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생 전시를 만나다 - 앨리스 달튼 브라운 展

글 입력 2021.08.14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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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햇볕과 갑작스러운 소나기의 만남으로 요즈음 꽤 자주 무지개가 일상에 선물처럼 다가온다. 숨이 트이는 하늘색 배경에 파스텔로 그린 것 같은 알록달록 무지개 색깔이 퍼지면 누구나 동심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우와' 감탄하며 감상하고, 사진을 예쁘게 찍어본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무지개를 붙잡고 싶어 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무지개를 보면서 바쁜 일상 속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핑계를 만들 수도 있어 자꾸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무지개를 만나길 바랄지도 모르겠다. 갑작스러운 선물인 무지개를 바라보는 것처럼, 이 전시회 속 그림들을 바라보았다. 언제 잊힐지 모르는 이 온화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공기를 꾹꾹 내 마음속에 담았다. 그리고 고된 생활에서 이 작품들이 내 옆에 와주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화가 앨리스 달튼 브라운


 

이번 전시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 화가의 회고전이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화가로, 뜻깊게도 작가 인생 최초의 회고전을 이 한국, 서울에서 열게 되었다. 전시를 다 감상하고 나니 첫 회고전을 내가 만나봤다는 사실에 큰 설렘과 영광을 느끼기도 했다. 그만큼 전시의 작품들은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alice dalton brown (2).jpg

 

 

이 회고전에서 유화를 주로 그리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약 80 여 점의 인생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대형 유화도 많으며, 파스텔화, 그리고 특별하게 습작까지 전시되어 있다. 평소 화가가 그림을 구상할 때, 어떤 식으로 시작하고 진행하는지 알 수 있었던 여러 습작이 있어 더욱 앨리스 달튼 브라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녀의 시선은 크게 4가지로 변해간다. 첫 번째로는 건물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초반 작품들에는 그림자만으로 빛의 움직임에 따른 풍경의 변화를 그려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녀는 건물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건물의 외벽과 바로 앞의 정원이나 풀밭 등을 그려낸다. 세 번째로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장면을 포착한다. 집에서 창문 밖을 내다보는 시점의 작품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완전한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는데 시선의 초점을 두었다. 자신에게 영감을 준 여러 공간의 모습들을 포착해 부분 조합해 새로운 세계의 안정된 모습을 창조해낸다.

 

 

가로형 02_Poster-01.jpg

 

 

이 전시는 총 4부로 그녀의 작품 인생을 나누어 구성되었다. 1부 빛과 그림자, 2부 집으로의 초대, 3부 여름 바람, 4부 이탈리아의 정취로 그녀의 시선이 어디로 변화해갔는지 알 수 있는 섹션 구분이었다.

 

섹션별로 분위기도 다르고, 그녀의 화풍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찾을 수 있으며 특히 추천 음악을 재생해 음악과 함께 공감각적으로 더욱 더 풍요로운 작품 감상을 할 수 있어 더욱 작품이 와닿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Invitation to the House


 

이 섹션은 마음의 안정을 주는 색감의 향연이었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1979년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주택들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그에 대한 결과물이기도 하며, 뉴욕 근교의 웨스트필드 저택을 시작으로 주택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같은 장소에서 빛이 이동하는 방향에 따라 그림을 그리면서 연습했고, 하나의 주택에서도 다양한 구도로 작품을 그려내는 실험을 하며 가장 마음의 안정을 주는 구도와 작품을 완성해냈다.

 

이 섹션의 작품들을 보며 너무나 아름다운 색감들 덕분에 힐링하는 기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양식의 주택들을 파스텔과 유화로 그려냈기에 더욱 신선함이 배가 되어 다가왔다. 본작과 이 작품을 탄생시키기 전 수많은 노력 중 일부였던 습작도 함께 있어 작가가 습작을 그리면서 어떠한 생각과 캔버스 위 상상을 했을지 함께 떠올려보았다.

 

 

여름날의 휴식처

 

여름날의 휴식처.jpg

 

 

이 작품 속 주택은 코넬대 캠퍼스 근처 학생 기숙사이다. 그림자가 깃든 기둥은 푸른 빛을 나타내고 반사된 빛이 닿은 기둥은 황금빛으로 표현했다. 설명문을 읽으며 처음으로 학생 기숙사인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학교의 기숙사는 소수의 새로 지어진 생활관 빼고는 무너질 듯한 주택이기에 내가 만나왔던 기숙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 놀라기도 했다. 이 <여름날의 휴식처>를 완성하고 나서 그 이후에 <수풀이 있는 휴식처>도 완성해내 이 주택을 바라본 다채로운 화가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시각을 만나볼 수 있었다.

 

 

오후의 고요함

 

오후의 고요함.jpeg

 

 

이 작품은 커튼이라는 소재에 매료된 화가가 가상으로 구상한 풍경이다. 집 현관에서 보이는 거리의 모습을 빼고 대신 물가를 그렸다. 그렇게 집 내부에서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만나게 되었다. 이 작품을 통해 앨리스의 대표작인 여름 바람 시리즈 다음 섹션으로 나아가게 되어, 그 구분의 마지막과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름 바람


 

3번째 섹션은 2000년대부터 그려온 대표작 여름 바람 시리즈이다. 실내로 시야를 옮겨 더욱 집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친구네 집에서 우연히 커튼이 흩날리는 모습을 보았고 이 광경에 매료되어 가구를 없애버린 그 집의 풍경을 <여름 바람>으로 제작하였다. 바람이 불어 커튼이 휘날리는 모습에 초점을 둬 다양한 곳에서 이 휘날리는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8) 여름 바람, Summer Breeze.jpg

©Alice Dalton Brown

 

 

색다른 점은 그녀가 반투명 커튼을 구매해 여기저기 집 창문에 걸어보며 그 풍경들을 눈에 담아 조금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 덕분에 커튼이 걸린 베란다와 그 밖 풍경은 호수나 다른 자연을 합성하여 유토피아에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창조해냈다.


여러 작품을 지나가면서 왜 마음의 안정이 유독, 이 전시회에서 많이 드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깔끔한 직선으로 구성된 인공적인 건축물들의 안정되고 차분한 색깔들이 날 편안하게 만든 것 같다.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건축물들의 흰 색상들의 경계와 분홍색, 생명력을 입은 초록, 살아있는 하늘색들이 정말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커튼은 바닷물결처럼 생생하게 흔들린다.

 


황혼에 물든 날


7) 황혼에 물든 날, Long Golden Day.jpg

©Alice Dalton Brown

 

 

이 작품 또한 그녀가 항상 커튼을 가지고 다녀 영감을 받은 장소에 커튼을 추가하며 탄생한 작품이다. 자신의 여동생 집에 넓은 통창 베란다에 커튼을 달고 부모님의 별장이 있던 카유가호수를 상상으로 더했다.


그녀의 작품을 보며 직선과 곡선의 조화로 긴장감, 에너지가 탄생하는 것들 직접 느꼈다. 인공물과 자연, 직선과 곡선, 그 이중성들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색감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주로 건축물의 직선이 더 크게 그려졌고 이를 바탕으로 사이사이 자연이 피어오르는 광경이다. 4부로 넘어가다 보면, 이 구도가 살짝씩 바뀐다.

 

 


이탈리아의 정취


 

이탈리아 시리즈와 이에 영감을 준 과거 작품이 모여있다. 그녀는 창문에서 보이는 건물의 창, 외벽의 빛에 집중하며 창문과 문은 다른 사람의 주거지이자 개인의 삶이 녹아들어 이 모티프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4부 섹션에서는 창문과 문에 비치는 빛을 중심적으로 작품 감상을 진행했다.

 


등나무가 있는 안뜰


14) 등나무가 있는 안뜰, Patio with Wisteria.jpg

©Alice Dalton Brown

 

 

이탈리아 토스카나 건축 스타일을 표현한 작품으로, 직선보다 자연의 곡선이 더 많이 등장하고 작품을 보는 시야에서 직선보다 곡선이 크게 잘 보인다. 그러면서 이전작품보다 생명의 역동성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

 

다양한 스타일로 자연과 건축물, 우리 곁에 흔히 보이는 주택과 그 창문 사이의 광경을 포착해낸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전시였다. 그녀의 화가 인생 80여 점의 작품과 특별히 이 전시회를 위해 제작한 세 점 정적인 순간, 설렘, 차오르는 빛도 함께 할 수 있어 소중한 시간이었다.


동생의 학교 방학 숙제를 위해 전시회를 찾던 중, 큰 기대 없이 방문한 전시회였다. 하지만 그 어느 전시회보다 나의 마음을 적셔주었다. 여기저기 나의 역할에 맞는 임무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 바쁘게 일상을 살면서 약간은 무디어졌던 문화예술의 힘에 대한 감각이 다시금 깨어났다. 진심으로 너무나 추천하고 싶은 전시회였다. 어떤 화가 일평생 그린 작품을 천천히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 받았고, 그 시간 속에서 마음을 정제하였다. 유럽과 미국의 모습을 그려냈지만, 오히려 나는 온화한 신라의 미소가 떠오르기도 할 만큼, 작품들이 풍부하게 깊이 다가왔다.


무엇보다 자극적이고 강렬함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매체, 예술작, 콘텐츠들이 판치는 와중에 이렇게 은은하게 나의 감성을 적시는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화가 앨리스 달튼 브라운이 평생 캔버스 위에 더 나은 구도, 더 나은 색감, 더 나은 대비를 찾기 위한 노력 덕분에, 나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이 작품을 보면서 느끼고 상큼하고도 안정된 마음을 곱씹으면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일상에 무지개를 보면 반갑고 오늘 하루의 행운이라고 생각하면서 좋아하는 것처럼, 이 전시도 지쳐있던 나에게 활력을 준 의외의 전시였다. 나의 인생 전시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 많이 만족스러웠고 꼭 부자가 되면 앨리스 달튼 브라운 선생님의 작품들로 집을 꾸미겠다고 다짐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컬쳐리스트 이수진.jpg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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