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차별의 종말을 위하여 - 선량한 차별주의자 [도서]

글 입력 2021.07.1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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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면서

당한 차별을 말해보세요.

 

또한, 당신이 살면서

한 차별을 말해보세요.

 

 

당신은 이 질문의 대답을 정확히 당당하게 말할 수 있나?

 

나의 대답은 둘 다 10가지를 못 넘긴다는 것이었다. 차별이 있는 세상에서 자랐지만, 차별하지 않기 위해 나름 노력했고 이에 대해 신경 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책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나서 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로서 차별을 꽤 한 사람이면서도 차별을 꽤 당한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책을 통해 여러 경계를 치면서 나를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 나의 능력이 상위에 속함을 인정받고 싶었던 순간들을 되돌아보았다. 그럴수록 더욱더 차별의 그림자를 크게 만든 나의 사고와 행동을 반성했다. 더 나아가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피하고자,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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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경계


 

 

이때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경계는 국적만이 아니라 성별, 장애, 나이, 종교, 가족 상황, 학력, 지역,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등 수많은 분류기준과 범주에 따라 다층적으로 존재한다. 인간을 여러 차원의 범주로 구분할 수 있는 만큼 집단도 거의 무한대로 생성될 수 있다.

 

당연히도 한 개인은 동시에 여러 차원의 집단에 속하게 된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차별을 받는 집단에 속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특권을 누리는 집단에 속하기도 한다. 때로는, 차별을 받는 여러 집단에 속해 있어서 한꺼번에 복합적으로 차별받기도 한다.

 

p. 53

 

 

초등학교 2학년 때, 전학을 갔던 학교에서 동급생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뚱뚱하다고 놀림을 당했고 그 아이는 내가 해온 숙제를 매일 베꼈다. 혼자 힘들어하다가 결국 엄마한테 고백했고 그다음 날부터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던 담임 선생님의 황급한 수습 아래 흐지부지 2학년이 끝나고 3학년이 된 후, 반이 바뀌고 점점 전학 간 학교에 적응해갔다.

 

그때 생긴 트라우마 때문인지, 자꾸 사람의 몸을 의식하고 뚱뚱한지 평가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처음으로 구분한 정상과 비정상은 '마름'과 '비만'이었다. 비정상이었던 나는 자신감이 없었고, 가리기 바빴다. 평생 콤플렉스로 뱃살과 비만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감추면서 이를 대신할 다른 능력을 키우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공부에서만큼은 정상이었고, 이분법적으로 나누었을 때 나는 상위 정상에 올라있었다. 그렇게 생긴 경계는 다양한 길로 퍼져갔고 깊어졌다. 말은 안 했지만, 누구보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면서 정상에 들기를 노력했던 사람이 되었다.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경계는 작가가 말한 것처럼 다층적으로 수많은 원을 그리며 존재한다. 나는 차별을 받는 집단에 속해있기도 했으며 특권을 누리는 집단에 있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에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는데, 하나 간과했던 점은 차별을 받는 집단의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복합적으로 여기저기에서 차별받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특성이라고 언급하는 자체가 올바르지 않은 발언인 것 같다.

 

사실 내가 만드는 경계와 수많은 기준에서 충족되지 못한 사람들은 나의 시선에서부터 차별이 느껴졌을 것이고, 이는 곧 사회의 차별로 이어졌을 것이다. 나도 차별당했지만, 차별했다. 사회에서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의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핑계를 대면서 외면한다면, 이 사회는 계속 그렇게 차별을 낳는 사회로 굴러갈 것이다. 이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차별을 선택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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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보면, 여성의 비율이 높은 직종의 임금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의 수가 절반이 넘는 직종의 평균 임금은 대체로 20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데, 남성이 과반인 직종의 평균임금은 대체로 200만 원이 넘는다. 같은 직종에서도 남성보다 여성의 임금이 대체로 낮다. 인사 승진 또한 느리다. 아이러니하게도 차별적인 상태를 계속 유지해간다고 한다.

 

직업시장이 성별에 따라 분리되면서도, 상대적으로 여성의 임금이 낮아지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이 왜 지켜지지 못하는 걸까? 구조적 차별은 차별을 차별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러한 차별은 사회적으로 만연하고 예측할 수 있지만, 아무도 이를 차별이며, 문제점이라고 바라보지 못하고 스스로 불평등한 구조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사실 정량적인 자료로 이렇게 여성과 남성의 직종과 대학 학과 분포, 임금까지 본 것은 처음이라 이러한 결과에 많이 놀랐다. 취업 준비를 하는 여성으로서 성차별에 대해 잘 알면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알지 못했다. 과거부터 최근까지의 결과가 더욱더 견고해져 가는 구조적 차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구조적 차별에 알게 모르게 순응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미래는 어떻게 그려질지 걱정도 되면서 이 사회를 바꾸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며 부딪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방법이 어떤 것인지 모색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능력은 하나가 아니며 전부도 아니다


 

고등학교의 우열반 편성이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교육 시설 이용과 관련된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

 

교육을 통해 불공정한 능력주의를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합리한 구분을 일삼는 불평등 사회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워진다는 글쓴이처럼, 비교적 최근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도 저런 우열반 편성을 시행했던 학교에 다녔다. 한 기수 위 선배들만 해도 상위 30등 정도까지의 인원에게 좋은 면학실을 제공해주었고, 고사마다 이 등수에서 떨어지면 면학실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그리고 나 또한 수업을 A, B, C반으로 나누어 들었고 대입 시기에도 상위 대학교에 갈만한 성적을 가진 친구들만 따로 방과 후 수업을 진행해 그들의 자소서와 생활기록부, 면접 준비를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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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충족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고, 대부분의 특혜에서 제외되었다. 이에 대해서 잘못되었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기도 했지만, 내심 그들이 부러웠다. 불공정한 능력주의를 몸소 느꼈고, 이를 받아들여 나도 인생의 전부인 것 같았던 그러한 종류의 능력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이 모습은 작가가 겪은 시대와 나의 시대에도 존재했다. 지금이라도 사라져야 마땅하지만, 끈질기게 존재하는 사회의 어두운 면임에 씁쓸함을 느낀다.

 

 

 

평등한 사회의 시민이 된다는 것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수고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불편함을 견딜 것인가? 이 선택은 단순히 개인의 수고로움이나 불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공동의 가치와 지향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정말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p.188

 

 

이미 우리의 삶은 상당히 획일적인 형태로 굳어져 있다. 구조적인 차별도 만연한 상태다. 그러니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이 불평등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순응할 것인가?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한 불편을 우리 모두가 짊어질 것인가? 다양한 종류의 차별과 심지어 역차별 논란이 계속해서 붉어지고 있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함께 추구할 가치를 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신념과 잣대에 필요한 가치 말이다.

 

역지사지.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정말 어느 것보다 실천이 어려운 사자성어이다.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 없으니, 실제로 그가 느끼는 차별의 감정이나 고통을 제대로 파악해보기란 정말 힘든 것이다. 그런데도 역지사지의 실천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차별의 주범이 되었을 때의 기억은 차별의 대상이 되었을 때의 기억보다 쉽게 잊힌다. 살아오면서 나도 그러한 많은 차별을 저질렀고, 당했을 것이다. 이에 경계하면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회고해 무심코 지나쳤던 차별의 지점들에 대해 반성하고 같이 가는 방향성을 지닌 사회를 만드는 구성원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의 시선과 생각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차별은 책과 공연 등 문화예술 작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다. 극 구성에 아주 좋은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야기가 차별당하는 자와 차별하는 자의 갈등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그 차별을 해결하거나 문제를 풀게 되면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만, 결국 차별을 해결하지 못하면 한쪽의 비극으로 새드 엔딩 마무리된다. 해피 엔딩이든, 새드 엔딩이든, 어쨌든 차별은 발생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재발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예측 가능한 구조적 차별을 맞서서 고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함께 하는 공동의 가치에 따라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차별은 여러 경계를 가로질러 발생한다. 문학 작품 속에서도 성별, 장애, 종교, 학력, 심지어 그림자가 없다고 차별이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차별을 다루는 작품들을 보면서, 이러한 구분을 짓는 찰나의 생각들을 경계해야겠다고 다짐해왔다. 예를 들어, 대학교 1학년 때 만나게 된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를 통해 동성애를 포함한 혐오 범죄와 그 감정들에 대한 이기적인 잔상들을 뼈저리게 느끼고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당연시 해왔던 생각의 흐름을 되짚어 보면서 차별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노력에 내적 성장을 이룬 것 같아 뿌듯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이러한 다짐이 나의 생활에 있어서 실천으로 이어졌는가에 대해선 확언할 수 없었다.

 

차별을 다루는 작품을 그저 흥미를 유발하는 콘텐츠로서 소비해 온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보면 당당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고통을 전시해놓고 적나라하게 표현해놓은 작품을 통해 나는 그저 제 3자로서 공감하는 척만 할 뿐, 내 상황과 위치에 안심하고 위안으로 삼는 용도로 작품을 대한 적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내가 차별을 받는 주인공이 된다면"이라는 생각은 제대로 해보지 않았다는 것은 그저 그들의 아픔을 멀리서 즐긴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음을 느낀다. 적어도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만 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이 생각을 지니고 있는 멋진 어른이라는 사실 자체에만 심취해 제대로 된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성해본다.

 

겉으로만 차별을 의식하고 마음은 이를 정당화하는 모순에 빠진 어른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는 결코 차별의 모습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나부터,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부터 그러한 행동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이 책을 읽을 때, 초반에는 내가 차별주의자라고 비꼬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불편하고 불만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읽을수록 내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였음을 인정하게 되고 내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저지른 차별의 시선과 잘못된 사고를 깨닫게 된다. 많은 독자가 나와 같은 경험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런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이 사회도 올바른 평등한 모습으로, 차별의 종말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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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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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별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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