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

글 입력 2021.07.0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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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주어지는 여러 책들을 읽다 보면, 문득 시집을 꺼내들고 싶은 순간이 있다. 간결함이 주는 통쾌함을 느끼고 싶은 순간, 그 순간 만나는 좋은 시 한 편은 내게 무엇보다도 큰 행복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시인 나태주가 엮은 시집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는 그가 꼽은 인생시 125편이 수록되어 있다. 나태주의 따스함이 묻어나는 감상평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시집이다.

 

무엇보다도 여러 시들을 엮어서 출판한 시집이다 보니, 여러 시인들의 시를 마음껏 읽어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유명한 시들부터 처음 보는 시들까지, 다양한 감성과 소재의 시들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오늘은 이 시에 마음을 빼앗겼다가 내일은 저 시에 마음을 빼앗기는 경험은 퍽 아름답기 때문이다.

 
*

꽃나무 - 이상

 

벌판한복판에 꽃나무하나가 있소. 근처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열심으로생각하는것처럼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하여그러는것처럼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내었소.

 

나는 이상의 <이런 시>를 참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노래하는 시라 평하지만, 나는 왠지 이런 시를 읽을 때마다 이상이 삶을 관조하는 태도가 묻어나는 성찰의 시처럼 느껴진다. 읽을수록 깊은 맛이 나서 참 좋아하는 시이다. 그런 이상의 꽃나무라는 시를 나태주 시인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이상만이 가진 그 이상스러운 특징이 오롯이 묻어나는 시가 아닐 수 없다.

 

벌판 한복판에 서 있는 꽃나무 한 그루. 그 주변에는 다른 꽃나무들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 꽃나무는 내가 생각만큼 예쁜 꽃을 피워내지 못한다. 그 모습을 보던 나는 달아난다. 그 꽃나무를 위해서, 감히 내 생각에 미치지 못한 꽃나무를 위해서. 꽃나무를 생각하는 이상의 마음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는 어떤 마음으로 달아난 것일까?

 

내가 이상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시의 상황이 시적 상황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시 <꽃나무>에서 나타나는 이상의 달아나는 마음은 일상에서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는 상대를 탓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나의 충족되지 못한 마음이 들킬까 먼저 돌아서는 마음은 상대를 향한 배려일지도 모른다. 나의 욕심이 너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워, 나보다 너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

나 하나 꽃 피어 - 조동화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이런 마음이 참 좋다. 나 하나쯤이 아닌, 나로부터 시작된다 생각하는 마음.

 

풀밭이 꽃밭이 되기 위해선 나로부터, 그리고 너로부터의 꽃피움이 필요하다. 산을 물들이기 위해선 나로부터, 그리고 너로부터의 물듦이 필요하다. 이런 마음은 참 귀하다. 특히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는 지금 이 사회에서, 나로부터의 변화가 필요하다 말하는 시의 외침이 반갑다.

 

사람마다 꽂히는 포인트가 다 다른 법이다. 그래서 유독 시는 추천을 하는 것도 추천을 받는 것도 어렵게만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는 포인트를 반드시 상대가 이해하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줄글은 앞뒤 설명이라도 있는데, 시는 그런 부분을 스스로 생각하여 사이사이를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깊은 생각을 요구한다. 따라서 같은 시를 보고 적어도 찌릿함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무척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시집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를 통해 내 마음에 시 몇 편이 들어왔다는 것은 나태주 시인과 내가 같은 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이것이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좋은 시를 통해 시인과 따스한 이야기를 나눈 것만 같아,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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