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도심 속의 고궁,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거닐어보자, 나만의 사적인 산책
글 입력 2021.06.1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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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 K-궁궐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저자 김서울 | 출판 놀(다산북스) | 출간일 2021.05.18 | 224쪽 | 에세이


 

도서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에 호기심이 든 계기는 아주 단순하다. 서울, '김서울'이란 저자가 가진 이름 때문이었다. '서울'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어떠한가? 부드러운 발음과 어감이 입에 잘 달라붙고 아주 익숙한 지명이자, 우리나라의 수도다. 개인적으로 단어 '서울'을 참 좋아한다. 무엇보다 익숙한 작가의 이름이기도 했다.

 

나는 경기도에서 태어나 막연한 서울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가끔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널 때면 설렜다. 서울이 가진 특유 감성이 좋다. 종종, SNS 피드에 서울의 풍경을 주제로 올라오는 사진이 있다. 자주 봤던 사진인데, 무의식적으로 눌러 본다. 나에게 서울은 그렇다. 항상 가고 싶고 느끼고 싶은 곳. 그래서 일찌감치 고향을 떠났다. 별 의미는 없을지 몰라도 김서울이란 필명을 가진 사람이 소개하는 궁궐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서울이 소개하는 서울의 궁궐, 마치 어느 날 문득 낯선 곳에서 발견한 나만의 맛집과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책을 집었다.

 

 

 

나의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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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에서 특히 중구 지역을 좋아한다. 그 중, 안국역과 경복궁역 사이를 좋아한다. 가끔 광화문역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그쪽 근처의 3호선, 5호선을 선호한다. 그 지역을 선호하게 된 기억은, 어느 좋은 날에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다만, 돌담길을 걸었던 적이 있다. 잠시 일상을 잊고 그 순간의 여유에 젖어 들었던 시간이었고 천천히 거닐어 다닌 돌담길은 그날따라 사람이 없었다. 바람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선선했고 거세지도 않아 머리카락이 불편하지도 않았다. 때마침 샌들을 신고 있었고 쾌적한 상태의 기분이 더욱 나를 신나게 했고 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꽤 몇 년이 된 이야기인지라 언제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때 입었던 차림은 정확히 기억난다. 분홍색이 도는 파스텔 톤 쇼퍼백에, 흰 스키니를 입고 위에 검은색 반소매를 입었다. 라탄 재질의 샌들을 신고 근처 예쁜 카페에 들리기도 했고 걷고 걸어 경복궁도 들어갔던 날이다.

 

사실 거리가 꽤 멀어 경복궁역을 자주 가진 못한다. 경복궁도 먼데 경희궁은 가봤을까? 뭐가 뭔지도 모르고 걸었을지도 모른다. 막상 간다고 해도 몰려있는 인파를 견디지 못해 금방 나온다. 사람이 많다 보니 금방 더워졌고 햇볕이 더 따갑게 느껴졌다. 사실, 고궁은 직접 자주 가진 않았으나 익숙했다.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봐도 유독 시대물을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태조 왕건부터 시작해 웬만한 대하드라마는 전부 섭렵했으며 항상 나오는 시대별 궁궐은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으나 익숙한 곳이었다.

 

다행히 어린 시절에 사극을 접해 거부감 없이 익숙했지 아마 나이가 들어 사극에 빠졌다면 용어를 이해하고 사용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이다. 아니면 사극에 빠지지도 못했을지도 모른다. 암기량이 무궁무진한 역사 과목은 고등학교 시절, 나의 최애 과목이었지만, 모두의 기피 대상이었다. 선택과목으로 선택은 못 했다. 왜냐하면, 한국사는 서울대 지원 학생의 필수 과목이었기 때문에, 내신으로 만족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고궁이란, 역사란 그런 것이었다.

 

 

 

김서울의 500년 조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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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서울은 도대체 얼마나 궁궐을 방문했던 것일까? 자연스럽게 써 내려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입에 붙기 힘든 조선 시대의 단어는 아마 우리가 고궁과 닿기까지 걸리는 장애물과도 같다. 수많은 인파를 뚫고 경복궁에 안착해 마음을 붙이려는 찰나, 근현대사도 벅찬 우리에게, 조선 500년 역사에 대한 부담감을 안긴다.

 

맞아떨어지는 얘기인지는 모르겠다만, 동양의 미는 여백이라 하지 않던가? 저자 김서울 역시 그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머리 아픈 국사에 대한 무게는 덜어내고 하나의 건축물로 그 아름다움을 탐미하자고 말한다. 단, 저자의 지식을 확실히 갖기 위해선 최소 K-궁궐을 덕질하기 위해선 시간대별 방문하는 최소한의 노력은 필요해 보인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나는 천천히 즐겨보려 한다.

 

총 4차례의 목차로 나뉘어있다. 1장 지극히 주관적인 궁궐 취향 안내서, 2장 궁궐의 돌, 3장 궁궐의 나무, 4장 궁궐의 물건으로 마지막은 에필로그로 장식한다. 저자가 왜 궁궐에 빠져 이 책을 집필하게 됐는지, 유물감정가 이자 서울 주민으로 어쩌다 궁궐의 매력을 알게 됐는지를 시작으로 한옥을 짓는 큰 재료인 돌과 나무로 나누어 궁궐의 뾰족한 특징을 설명하고 궁며드는 매력을 우리에게 영업한다. 마지막으로 의식주에 '주'에 해당하는 아름다운 건축물을 채운 물건들을 소개한다. 상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놓인 소품들 하다못해 색깔까지. 건축물뿐만 아니라 궁궐에 살았던 왕들의 취향과 가치관을 느낄 수 있는 흥미로운 부분도 많았다.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K-궁궐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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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매력적인 포인트는 '사람 냄새'가 진득하니 묻어 있는 점이라 말하고 싶다.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은 역사 시간 접하기 힘든 일화를 재미있게 풀어준다. 역대 왕 중 세종이 유일하게 경복궁에서 주로 기거하는 왕이라는 것과 연산군은 꽃나무를 좋아했다던가, 마치 친한 친구가 어딜 다녀와 풀어주는 '썰'과 다름없는 시선으로 얘기해준다. 정제된 언어지만 친근한 문체가 현대인의 시선으로 풀어낸 K-궁궐은 드라마 속 세트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것이 드라마에서도 말하는 조선 시대 건축물이나 물건을 가리키는 정확한 용어가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찾아보니 그제야 아, 그게 이거였고 이게 이거였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었다.

 

부단히 노력하지 않아도 술술 읽히는 재주를 가진 책이다. 솔솔 풍기는 사람 냄새가 가득한 책이 설명하는 우리의 고궁이 가진 숨겨진 매력을 현대의 삶과 엮어 거리감을 좁힌다. 쉽게 예시를 들자면 웹툰 작가 무적핑크가 연재하던 <조선왕조실톡>과 비슷하다.

 

또, 유물 전문가다운 설명이라고 해야 하나, 덕후의 영업 전략이 상당히 뛰어나다고 해야 하나. 나에게 지하철을 타고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얼른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작가처럼 경복궁을 본 적이 있나? 경복궁 말고 창경궁과 창덕궁을 방문은 했었나? 했어도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작가의 목적은 분명하다. 조선왕조와 우리가 친해지길 바라, 가까워지길 바라를 희망한다. 조금이라도 가까워졌다면 의도는 성공이다. 문득, 나와 조선 역사는 거리감은 얼마 정도인지 생각하게 된다.

 

아주 어릴 적, 학교에서 데려간 첫 궁궐은 금세 나의 호기심을 가라앉혔다. 가이드분의 투철한 설명에도 집중하기 어려웠던 초등학교 저학년인 나한텐 드라마가 아닌 고궁은 실로 재미가 없었다. 아마도 내 생각엔, 아직 고궁이 주는 멋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나이였기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 이제야 가치를 알고 한 번씩 눈길이라도 가지만, 그전보다 더 손길이 가고 익숙해져 갈 뿐이지 여전히 재미는 크게 없다. 시각적으로 보고 그때 그 감성을 느끼는 재미로 드라마나, 관련 웹툰은 매우 흥미롭게 감상하지만, 성인이 되어 간 궁궐은 좀 더 걸어 다닐 뿐이지 인파에 견디지도 못하고 금세 나온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이 지내야 의미가 있는 공간에서 생동감을 주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서울 속의 궁궐


 

분명 도심 속에 자리 잡은 거대한 한옥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거주의 의미를 상실한 지금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작가 김서울도 이 점을 콕 집는다. 무엇이든 본연의 쓰임새와 의미를 잃어버리면 가치를 잃는다. 모든 것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상주하든 비상주이든 사람들이 지내기 위해 지어진 건물에 어느 것도 남아있지 않고 '집'만 남아 있다. 다행히 모든 물건을 보관한 국립고궁박물관이 있지만, 사용되어야 할 물건들이 오랜 기간 보관이 필요하고, 손길이 타면 안 되는 문화재가 된 이상, 일상에서 줄 수 있는 멋은 없다.

 

그리하여 마지막 챕터의 이야기는 궁궐에 사는 사람들을 다룬다. 한옥을 짓는 돌과 나무에 대해 한참 설파했다면, 이제 진정 마지막 클라이맥스로 달려가는 디테일을 말한다. 국사 시간에 한 번이라도 들어봤을 법한 소재를 다룬다.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고궁의 물건들을 핵심적으로 나열했고 전문가가 괜히 전문가가 아니듯, 우리의 집중력을 고려한 분량과 깊게 파고들어 보면 알게 되는 알뜰하고 신비로운 지식이 밀집했다. 미래를 위한 AI와 테크놀로지 서적은 자주 보았지만, 역사를 다룬 친근한 책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역시 사람 사는 거 다를 것 없다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인간의 생리를 보고 있자니 조금은 편해졌다. 미래에도 어떻게든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지금과 같이 살아갈 테니 말이다. 사진작가 정멜멜의 고즈넉한 고궁의 멋이 담긴 사진과 담백하면서도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정렬된 김서울의 글을 만났다. 두 개의 담백함이 만나 만들어낸 책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은 날이 곧 더워지기 전에 얼른 경복궁역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나도 나만의 사적인 궁궐 산책을 거닐어 봐야할 것이 아닌가. 그럼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구절을 남기고 이만 마치도록 하겠다.

 

 

나는 돌을 좋아한다. '돌을 좋아한다'는 말이 약간 어색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이 말은 오므라이스를 좋아한다, 가을을 좋아한다, '솔의눈'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돌은 지구 어디에나 있다. 어떻게 보면 지구라는 행성 자체도 거대한 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세상에 돌이 없는 곳은 없다. 물이 가득한 바다 아래에도 거대한 암반과 암석으로 이루어진 지형이 존재하니까. 그만큼 돌이란 너무 흔한 존재라서 '돌을 좋아한다'는 취향은 어쩌면 '나는 숨 쉬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중 '궁궐의 돌' 중에서(62- 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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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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