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보이지 않는 공포에 대한 이야기 - 인비저블맨 [영화]

글 입력 2021.07.3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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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투명 인간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상상이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상상에서만 그치던 투명 인간이 실재한다면. 그리고 그 투명 인간이 나를 괴롭힌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CCTV에도 찍히지 않아 경찰에 신고할 수도, 나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도 없는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온몸에 힘이 빠진다.

 

영화 <인비저블맨>의 주인공 세실리아는 바로 그 끔찍한 상황에 처한다. 행동과 심리를 교묘하게 통제하던 소시오패스 남편이 투명 인간이 되어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세실리아는 바다가 보이는 고급 저택에서 천재 과학자 남편과 둘이 살고 있다. 언뜻 들으면 걱정 하나 없을 것 같은 삶이지만, 그녀는 행복하지 않다. 남편은 그녀의 외출, 옷, 심지어는 생각까지 조종하려 드는 소시오패스였기 때문이다. 치밀한 계획 끝에 드디어 탈출에 성공한 세실리아는 언니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저택에서는 벗어났어도 여전히 그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집 밖 대문조차 나가지 못하는 그녀에게 남편의 자살 소식이 들린다.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부정해보지만, 곧 자신의 앞으로 상속된 유산과 남편의 남동생이 보여준 시체 사진은 그의 죽음에 확신을 실어주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죽었음을 받아들인 세실리아는 언니네 가족과 단란한 일상을 보내며 미소를 되찾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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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진정한 공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세실리아는 언니네 집 안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을 느낀다. 문득 남편이 했던 말을 떠올린 그녀는, 그가 투명 인간이 되어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물증이 없으니 주변 사람들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결국, 남편의 의도대로 그녀는 언니네 가족에게 오해를 사고, 언니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아 교도소에 수감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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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감에 점철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세실리아는 기지를 발휘해 남편의 덜미를 잡는다. 그를 공격해 투명 인간 슈트를 고장 내 그의 모습이 깜빡깜빡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덕분에 경찰도, 언니네 가족도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처절한 싸움 끝에 남자를 잡아 슈트를 벗겼는데, 예상과 다르게 남편의 남동생이 죽어있었다. 그리고 경찰은 남동생의 협박 때문에 저택에 감금되어 있던 남편을 구조했다고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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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황은 남동생을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지만, 세실리아는 안다. 자신을 따라다닌 투명 인간은 남편이고, 이 모든 것은 남편이 계획한 결과라는 것을 말이다. 진실을 듣기 위해 그녀는 남편을 찾아간다. 네 입으로 진실을 말하라고 여러 번 이야기해도 남편은 끝까지 모른 척을 한다.

 

결국 그녀는 투명 슈트를 입고 남편을 죽인다. CCTV에는 남편이 자살한 것처럼 나오게끔, 자신이 당한 그대로. 남편의 자살을 경찰에 알린 그녀는 어느 때보다 당찬 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미소 가득한 세실리아의 얼굴을 비추며 영화는 끝이 난다.

 


투명 인간이 주는 공포감은, 상대방은 나를 볼 수 있는데 나는 상대방을 볼 수 없다는 데에서 온다. 영화는 남편을 볼 수 없는 세실리아의 시점으로 화면을 비추어 관객이 그녀의 상황에 직접 처한 느낌을 준다.

 

누군가의 시선을 느낀 주인공이 어느 곳을 바라보면, 화면에는 주인공이 보고 있는 평범한 방의 모습이 보인다. 너무나 평범해서 더욱 긴장감을 자아낸다. 남편이 보이지 않으니 그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예측할 수 없고, 어떤 반격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편이 투명 인간이 되어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말을 믿어줄 사람도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에 손을 꽉 쥐었다. 세실리아가 느끼는 무력감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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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난 후에 ‘인비저블맨’의 의미는, 단순히 투명 인간이 되어 찾아온 남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세실리아에게 가한 정신적 학대, 즉 가스라이팅도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정신적 학대는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타인에 대한 통제능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해자는 이를 통해 피해자의 자존감과 판단 능력을 잃게 만들고,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정신력이 약해진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더욱 의존하게 된다고 한다.


다행히 세실리아는 남편이 가하는 통제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택에 남아있지 않고 필사적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집에서 벗어나 언니의 집에 머무르면서도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한다. 이미 저택을 벗어났고, 주변에는 그녀를 도와줄 믿을만한 가족이 있는데도 여전히 불안해한다. 이미 남편이 가한 통제와 말이 세실리아의 정신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처럼 말이다.


만약 남편이 천재 과학자가 아니어서 투명 슈트를 입고 찾아오지 않았더라도, 정말로 그가 자살했었더라도 그녀는 내내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결혼 직후부터 시작된 남편의 통제는 세실리아의 정신을 좀먹고 트라우마를 안겼다. 그렇게 오랫동안 당해온 정신적 학대는 남편이 당장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바로 극복할 수 있는 쉬운 아픔이 아니었다.


영화에서 남편은 가해자고, 세실리아는 피해자다. 하지만 남편은 관련해서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는다. 세실리아에게 한 마디의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천재 과학자이자 아내에게 유산을 상속할 정도로 애처가라는 대외적인 이미지가 세실리아에게 정신적 학대를 가하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남편과 세실리아가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약 20분이라는 장면 동안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평범한 남자를 연기한다. 나는 네가 정말 걱정된다고 말하며 끝내 자신이 범인이라는 말도, 지금껏 겪게 한 고통에 대해 사과도 하지 않는다. 그의 본모습은 이미 100분 정도의 러닝타임을 통해 관객도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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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세실리아는 직접 남편을 죽임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직접 남편에게 복수를 한다는 점이 통쾌하면서도 손에 피를 묻히고 나서야 세실리아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걸어 나갈 수 있는 결말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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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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