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SNS 핫플보단 동네 맛집 같은 이야기 : '그래서, 서울'과 '그래서, 제주'

글 입력 2021.06.1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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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리즈는 로컬 에세이 프로젝트이다.

 

로컬이라는 말에는 다른 것보다 좀 더 진득한 의미가 느껴진다. 마치 로컬 맛집이라고 하면 누구나 검색만 하면 찾을 수 있는 SNS 속 맛집이 아니라, 동네 한편에 숨겨진 주민들만 아는 작은 가게가 떠오르는 것처럼. 관광객으로 가득한 SNS 맛집은 유행에 따라 빠른 변화의 물결을 타겠지만, 동네의 작은 가게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같은 자리를 지킬 것이다. 로컬 에세이란 그런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질리도록 빠른 유행에서 한 발짝 벗어나, 지극히 개인적인 역사가 된 소소한 이야기들 말이다.

 

이 책의 작가들은 자신이 머무르는 곳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곳에 오게 된 이유, 이곳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 같은 것이다. 나는 이들이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해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들은 동네에 대해 작고 세밀한 것들을 기억한다.

 

반면 나는 동네에 대형 건물이 한 채 들어서는 것도 모르고 지나친다. 애정이 있는 곳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명료해진다. 애정은 자꾸 들여다보게 한다. 관찰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아는 것이 많아진다. 동네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진다는 것은, 즐길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일상의 행복을 공간을 통해 얻는 사람들을 본다. 그러나 이를 위한 모든 과정이 순탄하고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작가들은 솔직하다. 판단은 각자 하기 나름이지만, 나는 부러워졌다. 자신의 낭만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내 것보다 너무 알록달록 재밌어서이다.

 

 

 

똑같은 집에서도 똑같은 이유로 사는 사람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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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래서, 서울』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서울이 너무 익숙한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서울에 사는 이유라고 하면 나는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배웠을 법한 <도시 집중화 현상의 원인> 스러운 이유 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교통이 편해서요, 교육을 위해서요, 편의 시설이 몰려 있어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살 곳을 고를 때 그런 요소들을 고려하기 마련이니까. 언젠가 부동산 앱으로 집들을 구경했을 때, 모두 비슷비슷해 보이는 동네들은 교통과 편의시설, 평수와 월세 같은 요소로만 구분되고 있었다. 이렇게 집을 보는 것이 마치 편의점에 놓여있는 삼각김밥을 고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도 편리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내가 궁금했던 건 이거였다. 그게 우리가 이곳에 살아가는 이유의 전부인 걸까? 나는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가 궁금했다.


 

성수는 역마저도 이상했다. 야외로 돌출되어 길게 뻗은 플랫폼 위로 출구가 마치 터널처럼 맨 앞과 뒤에만 뚫려있었다. 말 그대로 중간이 없는 형태였다. 그런데 재밌게도 앞쪽인 1, 4번 출구에는 성수동 주민들의 거주공간과 공장지대가, 반대편 2번, 3번 출구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힙 플레이스로서의 성수동이 자리하고 있었다. 똑같은 성수지만 어떤 방향으로 나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동네를 마주하는 셈이었다.

 

_<성수동에 삽니다> 中

 


성수동에 살기로 한 누군가에게, 성수동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묘한 결함, 서로 다른 것들이 아무렇게나 뭉쳐져 있는 이질적인 조합은 살고 싶은 이유가 되기도 했다. 누군가 성수동에서 사는 사람을 보면, 아 저 사람은 핫 플레이스를 좋아하는 사람이군, 하고 속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곳에서 정말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성수동이 SNS에서 얼마나 유명세를 타는 동네인지보다, 매일 마주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동네에 대한 감상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이런 사소한 요소는 동네에 애정을 가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또 다른 장소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도화동의 많은 가게들은 복숭아 모양의 간판을 달고 있다. 옷집이고 고깃집이고 철물점이고, 그래서인지 죄다 동글하게 다가온다. 집에 오기로 한 지인지 전화로 글을 물을 때면, “복숭아 간판 보여? 그럼 잘 찾아온 거야”라며 앙증맞은 안내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_<그저 도화동이라는 이유로> 中

 


동네의 이러한 사랑스러운 면모는 매번 애정을 가지고 둘러보지 않으면 알아채기도 힘들지 모른다. 서울은 어디든 비슷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을 분류하는 기준으로는, 어쩌면 부동산 앱의 기준이 가장 적합할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동네마다, 또 골목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개성이 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알지 발견하지 못하는. 이러한 것들이 쌓여서 ‘우리 동네’라는 감각이 만들어진다. 내가 머무는 곳에 대한 애정, 그곳에서 발견하는 일상의 행복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서울에 사는 개인적인 이유가 궁금했던 건, 그것이 결국 이 지역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은 멀리서 보면 모두가 아는 ‘서울’ 그 자체일 뿐이다. 이곳을 재미있게, 함께 살아간다는 생동감이 느껴지게 하는 것은 각자가 이 안에서 살아가며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다.

 

그제야 우리는 우리가 어떤 곳에서 살고 있는지 확실하고 풍부하게 알 수 있다. 성수동과 도화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그렇게 가본 적이 많지 않은 저 동네들에 대해서 이전과 같이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언젠가 이곳을 지날 땐 나 역시 성수역의 독특한 모습이나 도화동의 간판들을 의식하게 될 것이다.

 

 

 

낭만적인 정착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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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효리네 민박>이라는 프로그램이 전국적으로 인기를 탔다. 제주도의 여유로운 일상을 본 사람들 사이에서 일종의 제주 귀촌 열풍이 불었다. 그러나 낭만적인 정착의 끝이 항상 아름다운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실제로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지방으로, 그것도 섬에 들어가서 사는 것은 많은 변화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이곳에서는 육지로 나갈 수 있는 비행기 편도, 띄엄띄엄한 편의시설 사이 이동성을 담보해 줄 수단도 필요하다.


 

도착하고 나서야 깨달았던 것은 한림에서 신창까지 무려 3시간 가까이를 걸었다는 사실이었다. 고작 빨래만 했을 뿐인 나는 도대체 어떤 하루를 보낸 걸까. 만신창이로 집에 들어와 방구석으로 시선을 옮겼다. 열어 놓은 캐리어 한편에 자리한 서울에서부터 꼭꼭 싸왔던 세탁 세제가 유독 눈에 띄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옷가지들을 벗은 뒤 다시 한 번 세제를 바라보고 ‘또 빨래를 하러 가야겠구나.’ 생각하며 나는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_<그 해 여름, 제주> 中

 


서울에서는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순간들이 온다.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다. 제주 귀촌의 성공과 실패가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다양하게 보고되면서, 역시 낯선 곳에 가서 정착하기란 어렵다고 단정 내리는 결론들을 보곤 한다.

 

나 역시도 때로는 너무나도 복잡한 서울을 떠나 다른 곳에 머물러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곳에서 겪게 될 어려움이 내가 겪는 지루함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했다. 실행은커녕 구체적인 계획까지도 이어지지 못한 이유다. 그러나 누군가는 수많은 이렇고 저런 이야기들을 뒤로하고 직접 경험하고 겪으면서, 겪어낸 사람들이 얻는 보석을 누린다.

 

 

서울에서는 퇴근할 시간이면 퇴근하기 바쁘고, 지옥철부터 떠올리는데 여기서는 퇴근길도 멈추게 한다. 몰래 농구공을 사서 혼자 농구를 했는데 어느새 동네 주민들과 같이 팀을 짜서 내기 농구를 하는 나를 보기도 한다. 삼도동에서 같이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저녁 시간을 이렇게 보낼 수 있다니. 그래서 이 곳만큼은 해가 늦게 졌으면 좋겠다.

 

_<삼도동에 살고 있어요> 中

 


낭만적인 정착의 실체는 마냥 아름답지도, 마냥 나쁘지도 않다. 그러나 그런 사사로운 것들 재지 않고, 누군가는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길을 그냥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책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준 사람들은 제주의 생활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런데도 모두가 그 안에서, 꿈꿔왔던 일상을 발견하는 건 용기를 내고 실천한 사람들의 특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의 이야기는 단지 그곳에서 머무는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움에 대한 태도의 이야기로 느껴진다. 그렇게 신나게 뛰어들어서, 다정한 마음으로 오손도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제주는 아름다운 자연과 풍광을 제하고라도 멋진 동네인 것 같다.

 

*

 

로컬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한 시리즈의 시작으로 서울과 제주가 선택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곳들이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혹은 미디어에서 수없이 접하는 동네들이다. 그러나 어설프게 아는 곳일수록 어떤 이야기를 꺼내기는 더 어려워진다. 머릿속에만 있던 서울과 제주의 이미지를 내려놓고, 이곳에서 나름의 이유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로소 어떤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앞으로 찾아올 조금 더 새로운 장소들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내가 눈 돌려보지 못한 또 다른 장소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발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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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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