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손 가는 대로 글을 씁니다 [문화 전반]

글을 쓰는 것의 괴로움, 그래도 나는 글을 써야 한다.
글 입력 2021.07.1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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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나에겐 너무나 과분하고 무거운


 

학과에서 잡지를 만들고 있다. 내가 직접 잡지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사람들을 모아 학기 당 한 호씩 발행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1학기에 창간호를 만들었고 이번에 여름방학을 맞아 두번째 호를 만들기 위해 에디터들이 바쁘게 취재를 하고 원고를 쓰고 페이지를 구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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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들고 있는 잡지 ]

 

 

필자는 편집장이라는 과분한 직함으로 불리고 있다. 잡지의 구성과 내용, 톤과 레이아웃까지 내가 기틀을 잡고 에디터들이 열심히 원고를 써오면 검토를 한다.

 

검토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글을 첨삭해야 하는데, 첨삭하면서도 참 곤혹스럽다. 내가 남의 글을 첨삭해줄 만큼 뛰어난 문장가가 아닐뿐더러 나도 에디터가 되고자 글 쓰는 연습을 하는 한 명의 에디터 지망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에디터들도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어디서 글 좀 쓴다고 얘기를 들었던 이들이기 때문에 첨삭한다는 것이 자존심을 긁는 것 같아 미안했다.

 

그래서 첨삭이라기보단 잡지의 톤을 맞춘다는 느낌으로 문장을 짧은 호흡으로 수정하고 있다. (그것마저 권고사항이다) 에디터들도 나도 비슷한 역량을 가지고 있어 고집스런 문장 습관을 버리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앞서 말한 이유들로 첨삭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게 가장 크다.

 

 

 

글을 읽는 것은 피곤해


 

사실 난 글을 읽는 것보다 쓰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다. 타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이 꽤 피곤하게 느껴진다. 문장 하나하나에 글쓴이의 생각과 기호, 취향, 삶의 내력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한 문장도 허투루 읽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연유로 글을 읽을 때 심혈을 기울여 문장을 읽는 탓에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리타이어(Retire)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글을 너무 좋아해서 글을 읽는데 시간과 감정을 너무 소비하기 때문에 글을 안 읽게 된다. 그래서 나에겐 첨삭을 한다는 일이 퍽 괴로운 일이다. 글을 읽어야 하고 어쩔 때는 타인의 글을 난도질해야 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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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단편소설에 빠져 ‘젊은 작가 수상 작품집’을 모아 읽었던 때가 있었다. 신선하고 참신한 소재, 기성 작가들과는 다른 호흡과 문장들을 읽으면서 기분 좋은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작품 하나하나를 읽는 게 너무 힘들었다. 단편 특성상 인물 간의 감정선이 농도 깊게 그려지는 탓에 문장의 묘사를 읽는 일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어려웠다. 어떨 때는 한 문장을 읽고 책을 덮고 참회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나도 이 등장인물처럼 누군가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았을까’ 하고 계속 등장인물에 나를 대입시켰다. 책은 재밌었지만 고문처럼 느껴져서 2019년 작품집을 마지막으로 단편소설은 단념했다.

 

난 글 읽기에 충실한 독자다. 편협한 독서 취향 탓에 다양한 분야를 읽지 못하지만 일단 텍스트라고 하면 주의 깊게 읽으려고 노력한다. 나도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니까 글쓴이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한 글자 한 글자 새겼는지 알기 때문에 문장을 음미하면서 읽는다. 이런 글 읽기 습관이 피곤하다는 것은 알지만 잘 버려지지 않는다. 그래도 나 같은 독자가 있으니까 아직도 글들이 사랑받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 거겠지 하고 스스로 위안 삼는다. 더 많은 책을 읽어야 겠다고 결심하고 반 페이지도 못 넘긴 책들이 즐비하지만 말이다.

 

 

 

글 쓰는 건 또 괴로워


 

글을 쓰는 것에 익숙하지만 글을 쓴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심적으로 힘들 때 무작정 글을 쓴다. 입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하면 목구멍에 말들이 턱 막혀서 솔직한 심정이 음성으로 구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타인이 내게 기대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유약한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게 두렵다. 반면 글쓰기는 나에게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수단이다. 그래서 과거 내가 쓴 글들을 마주하면 당시의 상황과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괴롭다. 또 그런 글들은 지나치게 감성적인 표현이 많아서 ‘이불킥’하고 싶은 문장도 많다.

 

지금은 비밀번호를 잊어먹어서 되찾을 수도 없는 ‘나에게 글쓰기는 배설이다’라는 글을 인스타 부계정에 올린 적이 있다. ‘배설’이라니. 수많은 비유 중에서 하필 ‘배설’이라니. 너무 과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배설’만큼 적절한 표현이 없는 것 같기도.

 

그렇다. 나에게 글쓰기는 배설이다. 화장실에 가서 노폐물들을 배출하는 것처럼, 손가락 끝으로 나의 유약한 면모들을 글로 풀어낸다. 술자리에서 가끔 만취해 내뱉는 개똥 철학일수도 있고 노래 가사 하나에 꽂혀 일장 연설을 하는 감성적인 사색일수도 있다. 명확한 건 ‘배설’이 인간 생활을 영위하는데 꼭 필요한,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행위인 것처럼 ‘글쓰기’도 나에겐 나라는 인간의 축을 세우기 위해 필수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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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글을 쓰는 건 괴롭다. 세상에 나를 발가벗겨 내놓는 기분이다. 근데 어쩔 수 없다. 글쓰기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 개인의 글쓰기는 개인의 영역이자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다. 누군가 공감을 해준다면, 주의를 기울여 읽어준다면 그건 그거 대로 기쁨이겠지만, 살 한점을 도려내 전시한다는 기분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순수하게 글을 잘 쓰고 싶다. 하지만 아직 내 글은 ‘너 보기보다 생각이 깊네’ 수준이다. 글을 잘 쓴다는 건, 나에게 부끄러움 없이 글을 ‘잘’ 쓴다는 건 어떤 것인지 아직 모르겠다. 나의 사색이 멈춰버린다면, 나라는 인간의 경험이 바닥난다면 내 글이 멈춰질 것 같다. 글을 쓸 때마다 나라는 캐릭터의 HP바가 깎이는 것 같다.

 

 

 

그래서 손 가는 대로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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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인스타 계정에 ‘손가는대로리뷰’라는 영화나 전시회, 책을 읽고 쓴 리뷰를 올리고 있다. 수정 없이 원 테이크로 써내려가기 때문에 ‘손가는대로’ 리뷰다. 리뷰를 쓰면서 경계하는 건 딱 하나다. ‘내 얘기를 자제할 것’. 간단하지만 나에겐 거대한 규칙이다. 내 글쓰기는 내 얘기가 없다면 성립할 수 없었으니까. 손 가는 대로, 원 테이크로 쓰되 나의 얘기를 자제하자. 미약하지만 나에겐 큰 전환점이었다.

 

손 가는 대로 쓰는 글이 퀄리티가 좋을 리가 없다. 어떤 리뷰는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어떤 건 리뷰라기보단 영화상식 뽐내기 수준인 것도 있다. 게시글을 올리고 오타가 보여서 수정하기도 하고, 문장 구조가 이상해 바꾸기도 하지만 글의 내용은 유지하려 노력한다. 원 테이크로 써내려가는 게 유려한 글은 못 돼도 ‘솔직한 리뷰’는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글이 피상적이라면 영화가 어려웠던 거고, 영화상식 얘기만 많다면 그 영화가 ‘영화적’으로 뛰어났기 때문이겠지. 당시에 그렇게 썼으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손 가는 대로 리뷰를 쓰면서 글을 쓰는 것으로 인해 느끼는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영화에 대해서만, 내가 당장 느낀 (관람 후 2시간 이내에 쓴다) 바를 담백하지만 빠르게 적어내려 가는 것. ‘글’이라고 하기엔 토막 난 문장들이지만 그런 가벼운 글쓰기가 나에겐 절실했다. 어떻게 매번 구구절절하게 내 감정을 토로할 수 있으랴.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에 재미를 붙이면 되는 것을!

 

좋은 기회로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로 활동하게 됐다. 내 글이 다양한 사색이 공존하는 컬쳐 플랫폼에 실린다니. 영광스러운 일이다. 글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괴로워하는 괴팍한 사람이지만 에디터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즐겁게 다가오는 걸 보면 난 역시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인가보다. 다시 글쓰기에 재미를 붙인 지금 나에겐 큰 전환점이 될 것 같다. 멋진 글은 못 쓰더라도 손 가는 대로, 내가 재밌게 쓴 글들을 써내려 가려고 한다. 그러면 언젠가 나도 글을 잘 쓰게 되겠지 라는 헛바람 잔뜩 들어간 기대를 하면서. ‘손 가는 대로’ 쓰되 퇴고를 거듭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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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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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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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없음
    • 배설을 자주해야 건강하죠.
    • 0 0
  •  
  • 댕댕
    • 다른 글이 재밌어서 이글까지 보고 가요~ 글 잘 읽히게 잘 쓰십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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