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코로나 시대의 인간과 자연 [영화]

영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와 <원령공주>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
글 입력 2021.07.13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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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스튜디오의 초기 두 작품,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와 <원령공주>



포스트 코로나 19 시대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오가는 요즘 일부 학자들은 자연 보전에 대한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지브리 공식 데뷔작으로서 인간의 환경 파괴 위험성을 경고하며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도모한 작품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한 소녀(공주)가 인간으로부터 촉발된 전쟁과 산업사회의 폭력성을 막고 자연을 보전시킨다는 점에서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는 일반적으로 생태주의적인 관점에서 분석되곤 한다.


반면에 '원령공주’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가 제작되고 14년이 지난 1997년에야 개봉된 영화이다. ‘원령공주’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는 고대 신화의 영웅 서사라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유사한 측면이 있으나 사실은 전달하고자 하는 감독의 메시지가 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전염병 시대에 봉착한 우리 사회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와 ‘원령공주’를 어떤 관점으로 읽고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제작한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와 ‘원령공주’는 현재 우리가 아는 지브리 스튜디오가 되는 데까지 크게 기여를 한 작품들이다. 두 작품에선 공통적으로 계몽주의 이후 산업 문명의 정점까지 온 인간의 이기(利己)를 비판한다.

 

특히 그의 공식 지브리 데뷔작인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선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의 사상적 바탕이 될 만한 질료들을 다량으로 펼쳐 보인다. 따라서 그가 대중에게 익숙한 ‘이웃집 토토로’나 ‘벼랑 위의 포뇨’ 등을 제작함에 있어 근간이 된 작품이 바로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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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계곡의 나우시카’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어렵지 않다. ‘공존’과 ‘미래’에 대한 가치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보고나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 해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코로나 19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마스크 생활에 익숙해지게 된 모습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등장인물들이 방독면을 쓴 채로 썩은 숲(부해)을 거니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썩은 숲의 자정작용은 마치 지구의 자정작용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이는 코로나 19 또한 이와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지구가 자정작용을 통해 인구의 수를 조정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은 결과론적이며 현재의 암울한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코로나 19’의 발생 원인이 자연적이든지, 인공적이든지 간에 코로나 19가 유행하는 데 미쳤을 영향에서 인간이라는 변수를 제외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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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영향을 미치는 지구 환경을 예시로 들 수 있다. 경지 개발과 삼림 파괴는 야생동물의 서식지 파괴를 심화시키고, 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잦아질수록 바이러스는 옮겨가기 쉬워진다. 야생동물의 바이러스가 다른 동물에게 쉽게 전이되고, 그 동물은 인간의 환경에 자주 노출되어 새로운 숙주 역할을 할 수 있다. 인간 활동으로 인해 기후가 변화하는 것도 외면할 수 없다.


강우 형태의 변화, 기온의 급상승 그리고 이산화탄소의 증가는 바이러스의 성장 속도를 높이고 질병매개 동물의 서식 환경을 바꿔 균이 쉽게 전이되도록 한다. 예컨대 홍수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와 같은 감염원의 전파를 확산시킬 수 있다. 홍수로 인한 기온 및 습도 상승은 병원체뿐만이 아니라 숙주의 확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말라리아와 같은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나 곤충은 시원한 지대에서 기온이 상승하고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주위에서 점점 더 자주 접하게 되는 바이러스 소식은 ‘원령공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 장면은 바로 영화 초반부에 재앙신이 한 마을을 습격하는 부분이다. 멧돼지 신 나고는 인간이 쏜 총을 맞고 재앙신이 되어 아시타카가 사는 마을로 쳐들어간다. 재앙신에게 붙은 촉수의 떼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근원적인 공포를 상기시킨다. 그건 바로 카뮈의 ‘페스트’에서나 느낄 수 있을 법한 등골 서린 감각이다. 전염병에 대한 인간의 역사 깊은 혐오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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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쏜 총에 맞은 재앙신은 인간들을 공격한다. 그렇다면 자연을 먼저 공격한 인간이 원인을 제공한 것 아닌가. 그렇지만 인과 관계의 사슬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자기보존의 욕구는 인간의 이성을 발전시켰다. 이로써 인간은 자연 위협을 어느 정도 극복해낼 수 있었다. 에보시가 이끄는 마을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자연이 불러일으키는 재해만이 재앙은 아니었을 것이다. 같은 인간이라고 하는 자들이 저지르는 짓 또한 그들에게는 끔찍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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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로 총을 만들어 사무라이 계급에 대항하던 에보시의 모습에서 인간의 이성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여성을 보호하고 약자를 거두는 한편, 그들을 조직화된 사회 안에 적응시키고 기계처럼 편입시키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이념이 어떤 식으로 변화해왔는지 알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을 주체와 객체로 나누며, 지배와 피지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은 근대화를 거쳐 그동안 찾아볼 수 없던 세련의 극치로서 자리매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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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간이 자연을 대상화시키며 이룩한 발전의 모습은 처음부터 양면적인 특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심화되어 자연을 도구로 여기며, 자연을 인간이 지배할 대상이라고만 사유하는 모순을 낳게 하였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한다. 자기보존의 욕구가 잉태한 계몽의식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달라질 수 있도록 하였으나, 끊임없이 자연을 개발하며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도록 만들었다.

 

 

 

헤겔의 변증법,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 창시


 

헤겔의 변증법에 이르러 인간의 우월의식은 방점을 찍었고 승리한 줄로만 알았던 인간의 이성은 예상 외로 끔찍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기존의 변증법적 사고는 동일성의 사유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었으며 이는 비동일자들을 동일하게 만들려는 권력에의 의지로 이어졌다.


인간의 위대한 이성이 만들어낸 각종 무기들은 서로를 죽이기에 혈안이 된 인간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팔려나갔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은 어떠한가. 공장을 끝없이 늘려가며 대기의 질을 오염시키고 해양에 공장 폐수를 방류하며 수질오염을 가속화했다. 그로 인한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는 온전히 우리가 감당해야할 몫이 되었다. 자신의 삶을 위해 대립하는 인간과 자연의 모습은 ‘원령공주’의 멧돼지 부족 학살 장면에서 의미가 더욱 뚜렷해진다.


자기보존을 위한 대학살은 동족뿐만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생존을 위해 발전하게 되었던 인간 최초의 무기인 이성적 사고가 인간에게 해를 끼쳤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컬하다.

 

하지만 자기보존이 자기보존으로 이어지기 힘들어질 시점에서야 반성적 사고를 통한 성찰은 이루어진다. 이는 곧 근대철학에서 아도르노가 부정변증법을 창시하게 된 원류가 되었다. 주체-주체라는 평등한 사고가 부재한 상황에선 자기보존도 불가하다. 타자는 결국 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원령공주’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와 다르게 ‘공존’에 대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이정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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