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자, 나이 든다는 것에 관하여

연극 <늙은 여자, 못생긴 공작부인>
글 입력 2021.06.2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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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늙은 여자, 못생긴 공작부인>


제3회 페미니즘 연극제

2020년 6월 28일 (일) 16시,

1M SPACE


주최 페미씨어터

주관 상상공터

구성/연출 서정애

출연 김재인

김이수

박성은

음악 이병묵

움직임 박성율

디자인 김이수

오퍼레이터 김형욱

정연재

장현아

 

 

"나이든 여자는 젋고 매력적인 여자에 반(反)하는 추하고 개선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진다. 세상은 안티에이징을 외치며 젊음을 강요하고, 늙은 여자는 볼품없는 존재, 성적 수치심도 없는 존재로 여기고 함부로 대하며 소비되어진다. 우리는 본 작품을 통해서 늙을 권리, 나이 듦, 그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존중해야 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연극 <늙은 여자, 못생긴 공작부인> 공연 소개글 中

 

 

'늙은 여자' 그리고 '여자가 나이든다는 것', '나이든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공연장은 크지 않은 공간이었고, 익히 알고 있는 극장의 흔한 모습이기보다는 오히려 연습실과 같은 탁 트인 모습이었다. 무대의 벽을 따로 세우지 않았고 관객석과의 경계도 따로 두지 않았으며 무대 하수에는 아담한 부엌이, 상수에는 나레이션 및 오퍼석이 있었다. 넓직한 연습실 같은 공간에 몇 개의 의자를 둔 것으로 무대와 관객석을 분리한 모습이었다.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무대 전면에 프로젝터로 비춘 한 여인의 초상 같은 그림을 보았고 '늙은 여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인터뷰 대화 내용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림 속 여인은 어디선가 본 익숙한 모습이었다. 알고보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공작부인의 모델이 된 여인으로, 16세기 플랑드르 출신의 화가 캉탱 마시(Quentin Matsys)의 그림이고 일반적으로 <추한 공작부인(The Ugly Duches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그림이었다. (이 그림과 얽혔다고 추측되는 과거 역사 이야기도 참 흥미롭지만 따로 첨부하지 않겠다.)

 

 

다운로드.jpg


 

공연에는 3명의 여성 배우가 등장했고 각각 젊은 여자, 나이들어가는 여자, 나이든 여자의 역할을 맡았다. 나이든 여자의 설거지하는 뒷모습을 시작으로 면접 장면으로 장을 연다. 여자, 특히 나이든 여자가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볼 때 흔히 이루어지는 압박 질문들. 심지어 성적으로 희롱하는 질문들이 무대 상수 쪽에서 남성의 음성으로 연기된다. (이렇듯 주로 무대에 등장한 세 여자의 세계를 제외한 외부의 목소리는 그렇게 처리되곤 한다.) 이후 작품은 마치 갈래가 여러 개로 나뉜 수필처럼 장면이 펼쳐졌다가, 전환된다.

 

의자의 각을 재고, 올라서고, 옮기고, 일렬을 맞추거나 아무렇게나 세워놓는 행위들을 작품이 진행됨에 따라 다른 메타포를 갖으며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무대 구석에 있는 의자를 다른 쪽 무대 끝으로 옮겼다가,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옮기는 일상 생활 속에서는(심지어 무대를 관람하는 관객에게도) 의미가 없어 보이는 행위들을 인물들이 반복함으로서 뿜어져 나오는 신체 에너지를 통해 내재된 외부로부터의 억압과 탈피를 향한 몸부림이 느껴졌다. 그 동안에는 어느 대사도 있지 않았고, 그저 격한 움직임으로 숨이 찬 배우들의 거친 호흡과 마치 약속되어진 것처럼 옮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서린 배우의 눈동자가 전부였다.

 

의자를 활용한 장면 외에도 인상 깊은 장면이 몇 장면 있다. 객석을 바라보며 앉은 배우들이, 외모를 가꾸기 위해 위해 흘러나오는 나레이션의 지시에 따라 얼굴에 이것저것 바르고(실제로 바르지는 않았고, 바르는 시늉만 이루어졌다.) 피부를 관리하는 장면이었는데,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자기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늘리고 주무르는 행위가 격해졌고, 나중에 가서는 그 행위가 불편하고 기괴하기까지 느껴졌다. 실제로 거울을 보며 조금이라도 멀끔한 피부가 되고 싶어 이리저리 얼굴을 보고 또 보았던 나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이 밖에도, 참 인상 깊은 장면이 하나 있었다. 정말 짧은 시간 동안의 장면이었지만 배우 중 한 명이 물구나무 서기와 비슷한 요가 동작을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장면은 이전의 장면에서 등장한 여성의 (외부억압으로 인한) 수동적이고 나약한 모습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강한 힘을 내뿜었다. 요가 동작을 하는 배우의 신체에서, 그리고 얼굴 표정에서 느껴지는 건강한 힘이 느껴졌던 것이다. 이후에도 이 공연의 절정과도 같았던 마지막 결말 부분에 배우들이 입고 있던 의상의 대부분을 탈의하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무대의 전체를 뛰어다녔던 장면이 참 좋았다.

 

유독 여운이 남는 대사도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대로 옮겨보자면 '꿈 속에서 어느 늙은 여자가 쳐다봤어. 무서워서 잠에 깼어. 나는 왜 무서웠던 것일까. 쳐다봤던 것 뿐인데.' 같은 대사였다. 이 대사는 내가 좋아하는 권민경 시인의 <나의 형식>의 시 속 구절과도 많이 닮아있어서 공연이 끝난 후에도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추가로 공연은 '늙은 여자' 내지는 '여성'에 대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의 시선을 담기 위해 인터뷰 내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과거에 일어났던 각종 여성혐오 범죄의 뉴스 나레이션이나 기사 헤드라인 등을 활용하였다.


공연을 보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우리 엄마하고 이 공연을 보러 왔으면 참 좋았겠구나, 였다. 여성에게 이루어지는 혐오와 차별이 공기처럼 이루어지는 이 빌어먹을 과도기의 한국 사회에서, 약자 중에서도 가장 많은 위험으로부터 취약한 나이가 어린 여자아이나 늙은 여자는 어떤 삶을 사는가에 대한 생각을 요즘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최근의 화두인 연령층이 어린 피해자가 대부분인 N번방 사건이나 각종 성착취물영상과 관련된 범죄의 영향인가보다. 나이 어린 여자는 단순하고, 철이 없고, (그들 말로)헤프고, 혹은 나쁜 페미니즘이란 것에 물들어있으며 머리가 텅텅 비었다는 시선. 나이 많은 여자는 억세고, 촌스럽고, 볼품없고, 추하고 시끄러우며 냄새 나고 수치심도 모르는 존재라는 시선. 언제서부터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그 혐오의 공기를 들이쉬고 내뱉으며 살아가는 우리들. 그리고 그 안에서 목소리를 내는 존재와 그걸 듣는 사람들.

 

사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 글을 쓰는 시점에는 그렇다. 이성적이게 파악하고 정리해서 글을 쓸 여력이 충분치가 않은 요즘이다. 환멸이 난다고나 할까.

 

그래도 분명한 것은 있다. 이러한 공연을 하는 극장에 찾아온 모든 사람들이 지금처럼 여자만은 아닌 미래의 그날들이 올 때까지, 충분히 분노하고 행동해야겠다는 확신이다.

 

 

[이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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