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아이폰은 마치 신라시대 장신구처럼

사치품에 대하여
글 입력 2021.06.1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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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제품을 구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독한 애플병에 걸렸다.

 

'애플병'이란 무엇이냐, 애플의 전자기기인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따위에 대한 구매 욕구가 일어나는 병이다. 애플병은 불안과 망상 증세를 동반하며, 원하는 제품을 구매해야지만 완치될 수 있다.

 

필자는 전자기기에 대한 특별한 욕심이 없었다. 노트북은 간단히 문서작업만 가능한 수준의 제품을 원했고, 스마트폰도 오랫동안 쓸 생각으로 갤럭시를 사용했다. 필요한 수준의 기능만 갖추고 상식적인 내구성를 보유한 기기라면 상관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국내 브랜드의 전자기기를 선택했다. 스마트폰은 LG를 6년, 삼성을 2년 사용했다. 무선 이어폰도 유명한 에어팟이 아닌 갤럭시 버즈를 구매했다. 이렇게 안드로이드와 윈도우 기반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다 보니 애플 생태계로 넘어갈 엄두를 낼 수도 없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아이폰은 감성의 영역이고 갤럭시는 기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감성적 편익을 기대하지 않았던 나는 항상 갤럭시를 사용했다. 굳이 비싼 가격을 주고 아이폰이나 애플의 주변기기를 사용할 이유를 느끼진 못했다.

 

그러다 무슨 일인지 작년 여름부터 애플병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코로나 때문에 어김없이 진행된 전면 비대면 강의는 아이패드에 대한 구매 욕구를 자극했다. 한 학기를 무사히 보내기에 노트북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고, 태블릿 PC가 필요하다는 합리적인 거짓말로 '지름'을 꿈꾸고 있었다.

 

약간의 고민 후에 필자는 애플의 아이패드를 구매했다. 가성비 좋은 삼성의 갤럭시탭이 있었지만, 태블릿 기기의 완성도를 따지면 애플이 좀 더 퀄리티가 높았기 때문이다. 아이패드는 생각보다 유용해 공부를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온라인 강의 수강과 자료 열람이 동시에 가능했고, PPT와 논문을 프린트하지 않아도 어플을 통해 손쉽게 필기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애플병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더 많은 애플 제품을 사용하면 뭔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각종 생산성 앱들을 통해 일정을 관리하고 편집 툴을 활용해 디자인과 영상 편집도 금방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연동성'에 대한 환상 또한 애플병의 악화를 부추겼다. 애플 제품군은 연동성이 좋아 문서나 작업을 쉽게 공유할 수 있었다. 하나의 작업을 여러 기기에서 동시에 수행할 수 있어 애플 제품이 많을수록 편리했다. 이러한 이유로 애플 사용자는 여러 대의 애플 기기를 구매했는데, '그럼 나도 아이폰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애플병 중기에 접어들었다. 아이패드 하나로는 성이 차지 않아 맥북이나 아이폰 등 주변 기기들에도 눈길이 갔다. 틈만 나면 유튜브에서 리뷰 영상을 찾아봤고, 애플의 신제품 소식은 놓치지 않고 챙겼다. 하루는 애플 제품 라인업의 차이점을 줄줄이 읊는 모습에 친구는 ‘언제 그렇게 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이폰을 산다고 행복해지진 않을 거야" "그렇지만 네가 불행한 이유는 아이폰이 없기 때문이지”

 

물욕을 극복하는 만고불변의 지혜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약한 현대인의 물욕은 오히려 소유를 통해 극복되었다. 무소유가 아닌 풀소유를 선택한 현대인의 초상이었다.

 

결국 필자는 무언가에 홀린 듯, 기회가 될 때마다 애플 제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하루는 2년 동안 쓴 30만 원짜리 노트북이 고장 나자 곧바로 맥북을 구매했다. 심지어 약간 버벅거리고 충전이 가끔 끊기던 갤럭시 노트는 다음 날 로켓배송으로 아이폰으로 바뀌어버렸다.

 

애플병 말기의 증상이었다. 애플병의 완치 방법은 지름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깨달을 뿐이었다. 모든 기기를 모아야 한다는 운명을 깔끔하게 받아들인 후 마음은 평화로웠다. 아직 모으지 못한 기기들을 구해야 한다는 의지로 애플워치까지 중고거래를 통해 구매해버렸다.

 

모든 제품을 구매하니 온갖 감정이 교차했다. 애플 제품을 갖게 된다고 인생이 달라지진 않았다. 달라진 점이라고는 지갑이 더 얇아졌다는 사실 뿐이었다. 내가 애플 제품을 통해 좀 더 세련된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을 할 때가 있었다. 마케팅과 브랜드로 만들어진 겉멋과 허세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솔직히 좋긴 좋았다. "이게 전자제품이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훌륭한 제품들이었다. 실제로 맥북을 구매해서 로직으로 시퀀싱을 할 수 있었고, 글쓰기나 영상 등의 작업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안드로이드나 윈도우에서 느낄 수 없었던 다른 편의성 또한 장점이었다.

 

그런데도 애플병의 결말은 만족과 허탈함이었다. 분명 만족감은 충분히 높은데 너무 많은 금액을 지출했다는 사실에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한 것만 같았다. 행복한 눈물을 흘리는 IT푸어라니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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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아, 나는 신라시대 장신구를 두른 신세구나."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애플 제품을 전부 모은 모습이 마치 금붙이 장신구를 두른 신라사람처럼 보였다. 바로 애플병에 걸린 자신을 두고 하는 생각이었다.

 

오래된 고분이나 유적을 발굴하다 보면 가끔 사치품을 두른 유골이 나오곤 한다. 특히 중요한 인물의 무덤일수록 옥 귀걸이, 목걸이 등의 화려한 장신구들이 발굴된다. 화려한 장신구들은 무덤에서 나와 조심스레 박물관의 전시실로 향한다. 우리가 박물관에서 보던 그 장신구가 애플의 전자기기처럼 보였다. 무덤의 주인은 애플 제품들을 잔뜩 들고 다니는 필자의 모습과 비슷했다.

 

신라시대 장신구와 애플기기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사치품이라는 점이다. 사치(奢侈)란, 필요 이상의 돈과 물건을 쓰거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의미한다. 사치품은 실제 효용가치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는 물건이다. 필요한 기능을 만족시키는 옷이나 전자기기는 훨씬 싼 값에 구할 수 있지만, 비싼 돈을 주고 사야만 하는 제품이 바로 사치품이다.

 

사치품은 강력한 구매욕구를 자극한다. 기성 제품과 동일한 기능이어도 특별한 상징과 디자인으로 구분되어 높은 가격이 책정된다. 사치품의 가격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가치로 책정되는데, 높은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가진 사람만이 구매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흔히 '명품'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귀한 명품을 다루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과거 귀족들은 아름다운 장신구와 보석을 애지중지 다뤘다. 늘 지니고 다니는 것은 물론이며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도 무덤에 가지고 들어갈 정도였다. 사치품은 계급과 사회적 지위를 증명해줄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애플 제품도 마찬가지로 애지중지 다뤄진다. 사람들은 비싼 애플기기가 고장이 날 상황에 대비해 전용 보험에 가입하곤 한다. 애플은 타사대비 기기 수리비가 꽤 높은 편에 속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식 밖의 수리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제품 구매와 함께 보험에 가입한다.

 

또한, 장신구는 애플 못지않게 연동성이 중요하다. 아이폰을 사면 애플워치와 에어팟까지 구매해야 진정한 편의성을 느낄 수 있듯이, 신라시대의 옥 귀걸이를 사면 목걸이와 팔찌, 발찌까지 옥으로 맞춰야 진정한 패션이 완성될 수 있다. 모든 애플의 컬렉션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은 전신을 옥 장신구로 치장할 수 있는 사치스러운 귀족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필자는 거부할 수 없는 사치스러움에 굴복하고 말았다. 흔히 유튜브나 인스타에서 보는 '애플 인증샷'이 가능할 정도였다. 딱히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었기에 SNS에 올리거나 친구들에게 보여주진 않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애플 마니아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다.

 

*

 

소비의 과정은 달콤하다. 물건의 가치를 그대로 손에 넣는 행위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필요에 의한 합당한 소비'라는 최면까지 걸 수 있다. 애플이라는 브랜드가 가진 멋지고 세련된 이미지는 제품의 구매를 통해 소비자에게 적용된다. 소비를 통해 멋진 사람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걸 다 손에 넣고 나서야 남는 건 무엇일까. 애플 제품으로 몸을 치장한다고 삶에서 달라지는 부분이 있을까. 당장 학점이 오르는 것도 아니며, 내가 할 수 있는 업무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도 아니다. 과분한 사치는 물건의 가치로 자신을 수식하는 삶이다.

 

물건이 아무리 큰 가치를 지닌다도 해도 삶의 중요한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옥 귀걸이로 멋진 사람이 될 순 없다. 반대로 멋진 사람이 착용한 옥 귀걸이가 가치를 얻는 것이다. 애플도 마찬가지다. 유능하고 세련된 이미지만을 위해 애플 제품을 구매해서는 안 된다. 만약 자신의 일과 삶이 유능하고 세련되길 바란다면, 노력 없이 구매로 얻을 수 있는 가치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애플은 마치 신라시대 장신구처럼 사치스럽다. 맥북으로 글을 쓰는 와중에도 행복한 눈물을 흘렸다. 기뻐서 나오는 눈물일까 슬퍼서 나오는 눈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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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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