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증인을 자처하다" 서울아트시네마 '요리스 이벤스' 회고전

글 입력 2021.06.2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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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영화로서 다큐멘터리의 본질은 시간의 연속성을 필름에 포착시킨 동결성에서 출발한다. 영상매체의 태동기를 상징하는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은 기차역에 도착하는 열차의 한순간을 필름에 포착해냄으로써 시간의 역동성을 보관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불가능을 가능케한 촬영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원하는 순간을 영상으로 기록할 수 있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다큐멘터리로서의 본질은 절반 가까이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터. 의식 있는 작가들은 그렇게 기술의 발전을 발판으로 이제껏 머릿속에 감춰두었던 자신의 의식을 마음껏 선전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요리스 이벤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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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네덜란드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요리스 이벤스 회고전(“카메라가 혁명을 만나다: 요리스 이벤스 회고전”)이 6/9(수)부터 6/27(일)까지 개최되었다. 이번 회고전은 주한네덜란드대사관과 아이 필름뮤지엄의 후원과 함께 요리스 이벤스를 대표하는 작품부터, 국내에서 쉽게 한글자막으로 관람하기 힘들었던 무성영화 시대의 초기 작품들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플라잉 더치맨(Flying Dutchman), 요리스 이벤스!"

1898년, 사진작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영상 촬영용 카메라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태어난 요리스 이벤스는 영상 매체의 태동기를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포석을 다지기 시작했다. 14살(!)의 나이에 자신의 첫 단편 <불타는 화살>을 시작으로 조금씩 감독으로서의 자질을 키워온 요리스 이벤스는 1928년에 연이어 발표한 <비> <다리> <파도>를 통해 본격적으로 국제 영화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반세기 넘게 지속되었던 요리스 이벤스의 촬영기록은 세상을 향한 그의 방대한 관심사를 반증한다. 파리를 관통하던 센즈강의 아름다움부터(<센느가 파리를 만나다>), 오늘날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전자기기 기업 필립스의 초창기 모습(<필립스 라디오>), 그리고 미국 전역을 걸쳐 본격적으로 전기가 보급되는 과정까지(<전력과 대지>). 그가 카메라가 도달하지 않는 곳이 전무할 만큼, 전 세계 이곳저곳의 변화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풍차의 나라, 네덜라드 출신에 걸맞게 '플라잉 더치맨'(Flying Dutchman)이라는 자랑스런 별명을 얻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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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스 이벤스, 1898. 11. 18 ~ 1989. 6. 28)

 

 

물론, 반평생이 넘는 세월 동안 전 세계 혁명의 현장들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그의 삶 역시 파란만장했다. 총탄이 오가는 베트남전 한복판에서 촬영하던 중 총상을 입은 것은 기본이며, 네덜란드의 식민 국가였던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지지하면서 만든 <인도네시아의 목소리>로 인해 정부로부터 블랙리스트에 오르면서 매해 여권을 갱신해야 한다는 불이익까지 겪고야 만다. 자신의 조국을 등지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대의를 위해 주제의식을 굴복하지 않는 요리스 이벤스의 열정은 그 자체로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지녀야 할 미덕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그가 진정으로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어떤 이미지와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굴복되지 않는 삶의 주체로서 민중"

이벤스의 카메라를 장식하는 주인공은 언제나 역사의 과도기 현장 속에 자리잡은 민중의 몫이었다. 다양한 형태의 변화를 필름에 담아내면서도 이를 주도하거나 맞이하는 주체는 모두 이름 모를 절대 다수의 민중들이었다. 파란만장한 역사의 중심에서 숭고한 목적과 함께 과거를 변화시키려는 민중의식과 이를 실천하려는 사람들의 몸짓은 사실상 요리스 이벤스의 주제의식을 상징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다.


요리스 이벤스의 카메라에 담긴 민중은 결코 동정과 연민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이벤스의 필름에 기록된 민중은 어디까지나 눈앞에 닥친 국면을 타개하고 극복하는데 적극적이며, 결코 주어진 삶에 굴복하거나 구걸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미군의 대규모 공격 앞에서 되려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승리를 자신하는 어느 베트남인의 얼굴(<위도 17도>), 독재정권에 주체적으로 저항하는 절대다수의 스페인 민중(<스페인의 대지>), 그리고 자연의 거센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환경에 적응하며 삶을 묵묵히 이어가는 프랑스인들의 뒷모습까지(<미스트랄>). 요리스 이벤스의 카메라가 지닌 의의는 다큐멘터리의 무대를 장식하는 주인공에 민중의 주도적인 모습을 배치시켰다는 점에 기인한다.

 

"카메라를 통해 시대의 증인을 자처하다"

파란만한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민중을 채택한 요리스 이벤스의 카메라는 그 시대를 바라보는 행위 그 자체에 주목한다. 이벤스는 민중의 적극적인 생존의지가 담긴 자신의 영상과 대조적으로 세상을 적극적으로 계몽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구태여 드러내지 않는다. 단지, 잊혀져서는 안될 그 어떤 특별한 시간의 흐름을 응시하며 필요 이상의 언어는 영상에 개입시키지 않을 뿐이다. 이는 바라보는 그 행위만으로도 시간을 동결시키는 영상매체의 힘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이벤스의 혜안을 반증한다. 그 이상의 개입은 흔하디 흔한 프로파간다에 그치지 않는 만큼, 이벤스는 자신이 정말로 기록하길 원하는 시간의 가치를 필요 이상의 언어로 훼손 시키지 않는다. 이벤스에게 있어 시간을 대하는 최선의 태도는 변화의 한 순간을 곁에서 직접 바라보는, 증인의 그것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스 이벤스의 카메라가 지닌 의의는 크게 2가지다. 우리가 결코 쉽게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역사의 현장을 필름에 동결시킴으로써 하나의 귀중한 역사적 자료를 제공해준다는 것, 그리고 잊혀져서는 안될 역사의 한 순간을 존중하는 방식으로서의 바라보기의 가치. 요리스 이벤스는 영상기술의 발전과 함께 시대와 역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끊임없이 관심을 표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움직이는 민중을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방식으로 지지했다. 아직 시대는 끊임없이 변화 중이고,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우리의 삶 역시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변할 것임은 자명하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요리스 이벤스의 카메라가 유효한 이유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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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스 이벤스 회고전, 6월 9일 ~ 6월 27일)

 

 

[김현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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