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삐까부 세상과 미디어 시대 [도서/문학]

'죽도록 즐긴다'는 것
글 입력 2021.06.1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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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즐기기‘. 다소 과격해 보이는 제목의 책을 고른 것은 순전히 ’시대를 초월한 혜안‘이라는 추천 문구 때문이었다. 1986년에 출간된 이 책은 뉴미디어 시대를 예견하며 다가올 미디어 세대가 가져야할 자세와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세기 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언급되며 2020년에도 리커버 되어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현재 처한 현상에 대해 분석한 글도 아니고 미래를 예견하며 쓴 글이 이렇게까지 오래 회자되며 연구되다니.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점점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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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라는 고리타분한 얘기



책이 쓰인 20세기 후반은 미국에 문화적 변화가 일던 때였다. 활자시대가 쇠퇴하고 텔레비전이 부상한 것이다.

 

이러한 주력매체간의 전환 속에서 사회는 혼동되었고, 텔레비전을 통해 이미지 중심의 의사소통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정치, 종교, 공공 비즈니스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텔레비전에 맞춘 문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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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계속해서 ‘쇼 비즈니스’에 대해 얘기하는데,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경제든, 정치든 결국엔 공연예술에 가깝다는 것이다.

 

특히 텔레비전에서는 보이는 것이 전부로 받아들여짐을 얘기하며 ‘우리가 접하는 매체가 방출하는 메타포는 세계를 분류하고 계열화하고 틀 지우고 확대하고 축소하고 채색하여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나름의 인식론을 편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인간은 매체를 통해 모든 것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미디어를 보는 행위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정신세계를 어떻게 체계화하고 통제하는지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인쇄매체에서 영상매체로 넘어가는 것이 인간에게 큰 영향을 준 변화라고는 생각했지만 ‘변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영상매체, 특히 텔레비전에 있어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텔레비전은 기껏해야 하찮을 뿐인데, 주제넘게 과대 포장되어 스스로 중요한 문화적 의사소통의 전달자로 자처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

 


어릴 적부터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라는 이야기를 질리도록 들어왔지만 그것은 텔레비전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닌 텔레비전을 올바르게 이용하자는 얘기에 가까웠다. 저자는 거기에 더해 ‘텔레비전이라는 새로운 주류매체가 사람들의 지적 능력을 편중시키고, 지성과 지혜에 대한 특정한 정의를 선호하도록 하고, 특정한 종류의 내용만을 요구하도록 조장하여 공공담론을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이것을 보며 크게 감탄했다. 이 주장이 최근 미디어의 문제점으로 거론되는 ‘확증편향’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한 세기 전의 주장이 새로운 미디어에도 여전히 해당되고 있다니, 새로운 매체의 부상과 쇠락이 어쩌면 이미 예견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 2장. 홍수에 가라앉지 않기



저자는 ‘정보 대비 행동비율’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상적인 뉴스와 전신들은 대부분 그저 이야깃거리에 불과한 쓸모없는 정보의 집합체일 뿐 의미 있는 행동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인쇄문화나 그 전인 구두문화에서 정보의 중요성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수준을 의미했는데, 전신이 빚어낸 변화로 인해 정보와 행동의 관계가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들이 직면하게 된 정보과잉의 문제는 정보 대비 행동비율의 극적인 하락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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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는 텔레비전 시대를 넘어 뉴미디어 시대에 다다른 현 인류는 정보의 홍수 속에 빠져있다. 매시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양한 정보들이 다양한 형태로 쏟아진다. 그리고 이 정보 중 대부분은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


정보를 접하며 행동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개는 찰나의 순간동안 즐기고, 잠깐의 감정적 동요를 일으킨 후 사라진다. 정보가 텍스트에서 이미지나 영상으로 옮겨가면서 정보는 읽는 것이 아닌 보는 것이 되었다. 더욱 빠른 속도로 우리를 지나쳐간다는 뜻이다.


저자는 이러한 세상을 ‘삐까부(peek-a-boo) 세상’이라 칭한다. 숨어 있다가 까꿍하고 나타나 놀래주는 장난처럼 어떤 사건이 눈앞에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돌연 사라진다는 의미다. 한편으로는 그런 깜짝 장난처럼 단순히 즐기는 오락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금세 사라지는 ‘삐까부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매체 속 정보를 받아들여야하는 걸까?

 

 


제 3장. 유행의 물살



요즘 사회에 맞춰 살다보면 금세 지치기 마련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유행어와 새로 등장하는 SNS 채널. 쏟아지는 유행의 급류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는 단순히 많은 정보를 접함을 넘어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거나 만들어진 유행에 편승하는 게 주류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유행의 주기는 지나치게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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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유행의 대부분은 별 의미가 없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원래의 의도나 의미는 희석되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삐까부 세상’에서 유행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취향, 가치관을 뚜렷하게 형성하고, 다양한 정보를 접하되 이를 선별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미디어를 바로 사용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제 4장. 죽도록 즐긴다는 것



‘20세기에 출간된 책 중 21세기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책’


포털 사이트에서 이 책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책 소개 문구다. 저자는 21세기 사회를 최초로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미디어 세대에게 찾아올 시대를 예견하며 경고한다. 1986년에 쓰인 텔레비전의 해악에 대해 경고하는 책의 내용이 2020년에 와서까지 시의적절하다는 평을 받는 것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현대 사회는 즐길 거리가 널린 ‘죽도록 즐기기’가 가능한 세상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잃는 것이 더 많다면 어찌하겠는가? 무엇을 잃는지도 모른 채 그저 즐기기엔 삶이 아깝지 않은가.


저자가 텔레비전을 향해 던진 질문은 현대에 와서도 적용된다. 우리가 온갖 매체와 기술에 판단력을 잃고 끌려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자유로워질까 구속될까? 우리 사회는 더 투명해질까 더 흐려질까? 우리는 더 나은 시민으로 성숙할까 아니면 더 나은 소비자에 머무를까?


저자의 질문은 오랜 고민을 하게 만든다.

 

*

 

책의 뒷부분에 나온 ‘20세기에 나온 21세기 책’이라는 평이 딱 들어맞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저자가 지금의 사회를 직접 보며 쓰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앞으로도 새로 등장할 사회에 대한 무수한 고민과 분석이 이뤄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도록 즐기기가 가능한 사회, 정말 즐기기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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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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