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트" [영화]

글 입력 2021.06.12 16:3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이 영화는 미쳤다.”

 

영화의 처음은 각종 배지를 단 고위 공직자의 강연으로 시작한다.

 

대사들은 마치 핑퐁게임처럼 여백 없이 이리저리 튀었다. 대사는 항상 정확한 곳에 빠르게 안착했다. 대사와 함께 카메라들도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 사람을 잡았다가 어느새 저 사람을 잡고, 또 한 명을 잡고 있다가 어느 새 네 명으로 사람이 늘어나 있었다. 그 모든 게 대사와 함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짧은 쇼트의 길이 때문인지 눈 깜빡하면 장소가 바뀌어 있었다. 택시 문을 닫으면 방 안에 들어와 있기도 했다. 필요 없는 장면은 가차없이 잘라낸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빠른 호흡과 편집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러닝타임은 2시간가량이었다.

 

영화의 이야기의 주된 줄거리는 제트의 죽음이 ‘암살’인지 ‘사고’인지를 판별하는 데 있었다. 진실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고 증거를 없애려는 자와 증거를 말하려는 자 사이의 은밀한 전투가 이어졌다.

 

언뜻 보면 재미없어 보이는 이 영화가 어쩌다 ‘미친’영화라고 생각되어진 걸까? 그 이유를 더 자세히 알아보았다.

 

 

첫장면.jpg

 

 

첫 번째로 살펴볼 부분은 각본이다. 이 영화는 쓸모 있는 대사들로만 구성되어 대사의 작은 변화로도 캐릭터를 잘 표현하고 있다.


영화 첫 머리에 “이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인물과 사건을 토대로 한 것이다”라는 자막이 나오는데〈제트〉(1969)는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 1963년 그리스에서 발생한 유력 정치인 그레고리오 람브라키스의 암살 사건을 다룬 바실리 바실리코스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등장인물은 크게 제트, 제트의 부인, 검사, 기자가 있다. 그 중에서도 중립을 지키려는 검사가 눈에 띄었다.

 

검사는 제트의 죽음을 ‘사고’라고만 이야기한다. 정확한 증거가 나오기 전 중립을 유지하려는 검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다 제트의 죽음이 암살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나자 자신도 모르게 ‘암살’이라고 표현한다.

 

영화 중반부까지는 검사가 중립을 지키려는 건지 경찰청장의 사주를 받아 그런 척하는 건지 헷갈렸었다. 일을 꾸민 경찰청장이 압박을 주어도 정치적으로 중립을 고집했던 검사는 결국 ‘암살’이라는 증거에 기반한 결론을 내린다.

 

단지 이 대사 하나만으로 검사는 중립을 지키려는 인물이며 상황이 좌파에 유리한 쪽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제트.jpg

 

 

두 번째로 볼 것은 특히나 인상 깊었던 편집이다. 이 영화는 잦은 클로즈업과 몽타주를 사용해 관객들이 연상적 작용을 하게 했다.

 

클로즈업은 일반적으로 무엇을 ‘강조’하면서 이야기 서사에 들어가고 이끌게 된다. 몽타주란 여러 쇼트를 인위적으로 배치하여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클로즈업을 통해서 배경이 거의 날아간 인물들 혹은 사물을 강조한 이미지로 인해서 관객들은 장면에 대한 궁금증이 증가하고 감독의 인위적인 쇼트 배치로 인해 클로즈업 숏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연상하게 했다.

 

예시로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검사가 기고한 경찰 관계자들이 나오는 장면을 들 수 있다. 처음에는 고위 관직자의 다양한 배지들을 클로즈업 숏으로 보여주고 검사에게 화내는 장면 뒤에 똑같이 고장난 문으로 향해 나간다. 총 다섯번이 거의 비슷하게 진행되는 이 장면에서 다른 점은 배지의 개수가 늘어나고 있는 점이다.

 

늘어나는 배지와 고장난 문으로 향하는 것은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이지만 모두 고위 관직자들이 기소당한 후 행했다는 동질성을 확보한 액션이기 때문에 이 쇼트에서 새로운 개념이 창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운로드.jpeg

 

 

이 영화는 대체적으로 배경음이 많이 있지 않다. 그러나 다행히 리듬감 있는 대사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씩 나오는 음악이 장면의 긴장감과 의문스러움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배경음악은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서 장면의 분위기를 바꾼다. 예를 들어, 재난 영화에서 돌이 떨어지는 소리, 벽 안의 물이 졸졸 흘러가는 소리들을 그대로 살린다면 재난상황의 긴박함을 살릴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면 긴장하고 보고 있던 관객들이 집중도를 잃을 위험이 생긴다.

 

이 영화에서도 긴장감 있는 장면들을 유지하기 위해서 배경음악을 대체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음악을 사용함으로써 긴장감과 의문스러움이 배가 되는 장면들이 존재했다.

 

[32:19]에서 들리는 음악은 둘의 싸움을 점점 더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노래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노래 소리가 하나씩 덧붙여지면서 상황의 긴장감을 배로 만든다.

 

[44:11]에서 제트를 암살한 암살자가 신이 난 모습에 가볍고 신나는 노래가 삽입된다. 그동안의 분위기나 암살한 직후라고 생각했을 때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과 음악이다. 개인적인 분석으로는 그 장면을 통해 암살자의 행위가 그만큼 그에게 가벼웠고 쉬운 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31:58]에 제트가 혼자 관중들과 맞설 때 관중들의 소란스러움 외에는 다른 음악이 삽입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긴장감이 도는 광장의 분위기를 더 잘 느낄 수 있고 조용한 소리에 오히려 다음 장면에 더 집중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마지막 장면.jpg

 

 

이 영화에서 연출이 제일 두드러지게 보였던 부분인 각본, 편집, 음악에 대해서 분석해보았다. 세 가지 모두 전체적으로 빠르고, 속도감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었다.

 

각본의 빈틈없고 리듬감 있는 대사는 전체적인 흐름이 지루하지 않게 해주었고 짧은 프레임으로 구성된 쇼트는 영화의 긴장감을 잃지 않게 해주었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음악은 장면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을 해주는 동시에 장면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역할을 해주었다.

 

제트의 장르가 어째서 정치 ‘스릴러’인지 알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사실 ‘정치’라는 말이 들어가면 지루하다고 예상하기 쉽다. 여기저기 얽혀 있는 관계를 파악해야 하고 대사의 볼륨이 대체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트는 속도감 있는 연출을 통해 지루하지 않은 정치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보인다.

 

 

[박소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