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50년의 한을 두 시간에 담다. - 연극 '새들의 무덤'

글 입력 2021.06.17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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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 정서, 미시사적 관찰



한국어에는 ‘한(恨)’이라는 독특한 정서를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한’이라는 단어가 어떤 정서를 표현하는 것인지 설명해주면, 그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끼긴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한’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과 같은 감정을 받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한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와 그의 사고방식은 서로 큰 영향을 주고받는다. 역사 속 언제나 강한 힘들 사이에 끼어있었던 한국인들은, 어쩌면 그들의 정서를 직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한’이라는 단어를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한’이라는 개념을 들어 설명하는 것은 오늘 리뷰를 작성할 ‘새들의 무덤’은 한국인의 ‘한’의 정서를 빼어나게 승화시킨 연극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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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무덤’은 한국 근현대사를 담은 연극이다. 1968년부터 현재인 2021년까지를 배경으로 하며, 연극 속에서 언급되는 것까지 고려하자면 일제 강점기까지도 포함된다. 필자는 한국 근현대사를 ‘급히 지은 고층건물’에 빗대어 설명하고 싶다. 한국은 뒤늦게 현대화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잘사는 것에 대한 열정과 욕심만큼은 다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드높은 건물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한국인들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우선 ‘높이, 더 높이’만을 이상으로 삼아 좇았다. 그렇게 쌓아 올리다 보니, 한 기둥과 다른 기둥의 길이가 맞지 않았다. 어느 벽은 튼튼한데 어떤 벽은 툭 치면 쓰러질 것만 같았다. 누군가는 목조 건물을 고집했고, 누군가는 반짝이는 유리빌딩을 원했으며, 누군가는 콘크리트 건물만이 살길이라고 외쳤다. 다양한 의견은 한 데 모이지 못한 채, ‘그저 높은 것은 그저 좋은 것’이라는 신념을 맹목적으로 좇았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현대 대한민국이라는 고층건물이 완성되었다. 겉에서 보면 화려하긴 한데, 어딘가 위태롭다. ‘높이’ 즉 사회 전체의 경제 성장에만 집중한 채, 개인의 아픔은 달래주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기둥과 벽들은 한 번 무너졌다가 다시 세운 것이기도 하다. 군부 독재와 이에 대항한 민주화 운동, 또다시 시작된 군부 독재와 또다시 발생한 민주화 운동. 도시 빈민의 강제 철거, 외환위기, 아웃소싱과 비정규직 노동자 착취. 끝난 것은 아니다. 오늘날까지도 급히 지은 건물의 위태로운 부분은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


거시사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대한민국만큼 빠르고 완전하게 경제 및 정치 발전을 이룩한 국가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시사에는 감정이 부재한다. 우리가 우리 선택의 대부분을 직관이나 감정에 맡긴다는 것을 고려하자면, 감정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우리가 해냈어!’라고 말하는 것은 큰 착오가 될 수 있다. 동시에 ‘해내지 못한’ 개인의 감정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을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 우리의 벽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위선과 증오가 세상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항상 미시사적 관찰을 할 필요가 있다.


바로 본 연극 ‘새들의 무덤’이 그 '급변했던 한국 현대사 50년'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시대를 꿰뚫었던 ‘오루’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거시사적 성공을 외쳤던 세태에 가려진 개인과 소집단의 감정의 서사에 집중한다.


연극이 담고자 하는 내용과 연극이 담은 것, 그리고 연극의 형식적 완성도 모두에서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 지금부터는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조금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실질적인 내용은 최대한 배제하고 작성해 보았지만, 약간의 스포일러가 첨가될 수 있음은 인지해주길 바란다.

 

 

 

‘새’라는 토템과 샤머니즘



아무래도 ‘새’에 관한 언급이 없을 수 없겠다. 연극의 제목도 ‘새들의 무덤’이며, ‘새’는 문자 그대로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항상 무대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새’를 연기하는 배우에 대한 존경심이 일었다. 그는 2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 동안 지친 기색 없이 대부분은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인 정적인 연기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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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새’는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오브제로 작용한다.

 

연극은 다양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이야기들의 시점은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새는 한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를 연결해주는데 그러한 새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초월성의 성격을 지닌 ‘새’는 주인공 ‘오루’에게 일종의 종교적 체험을 제공하는 토템으로 작용하고, 본 연극에 형식적 완전성을 높여주는 작용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한 가지 더 연극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진도 씻김굿’이 아닐 수 없다. 연극 중 배우들은 실제로 다양한 주술 도구들과 함께 ‘굿’을 진행한다. 개인적으로 종교학을 공부하는 필자에게는 이러한 시도가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는데, 합리적이지 않고 비과학적이기에 이성 및 과학 중심주의의 현대사회에서는 무시 받는 경향이 있는 주술적 행위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 한 시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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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비과학’의 분야인 예술에서조차도 주술적 행위는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주술적 행위를 예술 작품 위에 표면적으로 드러내려 했던 시도는 인상적이었다.

 

비과학적 주술 행위를 결정론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히 착오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비과학적 주술 행위를 그저 ‘가치 없는 것’으로 평가절하하는 것 역시 분명한 착오이다. 문화의 모든 요소는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세상의 모든 것을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한’과 같은 감정에 관한 한, 그리고 역사 속 항상 샤머니즘과 숨결을 같이 한 한국 문화권에서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한, ‘굿’과 같은 주술적 행위는 많은 것을 직관적으로 설명해주며, 우리는 여기에 어떤 의미와 효용이 담겨 있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새들의 무덤’은 이러한 주술에 대해 예술적인 분석의 시도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겪은 만큼, 아는 만큼 달리 보일.



앞서 설명하였듯 ‘새들의 무덤’은 50년의 한국 근현대사를 2시간에 담은 연극이다. 그렇다 보니 연극에서 배경으로 하는 역사적 사건에 관해서는 이야기의 비약도 적지 않다. 따라서 본 연극은, 연극을 보는 관객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에 따라 경험을 회상하게 해주는 작품이 될 수도, 배웠던 지식을 환기하게 해주는 작품이 될 수도, 심지어는 조금의 몰이해나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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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21세기의 출발점에 태어난 필자는 연극이 담고 있는 굵직한 근현대사 사건들을 ‘직접’ 경험하진 못했다. 즉, 군부 독재, 민주화 운동, 외환위기 등의 시대에 숨을 쉬며 그것을 통감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시대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을 공부했고, 그때에 대한 ‘지식’은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연극을 보며 그 시대를 회상할 수는 없었지만, 배운 것들을 환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필자와 달리 시대의 흐름과 숨결을 같이한 관객은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30년 즈음 뒤에는 필자가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것이듯 말이다.

 

나아가 필자는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종교학이나 윤리학에 입각하여 연극의 내용을 헤아려 볼 수 있었다. 또한, 다소 현대적인 공부라고 볼 수 있는 페미니즘 철학적 관점에서 연극에서 담은 것을 분석해 볼 수 있었다. 필자는 다소 소양이 부족한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등을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본 연극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특히 페미니즘을 공부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본 연극을 감상하는 것은 세부적인 내용을 잡아내는 데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연출에서 의도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현재보다 훨씬 둔감했던 당시의 젠더감수성 수준으로 인해 개인이 겪어야만 했던 상처를 잘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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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새들의 무덤’은 한국 근현대사에 담긴 ‘한’의 정서를, 미시사적인 관점에서 토템을 통해 초월적 체험으로 풀어내며, 관객에게 경험 회상이나 지식 환기를 통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연극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최호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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