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섬세하게 휘몰아치는 두 여인의 정념情念 - 우리, 둘

글 입력 2021.07.2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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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얼굴은 수만 가지다. 때로는 달콤하게, 하지만 때로는 씁쓸하면서도 어딘가 섬찟한 모습으로 매번 그 형태를 달리한 채 예측불허한 순간에 인간의 두뇌를 마비시키는 강렬한 파토스를 발산한다.

 

양립 불가능한 감정의 공존을 성립시키는 사랑의 야누스적 형질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여러 예술가들을 매료시키며 미스터리한 에로스의 세계를 탐구하도록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수많은 사랑의 형태들은 다시금 형언할 수 없는 감정으로서의 사랑을 숙고하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우리, 둘>은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불가항력적 본질을 드러낸 또 하나의 매혹적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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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마틴 슈발리에)와 '니나'(바바라 수코바)는 같은 층 아파트에 거주 중인 레즈비언 커플이다. 더 이상 외부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은 채 두 여인은 로마에서 새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독신이었던 '니나'와 달리 손자까지 거느린 '마도'는 자식들에게 그간 숨기기 급급했던 자신의 진실을 고백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자식들에게 미처 자신의 여행 계획을 고백하지 못한 '마도'는 이 사실을 알게 된 '니나'와 갈등을 겪은 충격으로 쓰러지면서 두 여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만다.


영화 <우리, 둘>은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해방구로 여기는 두 여인의 격정적인 정념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세상이 무너지더라도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극복해나갈 수 있는 두 여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절절함이 두드러진다.

 

두 여인의 대조적인 성격은 서로가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는 버팀목이자 대체 불가능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자, 서로의 빈자리를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두 여인의 관계는 급성 뇌졸중으로 쓰러진 '마도'의 공백을 기점으로 영화의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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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의 여파로 간병인과 함께 지내야만 하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해 '니나'는 '마도'의 곁을 지키지 못한다. 연인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로 불안이 증폭된 '니나'는 어떤 식으로든 그녀와 함께 하기 위한 방법을 필사적으로 모색한다.

 

그 과정에서 표출되는 그녀의 행동들은 보는 이에 따라서 절절한 로맨스와 소름 끼치는 스릴러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줄타기를 시전한다. 특히, '마도'의 일거수일투족을 이전처럼 공유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인한 답답함과 불안, 그리고 그녀와 다시 함께하고 싶은 절실함이 뒤섞인 '니나'의 집착을 영화는 '마도'의 집을 향한 그녀의 시선 하나로 표출시킨다.


이를 암시하는 영화의 오프닝은 다소 을씨년스럽다. 술래잡기라도 하듯 서로를 뒤쫓는 두 소녀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뒤로하고 펼쳐진 먹구름과 까마귀 떼들의 울음소리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나무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두 소녀 중 한 명이 사라지자, 홀로 남겨진 소녀의 입에서 울려 퍼지는 까마귀 울음소리는 두 주인공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거라는 강렬한 복선으로 작용한다.

 

시작과 동시에 기괴한 인상을 풍기는 영화 <우리 둘>의 인트로는 두 여인이 맞이할 앞으로의 고난을 암시하는 복선이다. 이는 둘 중 하나를 만나지 못하는 사태가 그 어떤 사태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라는 연인이 품을 수 있는 악몽에 근간을 둔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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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 둘>은 사랑의 복합적인 정서를 극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인해 제 한 몸 겨누기 힘든 와중에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연인을 향해 다가가고픈 '마도'의 힘겨운 몸짓은 사랑이란 감정이 촉발시킬 수 있는 불가해한 상황을 상징한다.

 

감독은 이 같은 절절한 정서가 수시로 교류하는 와중에도 예측불허한 순간에 배치한 서스펜스는 진한 멜로를 연상했던 관객들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속도감을 선사한다. 두 여인의 가슴 시린 감정과 더불어, 보는 이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극적 장치가 뒤섞인 영화의 플롯은 사랑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프레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흡사 폭풍의 눈 사이에 두 주인공이 자리한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마도'와 '니나'의 관계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두 여인은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로 몸을 옮긴다(아이러니하게도, 두 주인공을 옭아매는 주체가 '마도'의 친 자녀들이다).

 

로마 여행을 위해 주변 정리를 완료한 '니나'의 텅 빈 방은 잠깐이나마 꿈꿨던 낭만의 허무함을 상기하지만, 자신들을 옭아멘 수많은 것들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안식처로서의 포근함 또한 내포된 공간이다.

 

 


(Petula Clark, 'Chariot' 1962년)

 

 

고립 혹은 피난으로서 중의적 의미를 지닌 텅 빈 공간은 턴테이블에 흘러나오는 페튤라 클락(Petula Clark)의 곡(꽃마차, Chariot)과 함께 '마도'와 '니나'의 은은한 춤사위로 가득 메워진다.

 

가련해 보이면서도 엄숙함이 동시에 엿보이는 두 여인의 포개짐은 진실을 고백하고 난 뒤 그 모든 후폭풍을 함께 감내하기로 결심한 한 연인의 단단한 의지를 표명한다. 설령 발 딛고 선 이곳이 낭만은 아닐지라도,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완성된 사랑 앞에서는 사변적인 조건이다.

 

적어도 그녀들에게 있어 완벽한 사랑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오직 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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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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