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트센터 인천 - 라흐마니노프의 겨울 [공연]

인천에서 상상한 러시아의 겨울
글 입력 2021.07.1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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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센터인천은 호수에 정박한 배처럼 송도 워터프런트 호수에 깊숙이 맞닿아 있다. 센터의 뒤편이 호수를 향해 있고 정문은 송도 센트럴파크를 바라보고 있는데, 앞쪽으로 챙이 달린 덩어리 같은 모양 덕에 호수를 등지고 앉아 있는 두꺼비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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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내부는 두꺼비 뱃속보다는 조개 입 속을 더 닮았다. 그날의 프로그램은 <작곡가 시리즈 - 라흐마니노프1>로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교향곡 2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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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는 KBS교향악단. 지휘에 최희준과 피아노에 백혜선.

 

 

 

1.


 

협주곡 2번의 도입부에서부터 백혜선 님이 살짝 다른 연주를 하시는 바람에 귀를 바짝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백혜선 님은 통상적인 연주와 달리 도입부에 한 음을 더 치셨는데, 오른손 화음과 왼손 단음{파}의 사이에 있는 왼손 단음보다 한 옥타브 높은 {파}를 중간에 끼워 넣어 연주하셨다.

 

온 유튜브를 다 뒤져봐도 그렇게 치는 피아니스트는 없다. 왜일까? 사실 따지고 보면 악보를 보고 음악을 연주하는 일은 공룡 뼈를 보고 공룡의 모습을 유추하는 일이나 설계도를 보고 집을 짓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기본적인 구조물이 있고 그 위에는 연주자의 해석이 더해지는 것이라서 그녀는 집을 다 지어 놓고 처마 밑에 솔방울 하나 정도를 매단 것이다. 추가된 건반 하나에 관한 생각이 한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그 한 음을 끼워 넣는 것이 그녀에겐 그만큼이나 중요한 음악적 해석이었던 것일까?

 

연주는 강렬했고, 올해 본 공연 중에 가장 좋았다.

 


 

 

 

2.


 

만화 <피아노 숲>의 주인공 이치노세 카이는 우리나라처럼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지인 일본에서, 그것도 숲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평생을 일본에서 살다가 쇼팽 콩쿠르 출전을 위해 폴란드에 온 카이는 폴란드의 광활한 대지를 보고 악상과 곡 해석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쇼팽이 나고 자란 땅을 밟고서 그는 다음과 같이 되뇐다. “쇼팽은 평지에서 자랐구나.”

 

예술가의 몸이 어떤 기후와 지리를 배경으로 성장했는가는 흥미로운 주제다. 창밖에는 비가 더 많이 내렸는지, 눈이 더 많이 내렸는지. 지평선을 보며 자랐는지, 수평선을 보며 자랐는지.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풍경화를 그릴 때면 항상 갈색 물감이 동났는지, 초록색 물감이 동났는지 등등. 우리는 그들의 작품세계를 통해 그들이 나고 자란 곳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들이 나고 자란 곳에 대한 이해를 통해 그들의 작품세계를 더 깊이 알게 되기도 한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겨울이 긴 러시아의 북서부에서 태어났다. 언젠가 사람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러시아 북부의 혹독한 기후가 러시아인들의 문화예술을 발전시켰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나가서 할 것도 없으니 모닥불 앞에 앉아 엄청난 양의 책을 읽었고, 하얀 이불을 덮은 시베리아 평원의 풍경 같은 것들이 그들의 미감을 키웠다는 것이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창밖 풍경을 캔버스 삼아 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 옛날 소련의 주당 독서 시간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고 한다. 하물며, 도대체 왜 우리는 오줌을 싸면 그 자리에서 고드름이 되어 버리는 것인가 하며 분기탱천하는 러시아 농민들의 울분을 한번 상상해보라. 누군가는 내면을 다스리기 위해 독서를 하러 모닥불 앞으로 갔을 것이고, 누군가는 넘치는 열에너지를 창작에너지로 전환했을 것이다. 가히 소련의 문화예술을 단단히 제련하고도 남을 추위다.


현악 파트가 제시하는 협주곡 2번의 제1 주제는 겨울바람을 연상시켰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곡의 현악 파트와는 달리 훨씬 더 거친 질감이 느껴지는 음색이었다. 누군가 협주곡은 독주자와 관현악단의 싸움과도 같다고 한 적이 있는데, 매서운 바람과도 같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이야말로 그 표현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음표가 워낙 많아 피아니스트에게 최고 수준의 기교와 파워를 요구하는 피아노 협주곡 2, 3번은 피아노를 정통으로 때리는 강풍과도 같다. 조금이라도 힘이 달리면 피아노 소리는 금세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묻혀 버리기 십상이다(특히 피날레 부분에서). 따라서 독주자는 오케스트라와 관객 사이에서 러시아로부터 불어온 겨울바람에 40분 동안이나 혈혈단신으로 맞서야 한다.


사실 피아니스트가 힘에 부치는 듯 헐떡이며 한계령을 넘어가는 듯한 느낌이 매력적인 곡이기도 하다. 따라서 내게 이런 곡은 오히려 너무 수월하게 치는 것이 별로 매력이 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아무리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가 좋다 하더라도 고생 끝에 결국 관현악단을 쓰러트리는 승리의 피아노와 간신히 줄을 붙잡고 있다가 자빠져 버리는 피아노는 엄연히 다르다.

 

전에 다른 연주자와 다른 관현악단의 조합으로 같은 곡을 들었을 때는 그런 음향의 균형적인 부분에서 매우 아쉬웠지만, 다행히 이날의 연주는 백혜선 님의 타건이 강하기도 하고 홀의 울림이 워낙 뛰어나서 전반적으로 좋은 소리가 들렸다.

 

 


3.


 

나는 콘서트를 갈 때마다 곡의 가장 서정적이거나 명상적인 순간, 일반적으로 템포가 느려지는 순간에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객석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지휘자나 연주자의 얼굴 표정만큼이나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에도 음악이 흐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면 좀 오글거리더라도 상당히 그럴듯해 보이겠지만 사실 표정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중간에 누가 날 노려보며 입 모양으로 욕을 하고 있었다고 해도 눈치조차 채지 못했을 것이다.

 

객석을 둘러보는 이유는 그냥 군중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장의 관객들은 귀가 있는 군중, 즉 청중이다. 공연장의 문이 닫히면 800명 가량 되는 사람들의 800개 가량 되는 입 또한 굳게 닫힌다. 모두가 조용한 집중력으로 무대 위만을 주시한다. 이때 세계는 사과처럼 반절로 쪼개진다. 소리를 내는 것은(그것도 가장 크고 막강한 소리로) 세계의 절반뿐이며 세계의 나머지 반쪽은 기꺼이 쥐 죽은 듯 닥치고 있다.

 

교향곡 2번 중에서도 아다지오 파트를 들을 때 나는 객석을 둘러보았고, 나를 포함한 청중들이 어딘가로 다 같이 이동하고 있다고, 객석 전체가 다음 챕터로 넘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그날의 공연은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의 격상 이틀 전에 이루어졌다. 12일부터 우리는 또다시 길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가게 될 터였다.

 

성당에서 행하는 미사 중에 평화의 인사를 나누듯, 나는 우리 모두가 그 느리고 서정적인 선율을 들으며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장면을 상상했다. 긴 잠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앞으로도 만날 일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작별을 나누고 그들 또한 악몽을 꾸지 않고 무사히 잠에서 깨어나기를 바라는 제의로써의 3악장. 적어도 나에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는 11일에서 12일로 넘어가는 자정이 아니라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이 2악장에서 3악장으로 넘어가던 10일 저녁 6시 30분 경에 시작되었다.

 

 

 

4.


 

조개 입 속과 솔방울, 바람과 작별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공연은 끝이 났다. 바깥으로 나오니 해는 구름에 가려지고 아트센터 인천 주변으로 안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주변을 좀 걸을까 생각도 했지만, 곧 비가 떨어질 것 같아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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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이젠 러시아의 겨울도 많이 짧아졌다고 한다. 그럼 이제 바람은 어디서 불어온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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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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