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니키 리라고'도' 알려진 [영화]

닿을 수 없는 나와 남을 이해하는 방식
글 입력 2021.08.0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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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내용을 거의 잊어버렸지만, 대학 새내기 시절 한 교양 강의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종종 생각이 난다. ‘나’라는 건 ‘진짜 나’, ‘내가 바라보는 나’, ‘타인이 바라보는 나’, ‘타인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보여지고 싶은 나’ 등등 다양한 층위로 이루어져 있고, 그 층위 사이로 벌어진 어떤 틈에 우리는 종종 빠져 혼란스러워 한다고 했다. 그 틈이 바로 ‘존재론적 간극’이라고, 교수님이 그렇게 이야기하셨던 것 같다.

  

*

 

얼마 전 재개봉한 <니키 리라고도 알려진 A.k.a. Nikki S. Lee>을 극장에서 보고 왔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발표한 <프로젝트 Projects>, <파츠 Parts> 등의 사진 작업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던 니키 리가 2006년 발표한 영화 작품이다. 이전의 사진 시리즈에서 꾸준히 다뤄왔던 정체성에 관한 문제와 연장선에 있는 영화로, ‘성공한 예술가’로서의 니키 리 자신에 대한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영화에서 니키는 젊고 매력적이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는 중인 예술가다. 전시를 위해 대서양을 오가고, 오프닝 파티에 참석하고, 컬렉터의 집에 가서 환대를 받고, 쾌활하고 사교적이지만 때로 자신의 작품을 위해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단호한 프로페셔널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 영화는 혼자 있을 때 짙은 외로움과 무료함을 느끼는 한 인간으로서의 니키를 비춘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늘 시끌벅적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낯선 도시를 떠돌아다니며 일하는 그의 평범한 일상엔 적막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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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리라고도 알려진> 스틸컷

 

 

그러나 이 페이크 다큐멘터리에서 그가 보여준 모든 모습은 꾸며낸 것일 수도 있다.

 

심지어 가장 내밀한 부분처럼 보이는 것까지도. 담담한 어조의 내레이션은 니키가 지금 외로움을 ‘연기’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생각해보면, 화면 속 외로운 니키는 사실 혼자가 아니다. 그를 찍고 있는 감독과 함께 있다. 그의 공허한 눈빛은 사전에 계획되고 의도된 것이다.

 

클라이맥스는 그가 어떤 도시의 광장에서 사람들과 춤을 추는 장면인데,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긴 테이크가 이어질 동안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춤에 무아지경으로 몰입한 니키의 해맑은 웃음은 진짜일까? 그마저 계산된 것이었을까?

 

영화는 한 시간 동안의 러닝타임 내내 ‘니키’라는 인물에 대해 말하고 있었지만 난 오히려 그가 누구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상영관을 나와버렸다. 내가 알게 된 건 누구였을까? 니키? 니키처럼 보이기 위해 연기하는 사람? 혹은 ‘진짜 니키’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싶은 자신의 모습만을 골라 만든 가상의 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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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리라고도 알려진> 스틸컷

 


재미있는 건 2006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이 영화가 처음 상영되었을 때의 관객과 2021년 서울의 한 예술영화 극장에서 재개봉한 영화를 본 관객이 니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정보가 현저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2006년의 관객은 <니키 리라고도 알려진> 속의 니키에게 큰 거리감을 느끼지 못했겠지만, 유명 배우의 아내이자 소탈하고 수더분한 모습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50대의 니키를 통해 이 영화를 알게 되었을 2021년의 어떤 관객들에게 영화 속 니키는 ‘초면’이다. 같은 영화를 본 관객들의 머릿속엔 저마다의 니키가 있다. ‘진짜 니키’가 무엇을 의도했던 그마저 제각각 벌어진 인식의 틈 사이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상대방보다도 그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있다.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유체이탈’을 해서 그 사람의 입장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 상상해보려 애쓴다. 대부분의 경우 ‘나’라는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정보 격차는 폭력적일 만큼 크다.

 

그에게 내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을 필요한 만큼 보여줄 수 있고, 원한다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연기하거나 포장할 수도 있다. 내가 보여지는 모습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늘 한계는 있다. ‘내가 원하는 나의 이미지’가 누군가에게 입력되는 과정에서 종종 오류와 오해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한편 나의 ‘진짜’ 모습을 그에게 꺼내보이려 한다면, 상황은 더 절망적이게 된다. 마음을 아무리 활짝 열어 젖혀도 그는 그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안간힘을 써도 그는 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볼 것이다. 내가 나의 눈으로 바라보는 내 모습과는 절대 일치할 수 없다. “그의 머릿속에는 내가 모르는 내가 들어있다.” 이 사실이 내겐 심해의 어둠처럼 아득히 느껴진다.

 

이런 문제도 있다. ‘진짜 나’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내가 다르다면, 누구의 머릿속에 있는 ‘나’가 더 객관적인 것일까? 어쩌면 나를 만난지 5분도 안된 저 사람이 내게 받은 인상이 진짜 나의 본질이 아닐까? 지하철에서 마주친 저 사람이 마스크 위로 조금 보이는 내 눈을 보고 떠올리는 어떤 이미지가, 그저 나 자체 아닐까? 극단적인 가정이긴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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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리, The Hip Hop Project,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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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리, The School Girls Project,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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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리, The Hispanic Project, 1998

 

 

니키 리 작가가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20대는 천장만 봐도 눈물이 난다”고, “나도 그랬다”고. 나도 가끔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답답하고 분한 마음에 자다가도 울곤 한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속 니키가 카메라 앞에서 완전히 ‘자신’일 수 없는 것처럼(혹은 그럴 필요가 없는 것처럼) 타인의 시선 앞에서, 심지어 완벽히 혼자인 곳에서조차 자신을 바라보는 스스로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이는 없다. 혼자 있을 때마저 내가 아닌 나를 연기하는 기분이 든다면 어디로 가야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제는 ‘진짜 나’라는 것이 존재하고, 어딘가에서 그것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구”라고 알려진’ 나 역시 나의 일부다. 나를 아는 타인의 마음 속에 있는 무수히 많은 ‘나’들의 총합이 그저 ‘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타인 역시 그 무수한 타인의 모습 중 일부일 뿐이다. 가끔은 누군가를 뻔히 다 아는 것 같은 오만한 생각에 빠질 때가 있지만 영원히 모를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이 있을 것이란 걸 새삼 깨닫고 겸허해진다.

 

어떤 관계든 절대 닿을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건 슬픈 일이다. 그러나 20대의 니키와 지금의 내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처럼, 시공을 초월하여 불현듯 마주하게 되는 ‘통(通)’의 순간도 분명 있다. 우습게도 우리는 그 섬광과 같은 순간을 위해 평생 누군가를, 그리고 나 자신을 찾아다닌다. 눈 앞에 마주한 간극이 아득히 멀어보여도, 눈 꼭 감고 손을 한 번 뻗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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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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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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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elly
    • '나'라는 고민을 항상 안고있는데, 인스타 프로필을 통해 작가님의 글을 접한 오늘의 시점에서 통하는 나의 어떤 섬광을 찾아서, 위안과 자신감을 얻고 갑니다. 나라는 사람을 찾는 또다른 용기를 다시금 마음속에서 꺼내야겠어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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