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도시 포르투에서

화려하지 않지만 매력적인 도시
글 입력 2021.06.1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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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드디어 여행의 시작을 알린 마드리드를 떠나게 된다. 누구나 기대하는 커피 한 잔의 낭만과 유럽 골목골목의 아름다움따위는 나에게 사치였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핸드폰은 먹통이여서 누가 아날로그 세대 아니랄까봐 지도에 의존해 숙소를 찾아가야만 했다. 나름 새 폰이라고 자부하던 나는 비에 맞아 너덜너덜해진 지도조차 감사할 뿐이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바닥의 돌길들과 건물들, 오래된 구멍가게까지 참 아름다웠고 앤티크했던, 첫 여행지라는 낭만과 걱정이 뒤섞여 있던 도시. 원래 모든 것이 순탄하고 아름답기만 했던 순간보다는 돌에 걸려 넘어지고 울고 싶던 순간의 기억이 더 애뜻하다. 나에게 마드리드는 그런 도시로 남아있다.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반전의 매력이 넘쳤던 마드리드 왕궁을 둘러보았다. 깔끔하게 하얀색으로 덮여 있던 건물은 화려함과 사치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고 궁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궁전 안에는 온갖 형형색색의 장신구들과 화려한 금자수가 새겨져 있던 커텐과 이불들, 그리고 고급 카펫들과 커다란 거울, 20명은 충분히 앉을 긴 식탁과 의자들까지 하나 같이 고급스러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당시의 세금은 과연 얼마였을지 떠올리게 되는 사치스러움의 극을 달리는 궁전 중 하나였다.

 

마드리드 왕궁을 둘러본 후 저가항공을 타러 공항으로 출발했다. 전철을 타고 가면서 짧았던 좌절의 순간들과 기쁨의 순간들이 지나쳐갔다. 드디어 첫 도시를 떠난다. 나도 이제 나름 여행자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내심 자랑스러워 해본다. 마드리드여 안녕!

 

처음으로 저가 항공기안에 몸을 실었다. 사람 몸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공간만을 남겨두었기에 짐짝의 기분이 이런걸까 라며 짐작해본다. 이래서 비행기값이 저렴할 수 있겠지. 비행기에서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잠에 골아떨어졌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항구 도시 포르투에 도착했다.

 

 

포루투1.jpeg

 

 

도착하고 보니 하늘은 점점 어둑해지고 가로등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호스텔을 언덕위로 예약한 자랑스러운 내 자신 덕분에 옷과 배터리, 콘센트의 잡동사니가 들어있는 캐리어를 끙끙대며 올라가야 했다. 땀을 흘리며 체크인을 하고 빠르게 씻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생각해보니 마드리드에서는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누군가와 말해본 적이 없었던 게 아쉬웠었다. 혼자 다닐 생각으로 시작한 여행이지만, 함께 이야기하고 생각을 감상을 나눌 그런 사람의 온기가 조금은 그립다. 그래서 카페에서 동행을 구해 내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여행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얼른 잠을 청했다.

 

잠깐 눈을 감았을 뿐인데 핸드폰은 벌써 진동을 울리고 있었다. 총 네 명이 잘 수 있는 낯선 방안에서 다행히 모두가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오른쪽 침대 2층에서 침대 커튼을 치고 누워있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 시리얼을 먹으러 갔다. 호스텔에 머무는 모두가 외국인이라 부담스럽고 소외감이 느껴져 빨리 아침먹고 출발하기 위함이였다. 사실 어젯밤에 씻으러 가는 길에 처음 만난 외국인들끼리 서로 모여 같이 이야기도 하고 노는 모습을 보니 약간 부러움을 느꼈었다. 뭔가 제대로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제와 똑같은 옷, 똑같은 가방, 똑같은 신발을 신고 호스텔을 나섰다. 배낭여행자에게 예쁘게 옷을 맞춰입는 것은 사치였다. 새롭게 구한 동행분과 저녁때의 만남을 기약하고 그 전까지는 혼자 둘러보기로 했다. 정말 아늑한 도시였다. 덕분에 도시를 빠르게 돌아봐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강을 따라 걷다보면 조곤조곤 대화하는 사람들의 말 소리, 잔잔한 강가의 소리가 들려왔다. 발등에 불 난듯 급하게 뛰어가는 사람들은 없었고, 어디에 있던 강은 햇빛에 비춰 반짝였다. 작은 마을에서 여유로운 사람들을 보며 평화로움을 느꼈다.

 

포르투의 명소인 동 루이스 1세 다리위에는 나와 같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에펠탑 건축가의 제자가 설계한 다리답게 그 모양새가 얼추 비슷했다. 증축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길었다는 다리를 지나면 보이는 또 다른 마을이 있다. 와인창고, 레스토랑, 가정집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간이지만 포르투는 유독 다른 도시보다 더 평온한 마을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생각보다 관광객도 많지 않았고, 골목골목마다 집 주인의 개성이 담긴 화분들의 식물과 담장 등으로 저마다의 공간에서 포르투를 꾸며내고 있었다. 이런 소소한 재미를 관찰하다 보면 나는 어느새 온 골목을 누비는 골목대장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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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관광객들에게 '우리를 좀 봐주세요!!'라며 소리치는 도시가 있다. 화려하고 강렬한 불빛으로 단단히 무장해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도시가 있는 반면, 포르투는 그 반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르투의 골목 곳곳에는 빨래며 화분이며 오래된 마당과 대문이 이곳의 사람사는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때로는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큰 인상을 남긴다.

 

온 도시를 가득채우는 화려한 불빛이 다가 아니다. 강렬한 불빛은 분명 아름답고 기억에 남지만 그 도시에서의 진짜 매력을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골목이다. 골목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집 주인의 개성과 취향, 그리고 세월은 오직 그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어느 나라, 어느 도시와도 같지 않고 오직 그 순간 그 공간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다.

 

배낭여행을 하면서 모두에게 유명한 관광지, 반드시 봐야 하는 건축물이 있는 관광지에 지칠때면 문득 이런 담백한 맛의 도시가 생각날 것이다. 반드시 가야 할 곳, 반드시 봐야 할 것은 없지만 골목에서 저마다의 매력을 풍기는 포르투는 유명 도시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할 것이다.

 

 

[조재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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