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그리고 자기 자신 박래현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6.21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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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현-삼중통역자_(2020.09.24-2021.01.03._국립현대미술관_과천관._2021.01.26-05.09._국립현대미술관_청주관.jpg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덕수궁을 가본 적이 있겠냐마는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나이가 된 이후에는 덕수궁을 간 기억이 없다. 그래서 이번 전시 장소에 가는 것이 굉장히 기대되었다. 가본 적이 없는 곳을 가는 것, 그것보다 더한 설렘이 있을까. 전시를 보기 전에 전시를 먼저 관람한 동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기는 전시가 굉장히 지루했다고 하였다. 과거 전시를 보고 전혀 이해할 수 없어 전시가 지루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지루함을 덜어주고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는 도슨트가 있는지 바로 검색해보았다. 다행히도 도슨트가 있었고 국립현대미술관 앱을 다운로드해 당당한 걸음으로 덕수궁으로 향했다. 덕수궁에 들어가기 전 왼편에 긴 줄을 선 사람들이 보였다. 그걸 보고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저기가 ‘리에제 와플’집이다! 덕수궁 주변에 유명한 와플집이 있다고 들었었는데 그게 바로 덕수궁 옆일 줄은 몰랐다. 전시회 관람 후에 와플을 먹을지는 나중에 고민하기로 하고 덕수궁에 들어갔다. 빵빵거리는 차 소리와 공사 소리가 덕수궁에 들어오자 전부 사라졌다. 내가 간 날은 비가 오는 날이어서 빗소리가 덕수궁의 분위기를 한 층 더 끌어올리고 있었다. 덕수궁 꽤 안쪽에 있는 국립현대박물관까지 가는 길은 덕수궁의 풍경을 보느라 그리 길지 않게 느껴졌다.

 

박래현, 그녀는 누구일까? 전시회를 보기 전에 간단히 박래현에 대해 조사하여 단지 여성 미술가로만 인식하고 전시회를 관람하였다. 하지만 이게 웬걸 청각 장애를 가진 남편을 위해 영어, 한국어, 구어의 삼중통역자이자 회화, 태피스트리, 판화의 삼중통역을 시도했던 예술가라니. 비로소 왜 전시의 이름이 ‘박래현 : 삼중통역자’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작품을 보면서 박래현의 여성상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이른 아침>에서 전쟁 직후의 시대상을 그려내면서 슬픔과 고난보다는 여성의 씩씩함과 강인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당시 아이도 키우며 예술도 하며 아내의 역할을 씩씩하게 해내던 박래현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노점>의 작품을 보면서 그녀가 살았던 시대와 다르게 굉장히 현대적이라고 생각했다. 층이 높은 건물들과 커피를 마시는 듯한 여유로운 모습, 마치 뉴욕 카페테라스에 있는 여성들의 모습과도 같았다. 부부 합작인 <봄C>는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박래현이 등나무를 그리고 그녀의 남편 김기창이 참새를 그림으로써 같은 직업을 가진 부부가 그림을 통해서 서로의 내면과 대화하고 하나의 작품을 그려내는 것이 사랑의 또 다른 형태라고 느껴졌다. 또 굉장히 맘에 드는 게 친목 모임에서 우정을 다지기 위해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화훼도>라는 작품을 같이 그린 것이 너무 좋았다. 과거에도 그랬겠지만 현대에서는 친목을 다지기 위해서 각자의 몸을 해치는 술을 과하게 또 빈번히 많이 마신다. 우정을 다지기 위해 작업을 함께 한다니... 이 얼마나 건강하고 감성적인 일이 아닌가. <벽에 걸린 닭>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몸의 근육이 다 보이는 ‘진격의 거인’ 같기도 하고 왜 닭의 가죽을 벗겨 널어놓았을까.. 심오해졌다. 혹시 우리가 먹는 치킨 이전의 모습일까? 과거에 내가 먹었던 닭들이 생각났다. 아니면 박래현의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자린고비의 이야기처럼 ‘저렇게 닭을 걸어놓고 밥 한 숟가락을 뜨고 닭을 한 번 쳐다보고 밥을 먹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잊혀진 역사 중에서>는 그녀의 역사적인 관점을 드러냈었을까. 점과 선으로만 이루어진 작품을 보면서 점이 역사의 순간들이고 선으로 그 역사적 순간들을 연결한 것처럼 보였다. 또 서로 다른 색을 사용함으로써 각기 역사적 사건들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짐작하였다.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느낀 것인데 박래현은 새를 참 좋아한 것 같았다. 여행 스케치북과 도자기 등에 그린 그녀의 그림에서 새가 자주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작품들을 보면서 호기심이 생겼던 것은 이름이 <작품>이었던 작품들이었다. 단순히 하나의 작품의 이름이 ’작품‘이 아닌 여러 개의 작품들이 그림은 다르지만 동일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작품의 이름을 정하기가 어려워 <작품>이라고 하였을까? 박래현은 이름이 같은 <작품>들을 혼동한 적이 있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박래현이 (빨간색이 많이 들어간) <작품>을 지칭하였는데 다른 사람이 파란색이 많이 들어간 <작품>으로 이해했던가.. 과연 사람들이 박래현에게 박래현의 <작품>을 말하면 그녀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무엇일까 굉장히 궁금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가장 애정 하는 <작품>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또 신기한 것이 미국 여행 후에 그녀의 그림에 노란색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과연 미국 여행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길래 해를 상징하는 노란색이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게 되었을까? 미국의 햇빛은 지금까지 그녀가 겪은 햇빛과 무엇이 달랐을까? 붉고 강렬한 <새벽>의 그림을 통해 그녀에게 새벽이야말로 강렬하고 뜨거운 시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하고 새벽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녀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박래현의 작품은 재미있는 게 유사한 작품들이 많아서 작품들의 유사점을 찾는 게 즐거웠다. 다른그림찾기와 같은 느낌이랄까. <시간의 회상>은 <태양의 시대>와 <회상>을 혼합한 느낌을 받았고 <계절의 인상>은 선 안에 있는 색만 다르고 두 그림의 선이 굉장히 유사했다. 과연 그 시대에 복사기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두 작품의 선을 어떻게 똑같이 그릴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파란색을 입힌 <계절의 인상>이 더 좋았다. 초록색을 입힌 것은 이끼가 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들 속에 갑자기 신문이 들어가고 서양의 사람이 등장한 <작품>이 등장하였다. 해당 <작품> 이전의 작품들은 굉장히 추상적이고 사람이 갈색으로 표현되며 태피스트리까지 들어가 다소 주술적이고 인도풍의 작품들이었더라면 이 작품은 SF느낌이 강했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서 박래현이라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다양한 자아가 있다고 발견할 수 있었다.

 

전시회 마지막에 있는 말이 굉장히 슬펐다. 인간의 하루는 24시간으로도 모자란데 박래현에게 아내, 어머니, 예술가로서의 ‘삼중의 삶’은 너무 버거워 과로했던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학생으로 살아가기에도 벅찬데 그녀는 세 가지의 역할 중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펼치면서 살았기에 그녀가 존경스러웠다. 또 <박래현 : 삼중통역자> 전시가 아내로서의 박래현과 아이의 엄마로서의 박래현보다 그저 박래현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여 그녀에게 더 감정이입을 잘할 수 있었다.

 

한 가지만 하기엔 이 세상은 너무도 다채롭다. 삶이 길어져 한 번 인생에 최소 3번 직업을 바꾸라고 하던가. ‘한 우물만 파라’는 구시대적인 말, 현대 사회에서는 지적 대화와 ‘넓고 얕은’ 지식,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등의 다채로움을 요구하고 있다. 또, 한 역할만 하고 살기엔 우리의 인생은 너무 아깝다. 박래현의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김기창의 아내, 아이의 엄마가 아닌 박래현 그 자체를 잃지 않고 살아간 그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회적 역할에서의 자신이 아닌 MYSELF를 하고 싶은 그대들에게 이 전시를 추천하고 싶다.

 

 

[황수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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