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가 받고 싶다

글 입력 2021.07.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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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눌러쓴 편지 이미지.jpg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며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것이 많아진다. 옛 추억으로 치부되어 버리는 많은 일들이 아쉽게 느껴진다.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를 켰을 때

흐르는 사연에 그저 눈물만 흘렸었지

넌 그랬었지

내가 전하고 있는 고백인줄 모르고


바이브가 부른 ‘별이 빛나는 밤에’에 실린 가사다.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전화나 카톡, 문자를 하는게 아니라 사연을 적은 엽서를 라디오로 보내는 게 얼마나 낭만적인가.

 

제 사연이 당첨이 될지 안 될지, 그 사람이 들을지 안 들을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낭만은 필연적으로 불편함을 수반한다. 그러한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에서 오는 특별함이 있다. 현재의 발전한 기술이 불편함을 제거하며 동시에 사라져버린, 그 감성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그 중 하나가 편지다. 예쁜 편지지를 골라, 편지지에 어울리는 펜을 골라, 최대한 예쁜 글씨체로 마음을 가득 담아 내용을 채워낸다. 첫부분은 주로 헛소리로 시작하다 갈수록 진지해지고 섬세해진다. 만약 감정적인 글을 쓰고 싶다면 새벽시간을 이용해야한다. 새벽에 감정이 풍부해지고 괜히 센치해지는 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닐테니까.


네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우리가 어떤 추억을 쌓아왔는지, 예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고, 지금 내가 이런 상황에 있고, 네가 가진 이런 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이런 편지를 쓰다보면 한 장으로는 당연히 부족하다. 두 번째 편지지를 꺼내 먼젓번 편지지에는 1을 써넣고, 곱게 접어낸다. 2, 3, 숫자는 늘어나고 편지봉투는 제법 도톰해진다.


편지봉투에 보내는 이의 주소와 이름, 받는 이의 주소와 이름을 쓴다. 어릴 때는 그 위치를 헷갈려서 반대로 쓰기도 했는데 이제 그럴 일은 없다. 미리 사둔 우표를 붙이고, 테이프로 편지 봉투를 붙인다. 예쁜 스티커도 괜히 붙여본다. 그리고 빨간 우체통에 넣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끝이다. 이제 그 편지가 상대방의 손에 닿고, 상대방이 편지를 읽고, 나에게 답장을 쓰는 것은 내 소관이 아니다.


이메일과 비교하자면 불편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글을 쓰다가 지우고 싶은 내용이 생길 때, 간단하게 백스페이스를 누르기만 하면 되는 이메일과는 다르게 편지는 화이트를 써야한다. (연필은 번지고 흐릿해지기 때문에 편지 쓸 때 추천하지 않는다.) 만약 지운 티를 내고 싶지 않다면 새로운 편지지를 꺼내 다시 써야한다.

 

내가 보낸 내용을 언제든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이메일과는 다르게 편지는 다시 꺼내볼 수 없다. 이미 남의 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나중에 상대방이 말해줬을 때, 내가 그런 말도 했냐며 별 소리를 다 했다고 놀라고 부끄러워 할 수 있는 건 편지밖에 없다. 상대방이 받을 때 까지 차이는 더하다. 1초, 아니면 며칠.


손편지에서 느껴지는 정성과 사랑은 이러한 불편함에서 나오는 걸지도 모른다. 편지가 올 때까지 매일매일 우편함을 확인하는 기대감, 네 글씨로 내 이름이 적힌 편지봉투를 뜯어볼 때의 두근거림, 접힌 편지지를 조심스레 펼쳐볼 때의 짜릿함. 이런 건 이메일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가 없는 감정이다.


지금이라도 편지지를 꺼내 글을 쓰기만하면 되는데 나는 뭐가 무서워서 이렇게 과거를 곱씹으며 그립다는 말로 끝내는 걸까. 아직 나는 어린데, 갈수록 겁만 많아진다. 심장이 콩알만해지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심장이 점점 작아지는 걸까. 더 이상 놀이공원이 개장할 때 입장해서 롤러코스터와 바이킹, 자이로드롭을 비롯해 온갖 놀이기구를 섭렵하고 밥은 물론 츄러스에 핫도그까지 야무지게 먹고 퍼레이드를 본 뒤에 폐장할 때 나오지 않는다. 느지막하게 오후에 입장해서 무섭지 않은 놀이기구를 세 네개 타고 나면 지쳐서 나와야한다.


과거를 그리워하고 추억을 곱씹는 건 현재가 불만족스러운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걸까. 기분이 괜히 울적해지는 날이면 이제껏 차곡차곡 모았던 편지를 꺼내 읽어본다. 편지를 읽으면 그 때로 다시 돌아가는 것같다. 십년 전, 오년 전, 일년 전 일이 바로 어제같다. 맞아, 이런 일이 있었지. 이런 대화를 나눴었지. 이제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과 얼마나 친밀했었는지, 가까웠었는지를 곱씹는 일은 어딘가 씁쓸한 데가 있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안우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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