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가장 의지하는 감각은 무엇일까-단연코 시각이다. 그 결과 우리는 많은 것들에 ‘본다’라는 표현을 적용한다. 그것이 우리들의 삶 전체에 적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흔히 시각을 잃은 사람은 다른 감각들이 더욱 발달한다고 한다. 반대로 말하면, 시각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많은 이들은 다른 감각들을 그 만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듣고, 만지고, 맡아야 할 상황에서조차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에 집착하기도 한다. 그만큼 시각은 꽤 즉각적이고 명확하며 해석의 여지가 적어 보인다.
반대로 다른 감각들은 그만큼 모호하며 개인의 해석에 꽤나 좌우되는데, 그 덕에 즉각적인 반응에는 부족할지 몰라도 오히려 개인의 방식으로 기억하기에는 더욱 적합하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공부란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세상의 ‘해상도’를 올리는 행위라는 글이었다. 지식을 알게 되면 잡음이었던 뉴스가 의미 있는 정보가 되기도, 단순한 가로수가 개화 시기를 맞이한 벚꽃나무가 되기도 한다는 식이었다. 웹 상에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던 한 문단도 되지 않는 짧은 글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감각’들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각은 단연 후각이다. 취미 중 하나가 향수 시향이고 현재는 향 브랜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니 말이다. 내가 향을 즐기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앞서 말한 해상도와 유사한 이유이다. 세상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좋은 향을 맡았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 이외에도 향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크기변환]cilantro-3.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106/20210616163036_zirlreqy.jpg)
그 중 하나는 음식이다. 향수 같은 화장품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조금 의외일 것이다. 하지만 음식만큼 향을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개인의 취향에 따르긴 하지만, 나는 음식 속 향신료 향 등을 좋아한다.
그 중 하나는 바로 ‘고수’다. 한국인에게는 그리 익숙지 않은 향 때문에 원래 고수가 들어가는 음식에도 빠지거나 따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고수를 꼭 넣어 먹는다. 고수는 이국적인 음식에 더욱 이국적인 향을 더해주며 깊은 풍미와 함께 깔끔하게 정리되는 뒷맛을 느끼게 해준다. 느끼할 수 있는 음식에는 개운한 맛을 주고 자칫 잡내가 날 수 있는 음식에는 잡내를 잡아준다. 조금 단조로울 수 있는 음식에 일종의 ‘킥(Kick)’을 준다.
또 다른 음식으로는 술이 있다. 그 중 기억나는 것은 얼마전 마신 위스키 하이볼이다. 일본의 위스키를 베이스로 만든 하이볼이었는데, 위스키에서는 나무 향이 풍부하게 올라왔다. 부담스럽게 묵직하거나 기름을 칠한 듯 느끼하지 않은 나무였다. 반으로 쪼갠 샌달우드의 속살이 조금 숙성되면서 약간의 기름기가 배어 나오고, 성숙할 만큼 성숙했지만 거칠기보단 우아한 향이었다.
훈제 향 없이 깔끔한 나무 향의 하이볼은 고등어봉초밥과 함께 했는데, 덕분에 자칫 비릿할 수 있는 봉초밥을 먹은 뒤의 입안을 깨끗하고 향긋하게 비워주었다. 이처럼 음식 속 향들은 맛을 더욱 풍부하게 느끼게 해주며 음식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가려주곤 한다.
비단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다채로운 향기를 느끼며 음미하는 음식이 더욱 즐겁고 기억에 남는다.
![[크기변환]IMG_6753.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106/20210616162653_zphipuah.jpg)
또 다른 하나는 바로 기억이다. 향은 추억의 해상도를 즉각적으로 올려준다. 잊고 있던 기억도 그때의 향을 맡는 순간 선명하게 떠오른다. 스무 살 때 혼자 유럽여행을 갔었다.
출국하기 전 나는 면세점에서 클렌징 밤을 하나 사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여행 내내 밤마다 그 클렌징 밤을 이용해서 선크림이나 화장을 지웠다. 그 제품은 연한 레몬 향이 났었는데,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그 향을 맡으면 당시의 여행과 숙소들이 저절로 떠오른다.
여행의 순간마다 그 향과 함께 한 것도 아닌데, 단순히 씻는 순간에 잠시 이용했다는 것 만으로도 향은 나의 기억 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 각인은 꽤나 깊숙해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사한 향이 느껴지면 바로 그때가 떠오른다. 물론 이 각인이 늘 긍정적인 기억에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잊고 싶은 기억을 들춰내는 것 또한 향이다. 그러나 이런 것 또한 삶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소임은 확실하다.
이처럼 후각을 이용한 해상도 높이기는 꽤 재미있고 행복하다. 삶의 곳곳에 향을 배치하면 마치 보물찾기처럼 그 향을 알아채고 해석해본다. 그럴수록 향과 관련된 추억은 더욱 많아지고 향을 통해 떠올릴 수 있는 추억도 많아진다. 추억을 떠올리고 또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갈 수 있는 행복은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준다.
아직 이 즐거움에 그다지 눈길을 주지 않았다면, 약간의 고민에 큰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