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름다운 것은 짧은 법 :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

시를 다시금 생각해 보다
글 입력 2021.07.12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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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시는 고등학교 시절에 멈춰있다. 서정시, 정형시, 운율..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이 떠올랐다. 공부했던 기억이 남아서인지 여전히 시를 보면 좋다는 생각보단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자인 나태주 시인은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고 한다. 책은 시인이 좋아하는 시들과 그에 대한 감상으로 구성되어있다. 시에 담긴 시인의 인생과 감정을 서술하며 감탄과 반성을 내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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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왜 우리는 시를 좋아할까



세상은 바야흐로 감성시대. SNS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감성을 자극하는 시와 글귀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시가 어렵다곤 했지만 나부터서도 휴대폰 갤러리에 어디선가 주워온 시의 조각들이 있다.


짧은 글귀는 나조차 몰랐던 내 감정을 단어로 정의해준다. 드라마를 통해 유명세를 탄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 나온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구절처럼.

 

막연한 감정들에 적절한 언어를 부여해주는 순간 형체가 생긴다. 누군가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처럼 말 못할 감정들은 언어가 되어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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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시는 저자의 말처럼 인생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대개는 물리적 문제의 해결을 넘어서 정신적 해답을 준다. 마음의 문제에 해답을 알려주는 인생의 가르침은 줄곧 가슴에 남는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 조동화, 나 하나 꽃 피어 中



살다보면 어느 상황으로든 마주치게 되는 문제다. ‘나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그런 사람들에게 화자는 너도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꽃밭이 되는 것이라 말한다. ‘너부터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에 와 닿는 표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낭만적이고 함축적인 언어로 마음을 대변해주니까.

 

 

 

제 2장. 오, 나의 어머니



하지만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때에 아이들은 시를 가장 어려워하고, 싫어했다. 짧은 문장에서 함축된 의미를 추론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화자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사실 나도 시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화자의 감정이 의아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도 한국 시 남성화자 특유의 ‘여자타령’이 불편했다.


시 속에 등장하는 여성은 대개 ‘어머니’, ‘누이’ 혹은 ‘소녀’다. 시 속 어머니는 헌신적이고, 늘 희생적이다. 화자는 그런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가엾게 여기며 후회한다. 화자는 철이 없고 무심한 자신을 반성하지만 반성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화자에게 어머니는 ‘자기 인생도 없이 화자의 뒷바라지만 하다 늙어버린 존재’이며, ‘화자를 위해 희생하는 숭고한 사랑의 결정체’이고, 자신은 그런 어머니를 한없이 연민한다.



어린 사발들

채우는 것만이

주름을 꽃 피우는 보람이더니


의학박사 아들에게도

배 아프다면

소금과 물을 담아 오신다


- 손기섭, 어머니 中



그늘 속에 가려진 어머니의 인생을 조명하고, 소박하고 일상적인 상황을 통해 사랑을 드러낸다. 단편적인 단어들만으로도 어머니의 애정을 짐작할 수 있어 좋은 시였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어머니의 사랑을 주제로 쓰인 시들을 읽다보면 헌신과 희생이 어머니의 의무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숭고한 어머니의 사랑’은 꼭 헌신과 희생으로부터 오는가? 희생하지 않은 사랑은 숭고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모성애’는 타고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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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역시 동일선상에 있다. 누이는 예쁘고 살갑고 역시 화자에게 헌신적이다. 어머니 대신 사랑을 베풀기도 하고, 어린 화자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다. 그러면서도 예쁘게 웃고, 늘 화자를 안아준다. 화자는 누이에게서조차 어머니를 본다.


가족 간에 사랑이 존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희생과 헌신으로 입증되어야 함은 옳지 않다. 그 의무가 여성에게 지워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여성상을 만들어 특정 행동을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수많은 시 속에 등장하는 아버지 역시 가족을 위해 헌신한다. 하지만 양상이 조금 다르다. 그는 존경의 대상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가 안쓰러운 반면,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는 존경스럽게 그려진다. 이 둘 사이에는 왜 차이가 생겼을까?


더 많은 인간상이 담긴 시를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제 3장. 예쁜 생각, 예쁜 말, 예쁜 글



시를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도 ‘시적이다’는 표현은 여전히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 시의 매력 중 하나는 예쁜 언어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일상적 언어를 사용한 시들도 각자의 매력을 가지지만 예쁜 시어들이 가득한 시들을 읽다보면 아름답고 따스한 기억과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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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동시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던 기억도 난다. 하늘과 바다, 동산과 들판, 미루나무와 해바라기가 등장하는 예쁜 가사는 괜히 마음이 벅차고 설레게 한다.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 나희덕, 푸른 밤 中

 


은유적이고 서정적인 표현들이 마음을 설레게 하고, 감정으로 젖어들게 한다. 나도 이런 아름다운 언어로 시를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이번 도서를 읽으며 고등학교 시절에 멈춰있던 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시의 종류, 시어의 의미를 외우기만 했던 그때와는 달리 시의 소재와 언어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는 나태주 시인의 말을 아직은 완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앞으로 더 많은 시를 읽어가며 인생을 찾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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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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