 이 문장을 수정하지 않았을까? 등 여러 생각이 교차했던 부분이었다. 책의 구성 자체가 한 사람의 생애를 톺아보는 구성이기 때문에 가정에 대한 언급도 필연적이다. 그렇다고 독자가 펠커의 두 번째 부인이 가련한 얼굴에 육체미가 좋았다는 것도 꼭 알아야 할까?

 

다른 책이었다면 별 생각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은 한국의 1세대 편집자가 편집자에 대해 다루는 책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출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니 독자로서 눈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세상은 지금도 바뀌고 있구나. 시대를 읽고 작가와 독자를 잇는 편집자의 역할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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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서울국제도서전에 갔을 때 ‘출판의 위기’라는 말이 아무리 쏟아져도 여전히 책을 사랑하고 열심히 만드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십 년 전 열과 성을 다해 일했던 그들처럼 이 책 <편집자의 세계> 역시 많은 이의 노력을 거쳐 탄생했을 것이고, 지금도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수많은 편집자가 책 한 권을 완성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다.

   

15인의 편집자 중 고난과 역경이 없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 역시 한 명도 없었다. 과도한 업무량도, 판매 부수에 대한 스트레스도 책에 대한 애정으로 승화시키는 이 못 말리는 구원의 천사들 덕분에 디지털 시대에 태어나서도 활자로써 사상과 문화를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독자로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열심히 읽었다. 책에 기꺼이 헌신한 당신들의 삶을. 앞으로도 꾸준히 책을 사랑하는 것만이 독자로서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보답일 것이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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