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이 삶이자 생활인 사람들 -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열정과 통찰

글 입력 2021.06.2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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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도와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예술가들에 대한 인터뷰에 참여한 적 있다. 펜데믹의 도래로 인해 변화한 창작자로서의 내 위치를 숙고하는 기회였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젊은 영화학도, 혹은 영화 감독 지망생들이었기에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열쇠가 자신들의 손에 쥐여져 있다는 부담을 가진 듯 했다. 그때 실감한 가장 큰 문제는 예술이 당장의 생계와 직결되는 삶의 필수 요건이 아니라 여기는 많은 대중들과 달리, 우리는 예술이 곧 삶이자 생활인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삶과 생활의 차이는 꽤나 크다. 말하자면 생활은 삶의 구성 단위인데, 최종적으로 삶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운동성으로 가득 차 있다면 생활은 그것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기 위해 굴러가는 공장이다. 돈, 직업 윤리, 소명 의식, 하는 작업과의 상성, 이로 인한 자아존중감 등의 현실적 요건들은 모두 삶을 위해 생활이 짊어지는 현실이다.

 

인터뷰집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열정과 통찰>은 이러한 예술 생활인들에 대한 현주소를 그대로 담았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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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분야의 산업적 침체는 펜데믹이 부여한 과제와도 같다. 물리적으로 집합이 불가한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장의 생존을 책임지는 게 아닌 예술 소비 자체가 낭비로 인식된다는 게 참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에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예술인들은 문화예술도 누군가의 생업임을 강조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최근 스태프들과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해 영화계에 유구했던 고용불안정과 열정페이 문제를 해결하는 기준을 만들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하반기 예술인 고용보험제도 시행을 발표해 그간 주요 정책 순위에서 제외되었던 예술인들에 대한 존중을 표하기 시작했다. 이 책 역시 그 시도들의 연장선에 있다. '현실에 놓인 예술가'들을 발견하고 더 나은 삶을 보장하기 위한 걸음이다.

 

 

주인장들이 '어떻게 하면 옛날 예술가들이 다니던 살롱 같은 느낌을 낼 수 있을까?' 그런 욕심이 많았거든요. 왜냐하면 이미 그때도 기분으로만 음악을 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 음악가 김목인의 인터뷰 中

 


인터뷰집의 제일 첫번째 주인공이자, 그 호칭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 지금까지 스스로를 '음악가'라 정의하는 김목인의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 전체를 개괄하는 인상적인 표현이라 느꼈다. 이제 막 창작자로서의 활동에 박차를 가하는 나에게는 매우 의미있는 조언이기도 하다. 기분만으로 음악을, 미술을, 영화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난 지 오래라는 다소 회의적인 동시에 현실적인 조언은 한 가지 의문을 낳는다. 그렇다면 예술은 무엇으로 해야 하는가?

 

음악가 김목인이 던진 이 거대한 물음은 이후 26명의 예술가들에 의해 답변된다. 그들은 각자만의 독창적인 답을 통해 어려운 시기에도 예술적 자아를 키워 나가는, 또 자신의 작업을 믿고 진행하는 방식에 대해 발화한다. 예술가들의 발화는 그 자체만으로 힘을 갖는다. 하나의 세상을, 감정의 덩어리를 직조해나가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현실은 그 자체만으로 예술적 가능성을 가진다.

 

특히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정세랑 작가의 인터뷰가 마음에 남는다. 정세랑 작가는 '자기 자신을 도구로 써서 정제된 것을 보여주면 그것이 예술이다.'라고 일축했다. 앙리 마티스는 생전에 예술은 그것을 표현하는 도구, 즉 물질과의 끝없는 갈등의 과정이라 말했는데, 오늘날을 살아가는 예술가들은 자기 자신을 갈등의 중심으로 밀어 넣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으로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를 도구화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럴 각오를 지닌 이들만이, 혹은 기꺼이 그럴 수 있는 성정을 지닌 이들만이 예술가로서의 위치를 지켜나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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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집의 가장 큰 강점은 다양한 성별, 세대, 분야의 예술가들을 '예술'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담론 안으로 수렴시켰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정체성이나 서사를 납작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터뷰어 박희아는 그들의 작업의 특수성에 흥미를 느끼고 직업적 호기심을 영리하게 해소해나간다. 다만 앞서 말했듯 예술가들의 자생이 어려운 시기이기에, 현장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이들을 '예술가'라는 카테고리로 묶어 펜데믹 상황에서도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일깨운다.

 

동시에 예술가를 낭만화하기 보다는 생업을 이어가는 말 그대로 '예술 생활인' (이것은 내가 어설프게나마 만들어낸 단어이지만)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타 직업인들과 같이 현실적인 직업적 고민을 이어나가고, 돈과 시간을 걱정하며 미래의 불확실함에 조금은 불안해하는 그들의 모습은 인간적일 뿐만 아니라 예술가로 오래 기억되고 싶은 나와 같은 창작인들에게 큰 희망을 준다.

 

예술가로서의 내 정체성에 혼란이 일 때마다 소중하게 꺼내 볼 책을 만난 것 같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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