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리타가 결국 돌아가는 회귀점 [도서/문학]

안리타 <리타의 정원> - 당신은 어디로 돌아가게 되나요?
글 입력 2021.08.0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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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점.

 

힘들 때면 찾게 되는 사람, 장소 따위의 것, 그렇게 정의 내리련다. 그렇다면, 내가 일정하게 돌아가고야 마는 그 사람, 그 장소는 누구이며 어디인가? 그들 안에서 나는 무슨 행위와 사유를 하기에, 사회 속으로 다시금 뛰어들까?

 

작가는 그곳을 ‘정원’이라고 칭한다. 녹읍이 가득한 그 곳은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바로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입구조차도 그냥 지나치는 나만의 공간. 초대받은 이들도 결국엔 들어오지 못한 ‘나’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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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회귀점은 본인과 닮았다


 

작가는 정체성을 지우고 자연 앞에 선다. 흐려짐이 전혀 무의미하지 않다. 그저 섞여 들어간다. 태초가 그러했듯이. 그래도 된다. 작가는 정원이 되었고, 그 안의 꽃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빗줄기를 기린다.

 

꽃의 기일을 찾는 것이, 흔들리는 나뭇가지에서 바람의 발자국을 찾는 것이 우습게 보일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공간. 평가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 ‘정원’이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각자 하나씩은 품고 있으면 좋을 공간. 그곳 안에서 작가는 항상 아름다운 생각만 하는 것도 전혀 아니다.

 

오히려 울음과, 눈물과, 집착과, 경계에 대해 삭힌다. 그럼에도 그곳으로 돌아가고야 마는 이유, 온전히 그것들을 직시할 수 있는 곳이라서겠다. 버스 안에서, 회색 빌딩 안에서, 하다못해 도시 길거리 속의 나는 순수하게 추출된 사념을 가질 수가 없다. 그것은 사치이며, 비효율적인 낭비다.

 

작가는 정원을 닮았다. 꽃을 보면서 대견함을 느끼고, 빗줄기를 맞으며 통기타 연주를 떠올린다.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차를 마시며 한 번도 같은 마음인 적이 없다는 사람을 품어줄 곳은 가장 일정하지 않은 자연이다. 책의 구절 구절마다 뺵뺵하게 보이는 감정의 격동은 자연의 흐름과 닮았다.

 

안리타의 정원을 보며, 나의 것은 정원이라고 칭할만큼 역시 초록풀들로 빽뺵할까, 형형색색의 꽃이 피어있을까, 상상해봄직하다. 내가 회귀하는 곳은 어떤 모습이며, 그것과 나는 어떻게 닮아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나는 아직 정원을 마련하지 못했는가, 나에겐 정원마저도 사치인가, 아니, 정원을 찾아나설 때가 되었는가, 생각해봄직하다.

 

 

 

당신이 정원이다


 

 
“나는 살갗 아래 보이지 않는 막대한 무엇을 감각하고 있다. 그것을 영혼이라 불러도 좋고 마음이라 불러도 좋으며 생의 의지라 칭해도 좋다. 그것이 이 안에서 굶주리지 않고, 병들지 않으며 안락하게 생활하기를”
 

 

당신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느껴본 적이 있는가? 조용한 곳에서 사륵 눈을 감고 깊게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뱉을 때 느껴지는 산소의 흐름 뿐만 아니라, 산소 위를 타고 흐르는, 어쩔 때는 산소보다 더 빠르게 더 느리게 왕복하는 관념. 꿈틀거리다가 결국 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야 마는 무엇.

 

당신의 정원의 이름을 붙이지 못하였어도 좋다. 당신을 움직이는 동력, 그 구성요소를 정의내리지 못하였어도 좋다. 매우 이성적인 현대인 중 한명인 나. 그것이 나를 표방하는 정의이겠지. 모든 이성을 끌어 모아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나를 아름답게도 포장한 정의이겠지.

 

우리네 사람들은 감정이 메마른 것이 아니라, 애써 무시하고 있다. 이미 매우 쉽게 작명된 것들 대신 쉽사리 이름을 부여하지 못한 것들은 그만큼 개인에게 무게를 지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붙이려고 하든, 안락함을 선사하자. 지우지 말자. 다시 꺼내보자. 느껴보자.

 

‘정원’의 또한 우리 중 한 명이 그어 놓은 금 안의 장소다. 나만의 것이라고 기뻐하는 우리들이 여럿 모이면 그 선들이 무색하도록 이리저리 부양하는 것들이 생기리라. 그것이 연대가 될 수도 있지만 그저 그 근방의 분위기가 될 수도 있다. 당신 하나만의 안정이 이기적인 것이라고 잠시 미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 자아의 안정은 다른 이의 정원에도 봄바람을 불어다 줄 것이니.

 

 

 

회귀점을 마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나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늘 있지만, 내 마음에 자리한 무엇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럴수록 나는 여기 없는 그 누군가가 매우 그리웠다."
 

 

당신의 고독이 있으면 안 될 존재일까 두려워하지 마라. 정의내릴 수 없는 것을 그리워하고, 그려볼 때가 가끔은 있어도 좋다. 그리고 그 방황이 두렵다면 리타의 정원에서 잠시 머물렀다 가도 좋다. 서로의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주진 않더라도 그리움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당신의 새로운 회귀점이 될 수도 있으리라.

 

당신이 돌아가는 그 곳 안에서는 모든 것이 온전함을 다른 이의 정원을 통해서라도 알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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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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