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단순한 사과 한 알이 의미하는 것 [시각예술]

글 입력 2021.06.22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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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기설기 그린 것 같은 세잔의 그림이 어째서 미술사에서 그토록 중요한 이유를 갖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잔의 사과가 그토록 중요해진 데는 이유가 있다.

 

 

세잔 이전의 화가들은 무엇을 그렸는가

 

세잔 이전의 화가들은 대부분 ‘상징’을 그렸다. 예를 들어, 화가들은 아테네와 페르시아의 전쟁을 ‘거인족과 켄타우로스족의 전쟁’으로 그렸고, 아테네 여신을 그릴 때는 그의 상징인 ‘방패와 메두사’를 그려 넣었다. 이런 상징은 종교나 신화와 관련이 깊다. 당신이 만일 고딕 시기 종교화에서 청색 두건을 덮은 여자를 본다면, 이는 성모 마리아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귀하고 비싸던 청색 물감이 존귀한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징을 도상(Icon)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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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쿠르베, <돌 깨는 사람들>

 

 

그러나 우리는 삶에서 천사나 거인을 볼 수 있는가? 화가들은 점점 환상처럼 느껴지는 도상들에 염증을 느끼고, 실생활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실생활을 그대로 담아고자 한 것이 사실주의(Realism)의 태동이다.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나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와 같은 작가들은 그림에 딱히 상징하는 바가 없이 현실을 그대로 그려 넣었다. 우리가 직접 맞닿아있는 삶 그 자체를 그려내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주의 이후 우리가 잘 아는 모네, 마네, 반 고흐, 마티스 등의 인상주의나 야수파, 표현주의 작가들 역시 앞서 말한 도상들에 염증을 느껴 ‘상징과 메시지’에서 벗어나 미술 그 자체의 순수한 색채와 작가의 자기표현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그 시작인 세잔에 보다 집중해보겠다.

 

 

세잔의 질문이 던져지다

 

아무튼, 사실주의 작가들의 노력은 인식론적 질문에 의해 발목을 잡혔다. 세잔은 후기 인상주의 즈음에 이르러, “과연 우리가 눈으로 인식하는 것이 정말 현실 그대로일까?”라는 궁금증을 가졌다. 사실 우리의 시각은 완전하지 않다. 옵 아트(Op Art)라고 불리는 착시현상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는 부분인데, 우리가 네모라고 보는 것이 실제로는 네모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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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병과 사과바구니가 있는 정물>

 

 

세잔 역시 ‘우리 인식의 한계’를 절감했다. 그러나 그가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고자’ 하는 열망은 식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한 시점에서 바라본 사과를 그리는 게 아니라, 최대한 다양한 시점에서 본 사과를 그림 하나에 합쳐서 그렸다. 최대한 사과의 본질을 완벽하게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그의 작품이 선적인 원근법이 무너지고 불안정한 구도를 보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병과 사과바구니가 있는 정물>을 보면, 뜬금없이 화면 한 가운데 내리꽂아져있는 와인병이 있다. 여러 가지 작품을 접해 본 우리 눈에는 익숙해보이겠지만, 이것은 그전의 엄격한 규칙이었던 정석적 구도를 파괴하며 화면을 양분해버리는, 신선한 시도였다. 사과 역시 진짜 사과마냥 똑같이 그려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 뭉개진 것처럼 그려졌으며, 한 사과는 왼쪽 면에서 그려지고 한 사과는 오른쪽 면에서 그려지는 등 세잔의 화면은 복잡하고 혼돈스러움 그 자체이다.

 

 

세잔의 사과가 세계를 바꾼 사과가 된 이유

 

그는 이렇듯 사과의 최대한 많은 면을 함께 그려내고 이전의 규칙에서 벗어나며 우리 시각으로는 불완전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는 ‘사과’라는 물체를 완벽하게 재현하고자 했다. 세잔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물을 비사실적으로 그려내어 사실주의의 목표를 가장 잘 구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세잔을 통해 “과연 어떻게,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가?”라는 미술의 근본적인 질문이 대두됐다. 이것이 바로 피카소가 자신의 대표작 <아비뇽의 처녀들>에서 세잔 작품의 형상을 일부 차용하고, 피카소뿐 아니라 많은 화가가 세잔을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칭하는 이유이다. 세잔의 사과는 그림을 인식하는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조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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