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조연이었던 악기의 유쾌한 반란 - 이은호 바순 리사이틀

한 사람의 숨결과 다른 한 사람의 손가락이, 70분을 마법으로 탈바꿈하다
글 입력 2021.07.2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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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까지 필자에게 클래식은, 일부러 찾아 듣지는 않는 그런 음악의 대명사였다. 들어도 크게 감흥이 오지 않고, 음악이야말로 듣는 법을 공부하지 않으면 제대로 들을 수 없으므로 누구나 즐기기에는 힘든 장르라고 생각했다.

 

최근 들어 복잡한 세상 속 잠깐의 여유를 만끽하기 위해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클래식 기타의 부드러움에 매료되어 기타 연주곡 위주로 찾아보다가, 점차 다른 악기의 소리에도 귀를 열고 있다. 클래식 음악에 막 입문한 청중을 위해 쓴 도서도 찾아 읽었다. 접할 기회가 드물었던 음악과의 낯가림을 서서히 거둬들이는 중인 셈이다.

 

하지만 연주자가 부재하면 음악을 들을 방법은 스피커나 이어폰밖에 없기에, 편안함 너머로 시차를 두고 살포시 다가오는 감동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방역으로 인해 실내악 공연이 드물어진 요즘, 좋은 기회가 생겨 한 바수니스트의 연주를 보러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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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기는 어려서부터 배우기도 하고 자주 만나기에 익숙하지만, 관악기는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으면 악기를 구분하는 것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파곳이라고도 부르는 바순은 역사적으로 오케스트라에 최초로 도입된 목관악기다. 크기는 사람의 상반신보다 조금 더 크며, 음역이 다른 관악기에 비해 낮고 독특하다는 특징 때문에 단독 파트를 담당하기도 한다.

 

박수와 함께 연주자가 등장했을 때, 손에 들린 바순의 크기와 금속성 광택이 주는 카리스마에 지레 압도되었다. 오케스트라에서는 다른 악기 사이에 묻혀 제 몫을 다했을 한 악기가 이번에는 피아노만의 도움으로 마음껏 날아오르려 하고 있었다.

 

 

 

1. 바순과 통주저음을 위한 소나타 사단조, 작품24-5 (프랑수아 드비엔느)


 

1700년대 후반의 작곡가인 프랑수아 드비엔느의 곡으로, 6개의 바순 소나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작은 소리로 속삭이는 부분에서는 포근함이 느껴지고, 공연장 전체가 울릴 정도로 세게 연주되는 부분에서는 힘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움과 진중함을 잃지 않는다.

 

바순의 연주 장면을 처음 접한 필자는 곡보다 악기의 연주 방식에 더 관심을 두고 지켜보았다. 숨 쉬는 곳이 따로 악보에 표시가 되어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연주자는 한번에 긴 호흡을 가져가고 있었다.

 

70분밖에 안 되는 공연에 인터미션이 왜 주어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호흡 역시 관객에게 전달되는 소리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쉬지 않고, 휴지(休止)가 곡의 흐름 속 필요한 부분에서만 숨을 재빠르게 골랐다. 덕분에 관객 입장에서 ‘듣는 호흡’이 설정되어 편했다.

 

악기가 무거워 보이기도 했지만, 유년 시절부터 악기와 함께 살았을 연주자는 무사히 첫 번째 곡을 마쳤다.

 

 

 

2. 비올라 다 감바를 위한 소나타 사장조, 작품1027 (요한 세바스찬 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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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가 쾨텐의 궁정 오케스트라 소속, 크리스티안 페르디난트 아벨이라는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를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곡이다. 바로크 양식의 교회 곡이 대개 그렇듯, 느림-빠름-느림-빠름의 4악장 구성을 취하고 있다.

 

바순은 저음에서는 증기 기관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올 때 나는 소리처럼 중후한 느낌을 가득 머금지만, 고음에서는 하모니카 소리처럼 다소 쨍한 음색이 들린다. 바흐의 소나타에서는 특히 바순의 고음이 자주 등장하였다.

 

화려한 집 안에서 피아노를 뚱땅거리며 연주하는 귀족 집안의 자제. 옛날 유럽을 다룬 영화에서 흔히 연출되곤 하는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이 곡에서는 피아노가 그냥 배경의 역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주제를 먼저 연주하고 바순과 주고받기도 하는 등, 바순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한다.

 

 

 

3. 바순 솔로를 위한 세 개의 작품 중 3악장 (하인츠 홀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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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는 줄을 퉁기면서 소리를 내는 악기이나, 필요하면 타악기처럼 통을 두드리거나 줄을 때리기도 한다. 심지어 스네어 드럼 소리를 내기도 한다. 바순도 단순히 불어서 연주하는 것 이외에 다양한 연주 기법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 곡에 바순의 모든 것이 담겼다.

 

관을 통해 들리는 공기 소리, ‘쪽쪽’ 입맞춤하는 것 같은 소리, 최고 음, 턱으로 떨리는 소리, 빨아들이는 소리 등 관이 낼 수 있는 온갖 소리가 집대성된 곡이다. 피아노의 도움도 없이 바순 혼자서 10분 남짓을 끌어가야 한다.

 

연극배우가 홀로 무대에 등장해서 왔다 갔다, 흥분했다가 침착했다가, 물어봤다가 답했다가 하며 독백을 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찰리 채플린이 주인공인 무성 영화의 배경 음악에도 어울릴 것 같다.

 

작곡가는 자신의 곡을 가리켜 “바순 연주자들에게 잘 알려진 이 곡을 잘 표현하고 연주하기 위해서는 대담하고 과감함 만이 필요할 뿐이다”라고 했다. 바순이 최대한의 기교를 부려야 하는 이 곡은 바순 계의 ‘초절기교연습곡’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4. 바순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사장조, 작품168 (카미유 생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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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사육제’로 잘 알려진 생상스가 만년에 남긴 바순 소나타 작품이다. 사실 이 곡에서는 피아노의 존재감이 더욱 부각된다. 피아노에서 아르페지오(화음을 구성하는 각 음을 동시에 연주하지 않고 연속적으로 연주하는 주법)를 통해 하프와 같은 소리가 탄생한다.

 

클래식 라디오에서 선곡할 만한 서정적이고 조용한 곡이라 연주를 듣는 필자도 잠이 솔솔 올 정도였다. 살짝 졸면서도 생각했다. 앞으로 바순의 음색은 평생 잊지 않을 것이라고.

 

 

 

5. 바순과 피아노를 위한 소협주곡 (마르셀 비쉬)


 

프랑스 출신의 음악가 마르셀 비쉬가 바순 연주자에게 꼭 필요한 레퍼토리를 남겼다. 바로 ‘바순과 피아노를 위한 소협주곡’이다. 이 곡의 감상 포인트는 한 단어로 ‘반음계’다. 조성체계를 벗어난 화음도 자주 들린다. 클래식을 잘 아는 사람은 베토벤의 소나타와 비슷한 진행임을 알아챌 것이다.

 

곡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우울하고 무거워서, 잎이 떨어지는 가을밤 어느 공원에서 연인이 헤어지고 있는 쓸쓸한 분위기가 연상된다. 느리다가 빨라지는 부분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빠름을 지양하며 절제하는 느낌이다.

 

*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큰 연주회를 끝내서 한결 편안한 표정의 연주자가 등장하여 인사를 했다. 앙코르곡으로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들려주었는데, 자신의 연주에 집중해준 관객에게 연주로서, 말 그대로 사랑한다는 인사를 해 주었다.

 

비싼 악기이고, 연주하는 사람만 관심이 있고, 대부분의 사람과는 거리가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한 악기가 자신의 오해를 멋있게 떨쳐 내버린 멋진 공연이었다. 바순 혼자만의 음색과 더불어 피아노와 함께 연주되었을 때의 호흡, 기교적인 측면까지 바순의 A부터 Z까지를 체험한 소중한 기회였다.

 

학창 시절 음악 숙제가 주어져야 겨우 향했던 음악회로의 발걸음을, 이제 좀 더 자주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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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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