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갈등을 통해 우리가 쟁취한 것 : 모던걸 백년사 [공연]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
글 입력 2021.08.0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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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 백년사 포스터.jpg


 

시놉시스

 

1920년 경성에 사는 경희는 어렸을 적 오빠의 지지로 이화학당에서 신식교육을 받고, 유학까지 다녀온 신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잡지에 여성 해방을 주장하는 글을 기고하고 이혼을 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조선 사회의 비난을 한 몸에 받는 '모던걸'로 불린다.

 

2020년 서울에 살고있는 화영은 성적에 맞춰 간 대학을 다니며, 주변의 성화로 적성에도 맞지 않는 교직 이수를 하는 중인 '착한 딸'이다. 주변에서 말하는 "예쁘고 학벌 좋고 직업도 받쳐줄테니까, 걱정없네~"라는 말이 어쩐지 불편한 화영은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동아리 연극 <인형의 집>에 참여한다.

 

세간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경희는 조신의 여성들을 깨닫게 만들기 위해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을 번역하기로 마음먹는다. <인형의 집>을 읽으며 화영은 점차 용기를 내기 시작하지만 또 다른 벽에 부딪히게 된다.

 

1920년의 모던걸과 2020년의 페미니스트가 각각 자신들의 꿈과 사회의 요구, 비난 사이에서 갈등하며 싸워가고 그들의 삶이 교차된다.

 

 

여성 창작집단 하이카라의 창작 뮤지컬 ‘모던걸 백년사’가 2016년 대학로 봄날 아트홀에서 초연을, 2018년 대학로 해오름 예술극장에서 재연을 올린 후, 2021년 세 번째 막을 올렸다. 나라 전체가 백래시(사회 정치적 변화에 따라 대중에게서 나타나는 반발심리)의 흐름에 휩쓸린 2021년, 지금의 개막이 시기적으로 아주 적절해 보인다.


단체명 ‘하이카라’는 개화기 당시 서양식 공교육을 받는 사람들을 칭하는 은어였다. 그 중 ‘하이카라 여성’은 교육을 받은 신여성을 의미하고, 소위 외국물을 먹은 여성을 비꼬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 단어는 배운 여자들, 생각하는 여자들에 대한 경멸과 무시, 혐오를 그대로 담고 있다. 이에서 출발한 창작집단, 하이카라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지금까지 묵살되었던 우리 모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모던걸 된장녀 양공주 김치녀 꼴페미

너희가 말하는 요즘 여자”


 

<모던걸 백년사>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시작부터 흠칫 놀라게 한다. 실제로 만연한 표현들을 그냥 전달받아 듣는 것 뿐인데도 그랬다. 이렇게 시작하는 극의 첫 번째 넘버에서는, 그 제작의도가 느껴진다. 극 전체는 오프닝과 같은 방식으로 일상에 뿌리내린 혐오를 아주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우리는 그러나 현실에서 그저 중립을 지키는 척 사람들도 많으며, 때로는 혐오가 야비한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는 것을, 또는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이가 어떤 면에서는 꽤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혐오를 나열하는 방식의, 그래서 비교적 절대 악이 명확히 드러나는 단순한 플롯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이 극이 가지는 노골적인 제시 방식이 우리가 가진 모든 물음들에 세세하게 답을 해 줄 수는 없겠다. 그러나 어쩌면 꾸밈의 말들 없이 전해지는 실재하는 혐오의 언어의 나열이 오히려 우리의 상황을 관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극에서는 1920년의 모던걸 나경희와 2020년의 페미니스트 이화영을 계속해서 교차해가며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이 지점에서 느끼는 것은 두 시대의 논의 주제만 다를 뿐 별로 다르지 않은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1920년에도, 2020년에도, 사회는 평범한 여자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여자의 덕목’을 제시하고, 그에 반하는 ‘요즘 여자들’을 탓한다. 요즘 여자들은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만 취한다는 비난이다. 극 중의 두 여성은 이에 대응하여 주체적인 삶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한다.

 

1920년의 신여성 경희는 그의 의견이라면 심적으로든 물적으로든 무조건 지지하려는 오빠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조선에서 도쿄로 유학을 갔다는 것만으로도 경희는 이미 그 동네에서 굉장히 유별난 애로 평가받는다.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온 경희가 잡지에 여성 해방 운동을 주장하는 글을 기고했을 때, 조선 사회는 경희가 외국물을 먹고 나쁜 것만 배워왔다고 비난한다. 그리고 그가 남편과의 이혼을 요구했을 때, 경희의 사생활은 가십거리가 되어 세간을 떠돌았다. 늘 경희를 지지하던 오빠와 언니도 그의 이혼만큼은 반대했다. 여자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경희의 언니 ‘진희’는 여자의 행복은 남편한테서 사랑받는 것에서 온다며 그 행복을 포기하지 말기를 조언한다.

 

2020년의 페미니스트 화영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화영에게 계속해서 어필하는 과 선배 치훈의 말들은 칭찬인 듯 하면서도 묘하게 불쾌하고, 잘못한 것을 정확히 정정해주려는 화영의 성격에, 선배들은 종종 화영이 너무 예민하다며 웃는다. 그러던 중 화영은 과 선배 치훈의 무리가 화영의 사진을 오랫동안 몰래 찍어 공유하고 성희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화영이 분노하여 사실을 학교 커뮤니티에 공론화하자, 어쩌면 의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수 많은 댓글들이 화영을 밑바닥으로 끌어내린다. 또한 가해자에 대한 학교 측의 처벌은 미약하여,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크게 흔들리는 화영에게, 선배 ‘나진’은 이제는 그냥 현실을 위해 묻어두고 사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조언한다.

 

극 중에서 1920년의 사회도 2020년의 사회도,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는 여성들을, 시대를 거스르는 불편한 존재, 잔잔한 평화를 뒤흔드는 존재로 평가한다. 사회는 규정된 여성에서 벗어난, 마땅히 갖춰야 할 ‘여성의 덕목’을 갖추지 않은 이들을 낙인찍는다. 또한 사회는 그들에게 너희만 진정한다면 우리는 이전에도 그랬듯이 좋은 사이가 되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그 때 우리는 극 중 화영의 넘버처럼 스스로에게 묻게된다.

 

 

 

“내가 이상한가? 내 삶은 모순 투성인데”


 

그러나 이 답답한 극의 결말이 결국에는 각 세대가 눈을 맞추고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는 희망적인 결말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극의 배경으로 띄워지는 우리가 해낸 수많은 결론들을 눈에 담으면서, 우리는 결국 깨닫는다.

 

1920년 경희가 ‘감히’ 이혼한 여성으로서 모진 사회의 시선을 감내해야 했지만, 2021년 현재 당연히 이혼여부와 관계없이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대다수라는 것을. 1920년 경희의 언니 진희가 겪었듯 가정폭력은 마치 일상과도 같았지만, 2021년 지금은 적어도 뉴스감이 되었다는 것을. 여전히 내재된 혐오가 존재하지만, 마침내 다수가 바뀌었음을. 이것들이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당연한 일이 되었음을 안다.


그때는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은 당연하다. 그것은 그때도 옳았으며, 지금도 옳다.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될 당시, 암탉이 울면 세상이 망한다, 호주제를 폐지하면 국민 모두가 짐승이 될 것이다 등의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던 제법 큰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에 폐지를 이뤘고, 지금은 그것이 당연하게 옳은 것처럼 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계속해서 싸우고 있지만, 이제는 국민들 사이서 낙태죄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가능해졌으며, 방송에서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여성이 된장녀라고 폄하하던 말들을 똑같이 내뱉는다면, 이제는 대다수가 동의해주지 않을 것이다. 공중파에서 미스코리아가 퇴출되었으며, 소라넷(불법 음란 사이트)는 폐지되었고, 미투 운동(sns에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히며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이 확산되어 성폭력 피해를 용기내어 고발하는 이들이 생겼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만들어낸 수많은 결론이다.

 

*

 

세대의 변화와 연대를 담은 극을 엄마와 내가 같이 보고 있다는 것도 묘한 점이었다. 1920년대의 모던걸 경희가 겪었던, 그리고 1968년생 엄마가 겪었던, 그리고 화영이 겪었고, 내가 겪고 있는 불공정한 것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투쟁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점점 발전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우리는 여전히 당연한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으며, 이 투쟁은 이런 논쟁이 더이상 필요치 않은 지점이 올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극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엄마가 말했다.

그래도 세상이 바뀌겠지? 아니 그래야지.

너희가 꼭 힘을 보탰으면 해.

 

 

[신지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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