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사교양프로그램 전성시대 ① [드라마/예능]

새로운 형태의 노블리스오블리주
글 입력 2021.07.3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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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리스 오블리주. 사회지도층은 그 외의 사람들에게 책임을 실천해야 한다. 현대판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최근 각광받고 많은 기업들의 ESG (Environment:환경보호, Society:사회공헌, Govermence:윤리경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례는 자본주의 아래서 사회지도층을 금전적 기준을 가지고 나눈 것이다. 사회는 금전적 자본주의로만 묘사되지 않는다. 문맹퇴치운동을 비롯해 지적자본을 공유하고 계몽하며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한 지식인들 역시도 사회지도층이라고 분류된다.

 

한 편, 이제 세상에는 지식이 차고 넘친다. 모르는 것이 있다는 건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고 방식의 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지성주의를 주장한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지식인(intelligent)과 지성인(intellectual)의 차이를 말했다. 지식이 양적으로 많은 것에 대한 경계를 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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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magazine.good.is

 

 

정보수집형의 지식인 대신 사색적인 태도를 가진 지성인이 정보의 범람 속에서 더 바람직하다. (너무 많은 유통채널에 대한 돌파구이기도 하지만) 방송가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넘어서 지식을 해독하고 전달하는 시사교양프로그램에 주목하고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 <궁금한 이야기 Y> 등 보도탐사프로그램만이 화제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최근엔 책이나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대신 보고 해석해주는 프로그램부터 석학들을 전달하고 싶은 주제별로 나열해 초청하는 프로그램까지 바야흐로 시사교양프로그램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 날 이야기


 

최근 시즌 2가 막을 내리며 정규편성을 확정지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 날 이야기> (이하 꼬꼬무). 성공적인 꼬꼬무의 행보를 보면 그동안 객관성에 무게를 두었던 뉴스나 역사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에서 정보 전달에 대한 가치관 변화를 볼 수 있다.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레임을 선택한 이 프로그램의 화자들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하려고 한다는 태도를 밝힌 바 있으나, 청자의 존재로 하여금 시청자들은 그렇게 받아들일 수 만은 없다.

 

예를 들어, 최근 가해자들이 결국 가족들과 ‘동반자살’했다는 2인조 카빈 강도사건을 방영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방점은 가족들을 살해하고 자살한 가해자들에게 ‘동반자살’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며, 아홉살 아이를 포함한 그의 가족들의 피해사실이 덮였다는 것에 있었다.

 

이와 같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가 명확한 것이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는 편협했던 역사를 다각도로 비춰주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쪽에 무게를 좀 더 실어야 한다. 지금까지 꼬꼬무가 이전 프로그램과 차이가 난다는 점을 ‘객관성’에 기초해서 말했다. 그러나, 그 이전의 역사서와 뉴스, 신문기사 중 그 어느 것도 객관적이지 않았다.

 

독재정권에서 그를 찬양하는 기사가 메인에 걸렸던 언론들과, 피해자를 피해 조명했던 역사서들에 대항해 스포트라이트를 새로운 지성의 출현이라고 해야 한다. 일부 언론이 객관성을 표방하며 지운 삶을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더 언론스럽다고 할 수 있겠다.

 

꼬꼬무의 거의 모든 유튜브 영상은 100만에서 600만 조회수를 웃돌고 있다. 사람들이 이토록 이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지성인을 필두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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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sbs

   

 

지식은 언제 어디서나 접근이 쉬워졌다. 이제는 방대한 지식을 뇌에 삽입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감성지수인 EQ가 강조된 것은 꽤나 오래되었으나, 그것을 체감하기는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지식은 그저 각자의 자리에 나열되어 있다. 우리는 이제 지식들의 유용성에 대한 판단을 직접 내려야 한다. 이와 같은 방송프로그램들이 마중물이 되어줄 것이다.

 

지식인들이 이전에는 없던 형태로 말을 전달하면서 단순히 오락적인 방송에서 벗어나고 있다. 개인은 다시 이들의 언어를 그대로 받아들일지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시사교양프로그램의 전성시대가 사고와 지성의 확장을 가지고 오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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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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