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과 피부 사이, 그 틈을 가로 지르는 스릴

리사이클링 아트 <나 날 : 영원하지 않은 영원>展의 김나미 작가를 만나다
글 입력 2021.06.2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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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과 플라스틱을 자르며 쾌감을 느껴요. 작업 재료와 제 손 끝 피부 사이의 가위질로 그 틈을 가로 지르는 스릴을 즐깁니다. 작업에 집중하는 저를 지켜 보시는 주변 사람들의 염려와 걱정이 무색하게끔 말이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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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창동61 전경 (서울 도봉구 소재)

 


그녀의 이러한 일상이 녹아든 모습과 웃음소리가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어느 한 컨테이너 속에서 작품의 모습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플랫폼창동61 내 Gallery510’에서 2021년 6월 15일부터 20일까지 약 일주일 간 열리게 될 김나미 작가의 첫 개인전 <나 날 : 영원하지 않은 영원>展의 시작이었다.


 

# 아르테 울트라 화이트 같은 그녀, 김나미



그녀는 곧 안내를 시작하려는 듯 손을 뻗으며 전시장 입구 초입 테이블에 놓인 리플렛을 가리켰다. 전시 관람을 즐기는 나의 익숙한 시선 역시 제일 처음 그것을 향했고, 이내 집어 들어 살펴보기 시작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단단한 첫 느낌, 그리고 날카로움을 감춘 포근함이 느껴졌다. 마치 내가 전시 기획자로서 처음 그녀를 만났던 2019년 5월이 떠올랐다. 도슨트를 배우러 먼 길을 달려왔던 열정적인 김나미와 첫 개인전이기에 이전보다 다소 냉정함을 유지하려는 듯 보이는 지금 앞에 서 있는 작가 김나미가 혼재된, 또 다른 그녀의 모습을 새롭게 마주친 느낌이었다.


개인전 준비 막바지에서 그녀는 자신의 일상을 맞이할 관람객을 떠올리며 초조함과 기대감 속에 작업했음이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그 흔적은 리플렛에 역력했으며, 내 두 손과 만난 것은 그저 단순한 인쇄물이 아니었다. 이내 비로소 내가 거쳐왔던 작업 과정과 그 결과물인 작품들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겠다는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것은 조심스레 펼쳐 놓은 첫 개인전에 대한 지극한 애정임과 동시에 찾아주신 분들에 대한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었다.

 

“은미씨, 저는 요새 이번 전시에 선보일 엽서와 리플렛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정말 잘 나올 것 같아요. 그래서 무척 기대돼요.”라고 몇 주 전 나를 향해 환하게 웃던 그녀는 아마 그때쯤 이미 전시 관람객들을 맞을 준비를 마쳤을 것이다. 나의 두 손끝에 만져지는 리플렛의 느낌은 보통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녀가 즐겨 선택하곤 하는 ‘아르테 울트라 화이트' 재질은 겉면이 쉽게 상하지 않고 단단하게 느껴지는 적당한 무게감, 미끄러지지 않는 코팅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내게 건네준 것은 전시를 알리는 단순 정보 제공 수단으로서의 리플렛이 아닌 ‘그녀 자신’ 그 자체였다. 마치 깡통과 가위 날사이를 스쳐 지나감을 즐기는 그녀의 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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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미 개인전 '나 날 : 영원하지 않은 영원'>展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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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미 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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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홍보자료

 

 

 # 이중적인 두 컬러 - '파랑'과 '빨강'의 혼재된 그녀, 김나미

 


나 날 : 영원하지 않은 영원


"우리는 매 순간 다른 공기와 빛 사이에 육체와 영혼을 맡기고 반응하면서 살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 시간 앞에 있다. 직면한 슬픔과 두려움, 욕망, 삶의 설레임을 시간은 그저 삼키겠지만 영원하지 않은 그 찰나의 순간은 아름답고 영원하다. (작가노트 중)"

 


전시장 내부로 들어오니 온통 파란 벽면이 보였다. 그녀는 자연스레 나와 발을 맞추어 가며 작품을 설명했다. 그녀는 “주로 여름에 작업한 것 같아요.”라고 했다. 뜨겁게 달궈지는 여름 날씨 속 컨테이너 내부 그녀만의 공간은 이미 청량감으로 가득 채워지며 심리적 온도 또한 낮추고 있었다.

 

[Blue i]와 <영원하지 않은 영원#1~#5>의 연속적인 작품들을 차례로 가리키며 담담하게 내뱉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내 앞에서 다시금 물리적 방향 위치를 전환하여 자신의 내면 바다로 들어가려는 듯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시작하려는 듯 보였다. 내 앞에 있는 그녀는 작가로서의 공식적인 타인과 대면 장면이 아니라, 이미 자신의 열정적 에너지를 테두리로 안전하게 감싸 안은 채 보호와 안도감 속에 자유롭게 내면에 몸을 맡기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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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미_영원하지 않은 영원 #1_Mixed media on canvas_22x27.3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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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미_Blue i_Recycled can on Wire mesh_45.5x33.4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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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미_영원하지 않은 영원 #2_Mixed media on canvas_116.8x72.7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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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미_영원하지 않은 영원 #3_Mixed media on canvas_116.8x72.7cm_2020

 

 

그녀는 100호 캔버스 앞에 비로소 멈추었다. 이어 <영원하지 않은 영원#4> 작품을 가리키며 이번 전시의 메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불에서 나오는 소녀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소설 ‘데미안’을 접하게 된 것이 포인트였다고 했다. 그 소녀는 '자신'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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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미_영원하지 않은 영원 #4_Mixed media on canvas_162.2x130.3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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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미 개인전 '나 날 : 영원하지 않은 영원'>展 전시장 내부

 

 

벽면의 작품들을 보며 나는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의 대가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그리고 인도에서 시작된 ‘차크라(Chakra)’ 개념이 생각났다. 차크라에서 색은 ‘인간 신체의 여러 곳에 있는 정신적인 힘, 그리고 그 중심점 가운데 위치한 상호 간의 연결 구조’를 특정 신체 부위와 색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차크라에서 ‘파랑’은 세상이 우주의 바다에서 창조될 때 표면에 나왔다고 하는 첫 물질, 즉 ‘뱀의 독’을 상징한다. 뱀의 독이 신의 선물이 되었을 때 창조되었다고 하는 신화가 있으며, 실제로 독일어의 ‘선물’이라는 단어는 ‘독’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파랑은 진실과 충성을 나타내지만, 한편으로는 차가움과 기만을 나타내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 경이로움을 표현하는 비밀스러운 색이기도 하다.


나 날 : Crave


"문득 마주치는 생생한 삶에 대하여, 절제 되지 않는 자기애는 타인을 상처 입히고

천천히 느리게 멈추지 못하고 되돌아 간다."


 

전시 공간의 굽이굽이 꺾어지는 모서리를 돌아 어느 위치에 다다르니 이내 갑자기 붉은 기운이 나를 덮쳤다. 유화 작품을 마주쳤는데, 'Crave'라고 적혀진 캡션 제목이 눈에 제일 먼저 띄었다. "그녀는 과거, 그리고 현재에 무엇을 얼마나 그리 갈망하고 또 열망했을까? 앞으로 그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궁금했다.


흔히 차크라의 색에서 ‘빨강’은 외부 세계에서 영향력을 가지는 '삶'을 상징한다. 그중 어두운 빨강은 '내부 지향적인 색'으로 의식의 세계에서는 다소 감추어진 내면의 삶을 상징한다. 때로는 그 빨강이 에너지와 힘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일방성과 전체성에서 볼 수 있듯 극도의 긴장감을 가진다. 이러한 일련의 의미에서 빨강은 다른 색들과 마찬가지로 이중적인 특성을 나타내며 모든 것을 포함하나 아직 발달하지 않은 색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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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미_Crave #5_Mixed media on canvas_65x45.5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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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미_Lover #1_Mixed media on canvas_41x32cm_2021 (Special Thanks to 이은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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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미_Lover #2_Mixed media on canvas_65.1x45.5cm_2021

 

 

나는 붉은색의 아크릴화 작품들 앞에 서서 마주하고 이내 시선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파랑 계열 작품에서보다도 조금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현실 속에서 점차 더 넓게 그녀 내면이 의식화되어 진행되어 가는 듯 느껴졌다. 물론 처음 만났던 작품과는 보색인 붉은 계열의 작품들이었다. 그녀는 유화 물감으로 명암으로 에너지의 방향과 분출 정도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Special Thanks to 이은규 선생님'이라는 캡션 문구로 조금 더 그녀의 특별한 마음이 전해지는 [Lover #1]의 크로키 혼합 기법 표현을 통해 이러한 느낌을 조금 더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 넓고 깊은 무한의 바다, 크고 작은 물방울이 모여 바다가 된다

 


“저는 끝까지 놓지 않고 작업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현재 작업을 할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합니다.”

 


그녀의 첫 개인전을 축하하기 위해 나 외에도 멀리서 달려온 세 명의 작가가 전시 공간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한아름 꽃바구니와 함께 그녀를 닮은 ‘보시오, 트로피칼 모스카토’ 망고향 와인을 안겨주었다. 이렇게 예술 분야의 작가, 기획자, 도슨트 등 ‘작가 김나미’ 곁엔 ‘사람’이 있었다. 짧은 몇 시간이었지만, 단순한 만남이 아니었다. 내 눈에는 그녀의 작품들처럼 크고 작은 물방울이 모여 무한의 바다를 이루고자 하는 움직임의 모습들로 보였다. 각자의 크고 작은 어려운 현실적 상황 속에서도 예술계 종사자로서 각자 서로의 작업을 공유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어느 누구에게도 내보이기 어려운 현실적인 삶에서의 어려움도 조금은 편히 내보이며 나눌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이 되어 주었다. 그 속에서도 각자의 아름다운 모습은 어느새 크고 작은 물방울이 되었다. 그러한 물방울이 모여 바다가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넓어지더라도 물방울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동안 각자의 물방울이 바위에 부딪히며 긁힌 상처투성인 모습들은 그만큼의 신비로움으로 깊어질 것이다. 


그러한 모습을 며칠 동안 지켜봤던 나 또한 전시 종료 이후에도 그녀의 흔적과 늘 함께하고 있을 것이다. 사회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회사 명함' 또한 그녀의 손길이 닿은 ‘아르테 울트라 화이트’였다. 때론 날카롭지만 부드러움으로 감싸 안아 주는, 그래서 나의 숨겨진 부족함을 채움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유능함으로써 빛나는 면만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혼재된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고 있다. 그래서 그 가운데 나 또한 그녀가 말하는 또 다른 스릴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었고 조금이나마 편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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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시 어시스트로 함께 했었던 짧은 시간을 마치고,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를 한동안 시원하게 감쌌던 공간을 떠나며 뒤를 돌아보았다. 전시장 입구에 붙은 한 장의 포스터 속 그녀를 닮은 작품은 여전히 한여름의 컨테이너 속 뜨거운 온도를 차분히 떨어뜨리며 그녀만의 바다를 향해 사람들을 이끌고 있었다.

 

 

[권은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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