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람의 예술 -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열정과 통찰

글 입력 2021.06.29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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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문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어느 누구를 먼저 만나든 괜찮다고 말이다. 이 구절에 꽂혔다. 배치된 순서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펴진 부분부터 시작해도 된다는 당부는 또 다른 흥미를 이끌었다. 그래서 나는 작가의 말을 실천하기로 했다. 집히는 만큼만 잡고 펼쳐서 나오는 사람부터 읽었다. 불시에 만난, 누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마주한 낯선 이의 이야기라 그런지 더욱 귀 기울이게 되었다. 그저 기분상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처음 만난 분은 배우 나하나 씨였다. 그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는 노란색이 떠올랐다. 조금 주황끼가 도는 진한 노란색 말이다. 아쉽게도 그분의 작품을 본 적이 없던 터라 배우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다. 그럼에도 굉장히 단단하고 열정적이고 밝은 사람임을 느꼈다. 밝고 성실한 에너지는 노란색, 그 위에 열정이 덧칠해져 붉은 끼가 돌고, 쉽게 물들 수 있는 색임에도 단단한 성정이 자신의 노란 고유성을 뚜렷하게 지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은 소설가 정세랑 씨의 인터뷰였고, 그다음은 시인 황인찬 씨였다. 정세랑 씨는 소설만큼 변주가 많았다. 인터뷰 속 그는 드라마에 나왔던 젤리 괴물들처럼 알록달록하고 약간은 투명한 색을 닮았다. 사람을 사랑하고, 그래서 사람이 사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동물을 좋아하고 판타지물을 쓴다. 그의 색은 어느 하나로 정의하지 못할 만큼 스펙트럼이 넓었다.


시인 황인찬 씨는 갈색이었다. 나무 같은 우직함이 느껴지는 인터뷰였다. 자신의 인생에서 시를 덜어내면 남는 것이 없다는 그의 말 때문이었다.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일을 위해 온 인생을 바칠 수 있을까? 감히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에게서 가장 부러웠던 부분은 다른 시인을 대하는 자세였다. 좋은 시를 보면 자극을 받고, 괜찮은 시인이 나오길 고대한다. 그의 열등감 없이 예술가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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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아이돌 가수 최유정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랜덤으로 만났지만 이 사람의 인터뷰만큼은 맨 마지막에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거창한 이유는 없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가수라 그랬다. 좋아하는 것을 아꼈다가 끝에 다다라서야 찾는 내 고질적인 버릇이었다.


유정이의 색은 차분한 민트색 같았다. 처음 그를 알았을 때는 조금 더 진하고 톡톡 튀는 원색처럼 보였는데, 소위 말하는 덕질을 하면 할수록 색깔이 옅어져갔다. 나쁜 뜻은 아니고 언제나 밝고 즐겁기만 한 사람이 아니구나를 알게 되었을 뿐이다. 인터뷰를 읽어보니 실제로 그도 조금씩 더 마음을 가라앉는 법을 배워가는 듯했다. 연예인 최유정과 그저 인간 최유정 사이의 간극을 잘 메워나가고 있구나를 느껴 마음이 찡했다.


앞서 언급한 소수의 사람들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인터뷰들도 모두 흥미로웠다. 다른 직업, 다른 환경에서 예술을 하고 있는 그들은 저마다의 색을 갖고 있었다. 인터뷰를 읽으며 그들의 색을 채취해보는 경험이 즐거웠다. 그들이 삶과 자신의 직업을 대하는 태도들이 모두 달라서, 그것이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내가 예술을 해도 될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은 지금도 반신반의하고 있다. 모든 것을 쏟아부을 정도로 예술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만큼 잘하지 못해서, 어떤 면에서는 예술이 내게는 그저 수단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서 그랬다. 가장 자유로운 예술을 하면서 나는 괜히 실체 없는 자격을 따졌다.


인터뷰 속에서 누군가는 예술을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으로, 누군가는 좋아하는 이들과의 소통 수단으로, 누군가는 자아 표현의 방법으로, 누군가는 예술 그 자체로 대했다. 예술을 자신 안에 담는 깊이와 정도는 모두 달랐다. 그러나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들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것이 예술이라, 그들은 예술을 사랑하고 직업으로 삼았다.


어떤 이유도, 어떤 목적도 품어주는 것이 예술이다. 이 책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예술의 포용력이 평생 만나지 못했을지 모르는 52명의 사람들을 한 데 모이게 했다. 그런 예술의 포용력이 나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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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터뷰를 읽고 책을 덮은 후,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나도 훗날 예술가로서 이런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말이다. 사소한 다짐일 수 있지만 내게는 꽤 큰 의미가 담겼다. 앞으로의 내 미래에 예술이 꼭 함께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이 책은 그냥 예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이야기는 마냥 즐겁거나 찬란하지만은 않다. 누군가는 언젠가 그만둘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정말 힘들었던 기억을 토로한다. 그럼에도 내가 어떤 확신을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은 예술이라는 분야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거창하지 않고 인간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맹목적인 사랑이어도, 건조한 돈벌이어도 괜찮다고, 대단한 천재성만이 예술가의 길로 이끄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이야기들이 내가 고민했던 예술가로서의 자격을 털어내주었다. 예술을 좋아하지만, 직업으로 삼기엔 두려움이 앞서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물론 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당신은 충분한 확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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