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가 먼저 그를 사랑했는가 - 나의 EX [영화]

당신한테 다 줘서 난 남은 감정이 없어.
글 입력 2021.07.0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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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에도 순서를 매긴다. 누가 먼저 그를 사랑했는가? 영화는 그렇게 시작한다.

 

중학생인 쑹청시는 억척스러운 엄마의 잔소리가 제일 듣기 싫은 무뚝뚝한 아들이다. 엄마를 류싼롄(사영환)이라 부르며 엄마의 말에 매번 반항하곤 한다. 엄마인 류싼롄은 퉁명스러운 아들이지만 개의치 않고 아들의 모든 일에 신경을 쓴다. 좋은 밥,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비싼 돈 들이며 사립 학교를 보내고 심리 상담 비용도 거리낌 없이 지불한다.

 

그 둘의 관계에서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 왜 모자는 아버지와 같이 살지 않을까? 그녀의 남편 쑹정위안이 게이여서?


쑹청시의 아버지 쑹정위안은 대학교수로 취미생활로 연극단의 음악 감독하며 살아갔다. 연극단을 도와주다가 그곳에서 아제(구택)를 만나게 된다. 아제는 연극 단원이지만 온갖 잡일을 맡으며 지내던 차에 아제, 자신도 모르게 쑹정위안에게 끌린다. 그 둘을 사랑에 빠지지만 쑹정위안은 어느날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고 아제에게 선언하며 연극단과 아제를 떠난다.


 

아제 : 넌 수학 잘하니까 물어볼께. 1만 년이 얼마나 길까?

쑹청시 : 1만 년 만큼이요.

아제 : 아니, 어떤 사람이 평범해지고 싶다면서 널 떠났을 때, 그 사람이 떠난 날부터 하루하루가 바로 1만 년인 거야.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떠난 쑹정위안은 류싼롄을 만나 결혼한다. 그 둘은 아들 쑹청시를 낳으며 평범한 부부처럼 생활해왔다. 그러나 쑹정위안은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까지 쑹정위안은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쑹정위안은 아내 류싼롄에게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며 이혼하자고 말한다.

 

쑹청시를 낳은 이후로 소원했던 관계지만 류싼롄은 남편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하지만 굳건한 그의 모습에 큰 배신감을 느낀다. 그는 아내와 자식을 떠나 자신이 사랑한 아제에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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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둘은 다시 재회에 쑹정위안이 암으로 사망할때까지 같이 지낸다. 그리고 쑹정위안의 보험금은 아제의 앞으로 남겨진다. 그 사실에 분노한 류싼롄은 아제에게 찾아가 그 돈을 내놓으라 소리치며 아제를 비난하고 물건을 던지며 분노한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쑹청시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이 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이 생겨나게 된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제에게 무조건 보험금을 받아낼 것이라 말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쑹청시는 아제의 집으로 가출한다. 류싼롄은 그 모습에 가슴이 찢어지지만 자신에게 더이상 참견하면 죽을것이라 말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아들을 잘 보살펴달라 말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아제는 이 모든 상황이 황당하지만, 기묘한 관계의 동거를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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쑹정위안은 참 나쁜 남자다. 그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지 않았더라면, 아니면 류싼롄을 속이지만 않았더라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보여주지 않는 그의 매력이 류싼롄과 아제에게는 보였던 것이다.

 

쑹정위안은 교수라는 사회적 위치와 사람들의 시선에 얽매이고 움츠러드는 시간을 이겨내지 못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이 바로 사랑한 아제를 떠나 평범한 삶을 살겠다고 선언한 그 시간들이다. 쑹정위안이 말한 평범한 삶은 여자와 결혼하고 자식을 낳는 삶이다. 그러나 그 평범한 삶을 사는 동안 쑹정위안은 아제를 잊지 못했다. 죽음이 예정되어 있을 때 쑹정위안이 선택한 삶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이었다. 바로 자신이 자신일 수 있는 삶 말이다.

 

이미 모든 상황은 일어났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그를 사랑했던 여자, 남자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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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사랑했던 여자, 류싼롄은 아들을 들들 볶으며 잔소리를 하고 억척스러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비호감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고 그녀이 삶의 단편을 들여다보니 그녀는 그렇게 살아가야만 했던 것이다.

 

억척스럽고 아들조차 자신을 미워하지만 그는 자신이 사랑한 사람의 아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속이고 결혼했지만 악기를 만지며 순수하게 웃던 그의 모습을 영원히 잊을 수 없으니까.


 

류싼롄 :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저한테 좀 알려 주세요.

정말 다 가짜였을까요?

조금도 절 사랑하지 않았을까요?

정말 이만큼도 사랑하지 않았을까요?

 

 

류싼롄도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며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남편이 동성애자란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녀는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그녀는 강했다. 그래서 버티고 버텼다. 그러나 사랑했던 사람에게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었다’라고 듣는 것만큼 가슴 아픈 일이 있을까?

 

그녀는 아제가 싫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아제를 향한 동질감과 동정심을 느낀다. 사랑했지만 그 사랑이 인정받을 수 없어서 동정하고,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에 대한 동질감.

 

그녀는 아제의 연극을 보고 깨닫는다. 아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연극을 그날 했야만 했던 이유, 그것은 연극날이 쑹정위안이 세상을 떠난 지 100일째라는 것과 그 연극이 자신이 쑹정위안을 사랑에 빠지게 했던 시작이였다.

 

잊고 싶었지만 잊을 수 없던 그날, 그리고 이 연극을 통해 류싼롄은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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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싼롄에게는 남편을 훔쳐간 파렴치한 변태, 쑹청시에게는 아빠를 뺏어간 불륜남, 쑹정위안에게는 가장 사랑한 연인, 이 모든 것이 가리키는 건 아제라는 인물이다.

 

쑹청시의 눈으로 본 아제는 수상한 꿍꿍이를 갖고 있는 인물처럼 그려진다. 정말 아버지를 사랑하게 맞는 것인지, 돈을 노리고 접근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아제는 진심으로 쑹정위안을 사랑했다. 아니, 사랑하고 있다.

 

죽고 나서도 그를 잊지 못한다. 핸드폰 벨소리, 그가 남긴 책, 집안의 모든 물건, 그는 이미 죽었지만 아직도 습관처럼 그가 좋아했던 만두를 사가지고 병원에 가곤 한다. 아제는 쑹정위안을 잃은 슬픔을 그 누구보다 가슴 속 깊숙이 품고 살아간다.

 

 

쑹정위안 : 감정을 실어야지.

아제 :당신한테 다 줘서 난 남은 감정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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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의 모든 사랑이었다. 그래서 아제는 그를 떠나보내고 난 뒤 어딘가 고장난 사람처럼 보였다. 분명히 펑펑 울만큼 슬퍼보이는데 울지 않는다. 그저 팔리지 않는 연극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15년 전 인기 있었지만 15년이 흐른 지금 아무도 찾지 않는 연극을 자신의 발이 부러져도 연극단원이 돈을 받지 못해 연극단을 떠나도 무슨 일이 있어도 정해진 그날 이 연극을 해야만 했다. 아제에게 이 연극이 쏭정위안를 향한 사랑의 시작이자 마지막이였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연극은 마무리되고, 아제는 모든 것이 끝난 눈동자로 허공을 바라봤다. 그 때 관객석에서 아제의 어머니가 아제에게 주기 위한 꽃을 들고 아제를 찾아왔다. 그는 텅빈 눈동자에 자신의 어머니를 담고 펑펑 울었다.

 

 

아제 : 당신 누구냐고 엄마가 묻더라.

쑹정위안 : 교수, 룸메이트, 극장 동료....

아제 : 난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아!

쑹정위안 : 솔직하게 말하면 어머니가 상처받으실 거야.

아제 : 그럴 리 없어. 날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쑹정위안 : 어머니한테는 너밖에 안 남았잖아.

아제 : 내가 당신을 좋아해도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아.

쑹정위안 : 네가 솔직하게 말 안 해도 우리는 우리야!

아제 : 왜 우리는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되는데?

쑹정위안 : 가족을 힘들게 안 하고 걱정 안 시키는 게 우리 책임이니까

아제 :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데 왜 엄마가 힘들어?

쑹정위안 : 나도 몰라...하지만 분명 슬퍼하실 거야...말 들어!

 


누가 먼저 그를 사랑했는가?  따져보면 아제가 먼저다. 그러나 누가 먼저 그를 사랑했는가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각자의 사랑이 어떤 형태로 그들에게 남게 되었는가?

 

그의 죽음 이후 살아갈 쑹청시, 류싼롄 그리고 아제의 삶에서 물질적인 형태로든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든 그를 사랑했기에 그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류싼롄에게는 아들이, 아제에게는 어머니의 인정과 사랑이 그리고 쑹청시에게는 미래가 남았다.

 

그를 사랑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잊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지만 그를 사랑했기에 그들은 웃었고 울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류싼롄과 쑹청시는 더이상 불편한 모자관계가 아닌 연극에서 나왔던 주제곡을 흥얼거리며 길거리 음식을 먹고 같이 웃으며 길을 걸어간다. 류싼롄은 쑹정위안의 보험금을 아제에게 던져주고 재빨리 걸음을 옮기기도 하면서, 그렇게 말이다.

 

 

[나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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