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내 삶의 여정을 돌아보다.

아담 자가예프스키 :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글 입력 2021.06.2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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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공은 폴란드어이다. 폴란드는 서쪽으로 독일, 남쪽으로 체코와 슬로바키아, 동쪽으로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북쪽에는 발트 해와 러시아, 리투아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말 그대로 동유럽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국가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입학했을 당시 나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가본적도 없고, 그렇다고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말 그대로 슬라브언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선택한 학과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무식하게 용감하다) 그렇게, 나는 근 3년 넘게 폴란드어를 배우고 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폴란드를 직접 방문하고 연수를 떠나 배우고 여행하기도 하면서, 나는 폴란드의 역사, 문화, 예술에 대해 점점 더 흥미를 갖고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 겨울, 우연히 폴란드 문학에 대해 배울 수 있던 세미나에 참석한 나는 아담 자가예프스키라는 시인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처음 보는 이름이었지만, 시인 소개 옆에 적힌 몇몇의 구절들이 머리속을 치고 들어왔다. 가장 처음 접한 그의 시는 ‘O mojej matce(나의 어머니에 대하여)’로, 어머니에 대한 아주 사소하지만 애정어린 시인의 기억들을 엿볼 수 있다.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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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에서 접하게 된 아담 자가예프스키의 또 다른 한편의 시는 ‘시를 쓴다는 것’ 이다. 시를 써내려갈 때 시인이 하는 고민, 생각들이 아주 순간적인 섬광이나, 성냥 불빛으로 나타가기도 하고, 아주 길고 무거운 어둠, 오랜 감시와 인내로, 그리고 희망과 고뇌, 대화, 기다림과 추모와 용서, 한가로운 산책이나 어린아이의 울음과 같은 아주 다양하고 사소한 표현들로 나타나 있다.


시의 첫 줄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시인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도통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를 거의 다 읽어갈 무렵, 다시 올려다보자 연관성 없이 느껴졌던 문장들과 단어들이 결국은 촘촘하고 세밀하게 연결되어 필연적인 완결을 이루어 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자가예프스키에게 시를 쓴다는 사실이 그의 생을 뒷받침하고 그의 인생에서의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영역이라는 것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생각들이 스며들어 있을 그의 다른 작품들 또한 더 없이 궁금해졌고 그의 생애와, 그가 걸어온 인생이 더욱 알고 싶어졌다. 세미나가 끝나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서점에 들러  그의 대표 시집으로 알려진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를 집어 들었다.


시선집을 읽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생애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가 인생에서 경험한 사건들이 마치 그림자 비추듯 그의 시에도 반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45년, 지금은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된 르부프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당시 폴란드는 얄타 회담과 포츠담 회담으로 인해 국토가 조정되었고, 독일에 속했던 서부 지역을 할양받는 조건으로 동부 영토의 4분의 1을 소비에트에 내어주게 되었다. 그래서 르부프에 거주하던 폴란드인들은 새로이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만 했다. 이러한 고향의 상실은 시인에게도 큰 상실감과 향수를 안겨주었을 것이다.

 

시 ‘사진을 본다’ 에서 시의 화자(아마도 시인)는 태어난 도시(르부프)의 사진을 오랫동안 본다.

 

 
'시인은 눈을 뗄 수가 없다 / 마치 아무일이 없는 듯 / 그들 모두가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활자 너머로 그의 절절한 그리움이 나에게까지 전달되었다. 평화로웠던 마을에는 인종학살이, 봉기와 이주가 일어났고, 그가 알고 있던 장소들은 더 이상 조금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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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대한 그의 기록이 담긴 또 다른 시는 ‘르부프로 간다’ 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잃어버리고 만 고향으로 가고 있다. 시인은 새벽, 아침, 한밤중, 대낮, 9월 아니면 3월에 르부프로 가고자 한다. 무심코, 갑자기, 이유 없이 가고자 한다. 나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 동시에 시인이 지쳐서 어딘가 기댈 곳으로 가고 싶은 심정으로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 시에서 얘기하는 과거의 르부프는 ‘너무 많았다’고 표현된다. 기쁨은 모든 곳에서 도사리고 있고, 푸른 찻주전자와 장미 가시, 개나리와 가족들과의 기억 속에 시인의 추억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바라보고 있는 현재의 르부프는 ‘조금도 없다’ 고 표현된다. 그어진 선에 따라 천을 가르듯 르부프는 오려졌고, 손수건도 눈물도 없는 작별이 나타난다. 시대 상황을 반영했을 때 이는 르부프가 전쟁의 영향을 받았고, 황폐화되었으며, 영토의 조정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 가까운 이들과 작별하게 되는 상처를 겪었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변해 버린 도시를 안타까워하면서, 시인은 숨도 쉴 새 없이 르부프로 가고 있었다. 지금은 변해버렸고, 상실한 고향은 기억 속에서는 영원하며,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

 

 
‘사실 르부프는 복숭아처럼 편안하고 깨끗하게 존재하니까. 르부프는 어디에나 있다.’
 

 

는 시구를 들여다 보았다. 시인은 괴로울 때마다 과거의 고향에서의 행복한 추억을 회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듯했다.


이러한 고향의 상실과 폴란드에 나타난 독재 정치는 그의 시 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공산주의 사회의 실체를 폭로하는 ‘크라쿠프 뉴웨이브’, ‘68세대’의 인물로 유명해지지만, 그의 작품들은 정부의 탄압을 받아 금서 목록으로 지정되고 만다. 결국 자가예프스키는 정부와의 마찰로 고국을 떠나 외국의 낯선 도시인 파리와 휴스턴을 오가며 새로운 삶의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고국인 폴란드에서조차, 고향을 상실하고, 고국을 떠나와서도 오랫동안 타지를 떠돌게 된 그는 자신 스스로가 이방인이며 방랑하는 자로서 규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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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자신에 대한 이런 인식이 그의 시에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점이다. ‘나는 아직 시 속에 존재할 수 없으니’, 에서 그는 ‘운문의 시계에 머물도록 허용된 건 단지 죽은 이들 뿐’, 자신은 ‘세상 속을, 도시 속을 표류해야 한다’ 고 쓰고 있다. ‘낯선 도시들에서’는 심지어 고통조차 온전히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얘기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낯선 환희’, ‘새로운 시선의 차가운 행복’을 어렴풋이나마 느끼는 것 같다. ‘낯선 도시에서’ 에서도 시인은 낯선 군중과 축제, 낯선 언어, 비현실적인 지중해의 향기에서 어떠한 종류의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러한 표현들을 통해 시인이 자신의 근원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대신에 주어진 ‘여행자의 숙명’을 받아들였고, 그것을 인정하게 됨으로서 오히려 한층 성장하고 더 자유로워진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시인이 정체성을 끊임없이 묻고, 성찰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면모는 독자인 나로금, 시인의 인간적인 면모, 매력, 취향을 알 수 있게 하는 동시에 독자들이 과연 그들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자가예프스키의 시에는 엮어서 카테고리화 할 수 있을 만큼이나 ‘자화상’ 이라는 제목의 시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는 점점 더 늙고, 아버지의 얼굴이 점점 침입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의기소침한 나 / 십대처럼 꿈속에 빠져 불행하고 건방진 나 / 노인처럼 죽도록 피곤한 나'
 

 

이렇듯 자가예프스키는 자신을 다양히 묘사하고 있다.

 

 
‘파리의 거리를 오래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 시골길을 빨리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처럼 자신이 즐기고 좋아하는 것들도 써 놓았다. 시인의 고민의 흔적이 담긴 시, ‘비행기에서의 자화상’에서는 좁은 비행기 좌석에서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곧 태어날 ‘시’에 대해 고뇌하는 순간마저도 놓치지 않는다.


또한 시 ‘나’에는 편안한 진실 아래 살며, 국가 사이, 정당들 사이에도 잘 숨으며, 영원한 난민이자 때로는 지독한 외로움에 자신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역사적 사건에 집착하는, 어둡고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들, 타인에게 비추이기에 부끄러운 면모들이 실려 있다. ‘독자에게서 온 편지’ 또한 그랬다. 죽음, 그림자에 대한 내용이 많다는 것, 어둠에 대한 집착이 많고 음악에 대한 내용이 많다고 자신에게 보내온 독자의 의견을 시로 엮어 쓰며 자가예프스키는 자신은 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며 독자의 판단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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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을 읽으며, 나는 아담 자가예프스키라는 시인과 간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그의 생애, 생각, 가치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심지어는 그의 부끄럽고 은밀한 면모까지도 알게 되었다. 그의 시들은 꼭 내게 말문을 트여주는 것 같았다. 시를 읽는데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나는 진정으로 생각해봐야 할 존재론적 고민들을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어 왔을지 모른다. 지금 당장 내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언제 생겼는지 모를 마음의 상처와 스스로에게 느끼는 내면의 부끄러움 같은 것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정작 남들에게는 아무일 없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편안하고 행복해 보이는 외적인 모습과 허우대만을 비추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반면, ‘나는 이러한 삶을 살아왔고, 나는 이러한 사람이다’ 라고 쓰고있는 시인의 진실된, 우직한 기록들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떠올라서 부끄러웠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남들의 판단에 흔들리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시로 기록해 놓는 시인의 모습을 부지런히 배워나가야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시 ‘추억들’ 의 구절을 인용하며 나의 감상평을 마무리하려 한다.


 
‘너의 추억들을 자주 방문하길 / 이것은 너의 추억이므로 / 언제나 이 사실을 기억하기를’
 


독자들에게 추억의 소중함을 알리고자 했던 시인의 마음을 붙들어 우리 모두가 스스로의 내면과, 소중한 추억들, 삶의 여정들을 찬찬히 헤아려 보는 시간을 지금부터 들여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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