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적과 흑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6.2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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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흑'이란 작품은 사실 내 마음속 한 켠의 작은 짐이 되는 책이었다. 옛날부터 나의 책장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소위 '나 때'는 어디어디 대학 선정도서 읽기 열풍이 불던 시기였는데, 이 책 또한 그 시기에 얼떨결에 들어온 책이다. 나의 취향과는 전혀 거리가 멀지만, 고전이자 명작 중 하나로 알려진 이 책은 책꽂이 한 켠에서 기운을 내뿜으며, 몇 년 동안 이것을 읽지 않은 내가 교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가책을 느끼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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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가 드디어 이 책을 집어 들게 만들었다.

 

집콕 생활이 어지간히 힘들었나.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의 나의 감상은 복잡 미묘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쥴리앵'의 사랑의 방식 그리고 가치관에 대해서는 공감하며 깊이 빠질 수 없으면서도, 그가 느끼는 열등감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는 모순적인 감정이 일었다.


쥴리앵은 가난한 목재상의 아들인데 늘 구박을 받았다. 일보다는 책을 좋아했던 것이 그가 구박을 받은 이유인데, 책을 좋아하다 보니 라틴어도 잘 하게 되어 레날 시장 아이들의 가정교사가 된다. 그런데 그 시장의 아내인 레날 부인과 그가 사랑에 빠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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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불륜이라는 첫 번째 문제점을 제치고, 쥴리앵의 사랑의 방식에 반발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쥴리앵이 레날 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쥴리앵의 행동으로부터 느낀 건 그가 단지 자신이 읽던 소설 속 인물들이 했던 애정의 행동을 실현해볼 대상으로 레날 부인을 선택한 것처럼 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상 속 사랑의 모습에 빠져서 자신이 소설 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하는 듯한 사랑을 하는 쥴리앵은 차마 현실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의 부류 중 하나였다. 그의 이러한 인위적이고 가식적인 사랑의 방식은 두 번째 연인 마틸드와의 연애에서도 나타난다.

 

쥴리앵은 그저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에 심취해있던 성숙하지 못한 아주 자아도취적인 인간으로 느껴졌다. 진심 어린 사랑과 애정이기보다는 신분 등으로부터 오는 열등감과 한계를 없애기 위해 상위 계급과 사랑에 빠지는 연기를 펼친 것일 뿐이었다고 생각되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랑했던 레날 부인을 총으로 죽인 장면은 이러한 생각을 더욱 뒷받침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줄리앵의 입장에서 그의 사랑의 방식을 이해해 본다면 조금 다르게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쥴리앵은 계급적 한계 때문에 오히려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한 것을 아닐까? 계급에 대한 차별이 없었다면 자신에 대한 열등감도 없었을 것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레날 부인, 마틸드에게도 자신을 꾸며내지 않고 솔직하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 편, 이 책의 제목이 왜 ‘적과 흑’인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나중에 해설을 찾아보니 ‘적과 흑’은 군복의 붉은색과 승복의 검은색에서 나온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고 한다. 쥴리앵이 되고자 했던 두 개의 직업이 바로 군인과 사제였는데 여기로부터 이런 제목이 나왔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비슷한 다른 주장에서는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장악했던 나폴레옹으로 대변되는 붉은 군복의 자유주의자들과 성직자들로 대변되는 검은 승복의 복고주의자들을 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적과 흑’이라는 제목이 혹시 이런 의미는 아닌지 생각해 본다. 그것이 연기이던 착각이든 간에 쥴리앵의 짧지만 나름대로의 한계를 넘어보고자 쏟았던 정열적인 사랑을 ‘적’으로, 시대와 사회의 계급적 한계를 꿰뚫어보고 냉철하게 자신을 억제하는 이성을 ‘흑’으로 대비한 것은 아닐까.

 

‘적’과 ‘흑’, ‘열정적 사랑’과 ‘냉철한 이성’ 즉, 쥴리앵이 극과 극에 위치해 있는 두 감정 속에서 방황했던 모습에 대한 비유를 작가가 나타내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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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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