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끝과 시작

글 입력 2021.07.0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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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 아트인사이트4 이미지.jpg


 

어떤 일이든 내 삶에 끼어드는 순간 시작이 있고 끝이 있기 마련이다.

 

대개 시작은 명확하지만 끝은 알기가 어렵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서야 그것이 끝이었음을 인지하게 된다. 왜 사건과 관계는 제멋대로 시작했다가 끝나버리는 걸까. 내가 그것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긴 한걸까.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지만 과거에는 무척이나 친했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랑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전화를 했을 때는 그게 마지막일 줄 몰랐다. 그 친구와 첫만남은 당연히 생각이 난다. 아마 3월 2일, 개학식 때겠지. 시작한 순간에야 시작인 줄 알았지만 끝나는 순간은 끝인줄 몰랐다.

 

재밌는 건 그게 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살다보면 언젠가 다시 한 번쯤 우연히 만날 날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은 끝이 아니다. 이렇듯, 마지막은 늘 불확실하다. 그건 아직 삶이 지속되고 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언제 죽을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지만, 죽기 전까지 어떤 일이 생길지도 아무도 알 수 없다.


*

 

영화관에 가서 어떤 영화를 본다고 생각해보자. 영화가 시작하는 시간과 끝나는 시간은 정해져있다. 하지만 내가 그 영화를 너무 좋아해 깊게 빠져버렸다면, 그래서 그 영화를 다시 보고 그 영화 해석에 대해 찾아보고 감상을 남기고 영화에 대해 몇 달이나 생각한다면 그 영화가 끝난 물리적인 시간이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 영화가 내 삶에 있어 끝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었을 때, 마음이 식었을 때, 생각해도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올라가지 않을 때, 영화에 대해 며칠이나 생각하지 않았을 때, 영화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렸을 때? 끝이란 무엇이고, 끝이란 게 의미가 있을까?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되는 게 무섭다. 영화든 책이든 뮤지컬이든 사람이든, 한 번 빠지면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진하게 되어버린다. 마음껏 좋아하고 있는 그 순간의 감정이 얼마나 벅찬지 알고 있다. 해야할 다른 일들을 모른 척 눈감아버리면서까지 푹 빠질 때의 즐거움도 알고 있다.

 

그런데 문득 그것이 끝나버리는 순간이 온다. 딱딱하게 식어서 굳어버린 손난로처럼 더 이상 어떤 기쁨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리는 순간이 언젠가 다가온다. 명확히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그라데이션처럼 서서히 흐릿해져가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은 좋아하지 않는구나, 하고 깨달아버리는 거다.

 

끝은 그래서 어딘가 쓸쓸한 데가 있다.


*

 

끝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끝이 없다. 시작은 선연한데 끝이 이토록 막연하다는 게 신기하다.

 

내가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쓰게 된 시작은 20년 10월 22일이다. 그럼 끝은 언제일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지금 이 글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고, 아무도 알 수 없다. 내 의지로 끝낼 수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끝날 수도 있다. 이 글이 올라가지 않는다면, 저번에 썼던 글이 끝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 언젠가 다가올 끝을 알면서도 기꺼이 새로운 시작을 한다. 시작은 필연적으로 끝을 동반하는데 우리는 시작밖에 알 수가 없다. 어차피 인생은 모르는 일 투성이니까 끝을 모르는 것쯤은 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끝이 궁금하다. 이미 끝나버렸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 건지, 앞으로 계속 끝나지 않을 건지, 누가 내게만 몰래 알려줬으면 좋겠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안우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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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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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i mina
    • 덕질에 대한 글 재밌게 읽어서 다른 글도 몇 개 읽어봤네요.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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