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진아의 세계 [음악]

글 입력 2021.08.16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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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이진아


 

[꾸미기][크기변환]이진아.jpg

 

 

TV 프로그램 ‘케이팝스타’를 즐겨보던 시절이 있었다. 이 작은 나라에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놀라웠다. 자기만의 음악 스타일을 멋지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는 건 큰 즐거움이었다. 특히 프로그램 초반, 첫 오디션이 진행되는 회차가 가장 재미있었다. 오늘은 또 어떤 놀라운 사람이 등장할까 궁금했다.


수많은 첫 등장 장면 중, 단 하나를 꼽으라면 ‘이진아’였다. 유려한 피아노 반주가 시작된 순간이 선명히 기억난다. 심사위원들의 얼굴 위엔 부드러운 미소가, 입 밖으론 작은 감탄이 새어 나왔다. 소파에 늘어져 있던 나도, TV 화면에 온 정신을 빼앗겨 자세를 바로 했다.


피아노에 이어 아이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들어본 적 없는 투명한 목소리였다. 너와 함께하면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니, 잠시 멈춰 달라고 말하는 순수한 가사와 하나처럼 어우러졌다. 방송 즉시 사람들은 환호했다.

 

 

 

다시 만난 이진아


 

케이팝스타 이후, 나는 다른 음악들에 빠져들었다. 이진아의 노랫말처럼,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렀다. 나에게 이진아라는 이름은 서서히 기억의 뒤편으로 사라졌고, 프로그램 종료 후 이진아가 어떤 음악을 계속해왔는지 알지 못했다.


올해 봄, 이진아를 다시 만났다. 어떻게 다시 접했는지,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이었는지,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의 추천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만나 느낀 기쁨은 분명히 남아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음악을 비로소 만난 느낌이었다.


이진아가 천천히, 꾸준히 내온 음악을 그때그때 누리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혼자서 시간을 되돌려 한 곡, 한 곡 들어보는 과정이 즐겁고 소중했다. 너무 많은 고민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던 봄의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난 그 누구에게도 편하지 않아


 


 

 

다시 만난 이진아의 세계에 한참 빠져있게 만든 곡, ‘편하다는 건 뭘까’. 한 곡 반복 재생을 해 두고 가사를 한참 따라 읽었다. 오랜 시간 가만히 앉아있어야 했던 버스에서는 너무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생각은 나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내용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 세상 앞에 떳떳하게, 그럴듯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보기에 멋있어 보이는 일,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게 어려웠다. 둘 사이를 오가며 고민하다 보면, 자꾸만 세상이 바라는 내 모습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편하다는 건 뭘까’의 가사를 반복해 읽으면서,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바깥의 규칙과 기준을 잠시 내려놓았다. 내가 나에 대해 고민해 답을 내는 것인데, 너무 어려웠다. 나만 이렇게 뾰족하게 미래를 그리지 못하고 있는 걸까 조바심이 났다.


 

내 안에 있는 벽은 뭘까

내가 꼭 숨겨놓은 건 뭘까

어떤 게 들어있을까

매일 난 문제 하나 없이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왜 이런 쓸데없는 생각 하는지

너무 외로운 걸

난 그 누구에게도 편하지 않아

 

- 편하다는 건 뭘까 中

 

 

그런데 이진아도 그렇다고 말했다. ‘난 내가 내 맘도 잘 모르네’라고 노래했다. 누군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산다는 데 위로를 받았다. 그럼 나의 고민도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어지는 노랫말에도 깊은 공감을 느꼈다. ‘매일 난 문제 하나 없이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내 마음과 같아 한참을 쳐다보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잘 터놓는 타입이 아니다. 나의 고민과 문제는 나만의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슬픈 마음이 들고,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오히려 씩씩한 척을 한다. 별것 아니라는 양, 걱정 없다는 듯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자꾸 그렇게 말하면, 바람이 현실이 될 것이라는 마음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 외로웠다. 너는 잘 흔들리지 않는구나, 너처럼 작은 일에 동요하지 않고 꿋꿋하고 당당하게 살고 싶어,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뒤돌아선 길에 혼자 마음을 쓸어내리고, 토닥이던 날들이 생각났다. 사람들 앞에선 절대 울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으로 내가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리던 것은 홀로 집에 가던 길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감정은 남는다. 과거의 지친 마음들을 이진아의 음악이 위로해 주었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도, 말해본 적이 없어 망설이던 마음도. 누구에게도 편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노래를 들어보면 좋겠다. 나만 그렇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지까지 아무것도 한 게 없어


 


 

 

‘편하다는 건 뭘까’에 이어 가사 한 줄, 한 줄 공감 가지 않는 부분이 없는 곡, ‘여기저기 시끄럽게’다.


나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해서 끈기 있게, 깊이 있게 탐구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취업이나 대외활동을 위한 면접에서도 종종 들었던 질문이 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참 다양한 활동을 해왔는데 가장 좋아하는 분야를 하나 꼽자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다.


처음 질문을 들었을 때, 정곡이 찔린 느낌이었다. 나는 그때그때 흥미에 따라 하고싶은 것들을 하는 성격이고, 솔직히 앞으로도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 이런 바람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너무 일을 많이 벌여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게 문제다.


무엇보다 어떤 것에 흥미가 생기면 혼자 묵묵히 할 줄을 모른다. 이게 좋아, 이번엔 저걸 해볼래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말하고, 시간이 흐른 뒤 잘하고 있냐는 질문을 받으면 이미 그만둔 지 오래라 머쓱해지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여기저기 시끄럽게 떠벌리고 다녔는데

여기저기 여기저기 여기저기

그런데 나는 한 게 없어

여지까지 아무것도 한 게 없어

나 정말로 보여주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

오늘도 나는 한 게 없어

아직까지 아무것도 한 게 없어

나 정말 여기저기 여기저기 다

떠벌리고 다녔는데 

 

- 여기저기 시끄럽게 中

 

 

그래서 ‘여기저기 시끄럽게 떠벌리고 다녔는데, 사실 나는 한 게 없어, 보여주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라는 가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렸을 적부터 책 한 권을 완성하기 위해, 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하나의 꿈을 위해 인생을 바친 위인들을 동경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취미도, 바람도, 꿈도 많으면 인생이 재미있지만, 인생이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저기 시끄럽게’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해낸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이진아에게 말을 건네는 유희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기저기 이진아를 자랑하고 다니고, 부러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한 게 없다니 의아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자기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는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이 유희열의 눈에는 보인다고 말한다.


내가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 열심히 인지, 몰두하는지 나에게는 잘 보이진 않는다. 가끔 주위 친구들의 말을 듣고 그래도 나 꽤 노력했구나 느낄 때가 있었다. 내가 친구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친구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발견하고, 그 사실을 말해 주고, 응원해 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서로서로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벽이 날 자꾸 가로막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건 힘들다. 일을 해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온갖 어려움 탓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시작을 어렵게 하는 게 있다. 바로 시작하기 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하고 자꾸 피어나는 고민이다.


세상에 많은 자기 계발서, 명사의 강연,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에서는 같은 이야기를 한다. 하지 않고 후회하기 보다, 실패하더라도 일단 해보라는 말이다. 멋지고 진취적인 자세다. 들을 때마다 역시 도전적으로 살아야지 다짐하지만 솔직히 쉽지 않다.


안정과 도전, 때때로 어느 길목으로 가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마음이야 이미 도전의 길을 걷고 있지만, 자꾸 걱정이 된다. 이 길을 이전에 택했던 사례가 있나? 실패하면 다른 대안이 있나? 투입해야 하는 비용과 시간은 어떻게 되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도 고민을 거듭하다 안전한 길을 택해본 적이 있다. 그래서 후회해본 적도 있다. 반대로 도전을 선택해보기도 했다. 그건 또 걷는 길 중간중간 두려움, 불안과 싸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정답은 없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길이라면 한번 싸워봐야 하지 않을까.


이진아도 자기만의 싸움을 해온 사람 같았다. 계속 따라오는 고민들을 모른 체하고 싶고, 결심하고 하려 하면 나를 막는 벽이 있다고 노래를 들려줬다.

 

 

놀고만 싶어 모른 체 하고 싶어

튀어나오는 고민해야 될 것들

눕고만 싶어 멍만 때리고 싶어

튀어나오는 고민해야 될 것들

저리 가라고 해도

계속 따라오는 고민해야 될 것들

결심하고 하려 하면

나를 막는 벽이 있네

이러지 좀 마

그만 좀 해

 

- 나를 막는 벽 中

 

 

그런데 벽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이 곡에선 이상하게 힘이 난다.

 

가사와 멜로디가 묘한 대조를 만들어낸다. 가사는 두려움에 한창 시달리고, 걱정에 휩싸인 사람의 이야기인데, 멜로디는 웅장하고 거침없이 뻗어 나간다. 둘의 대조 속에서 가사의 마지막 질문 ‘어떻게 하면 좋을까나’에 대한 답이 나온다.


벽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는 모른다. 변함없이 나를 가로막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 벽을 두드려도 보고, 몸으로 힘껏 부딪혀 보기도 하고, 언젠가 무너질 것임을 믿고 계속 싸워보자. 이게 바로 우리 모두에게 필요했던 답이 아닐까.

 

 

 

음악에는 힘이 있다.


 

소중히 듣는 이진아의 세 곡을 소개했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이어나가듯, 이진아도 그의 자리에서 음악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저마다 고민도, 걱정도, 꿈도 모두 다 다르지만, 음악 안에서는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그 감정의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게 표현하는 이진아의 곡을 더 많은 사람들이 듣고 위안과 기쁨을 선물받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이진아도 오래오래 음악 활동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음악에는 듣는 사람도, 들려주는 사람에게도 전해지는 힘이 있다.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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