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결혼 이야기'를 커뮤니케이션으로 분석하자면 [영화]

영화 '결혼 이야기' 돋보기
글 입력 2021.06.0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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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야기.jpeg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고독한 존재이며 그 고독감과 공허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것"이라 하였다. 인간에게 사랑은 ‘존재’ 문제와도 직결되는 감정인 것이다. 사랑하고, 연인이 되고, 결혼한다. 이러한 로맨틱 관계(Romantic Relationship)는 대인 관계(Interpersonal Relationship)의 유형 중 하나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과 상호작용을 수행하면서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깨진다.


노아 바움백(Noah Baumbach)의 영화 <결혼 이야기>는 이혼 절차를 밟아가면서 비로소 빛나는 결혼 이야기를 담았다. 사랑하고 결혼한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찰리(애덤 드라이버)의 ‘관계’는 어긋난다. 그들은 치열하고 아프게, 현실적이고 담담하게 결혼을 말한다.


무엇이 어떻게 왜 이들을 헤어지게 했을까? 결혼이라는 관계와 그 관계 속에서 발생한 커뮤니케이션에 주목하여, 어긋난 관계의 형태를 관련 이론으로 들여다보려 한다.

 

 

 

투자와 보상의 불균형



 

우린 함께 밤을 보냈고 그다음 날도 쭉… 내가 떠나지 않았어요. 솔직히 시작부터 문제가 있었죠. 난 계속 찰리와 그의 인생에 맞춰 살았어요. 그만큼 좋았고 살아 있는 기분이었거든요. 처음에 난 스타 배우였고 특별한 사람이라 관객들이 날 보러 온다고 느꼈어요. 근데 난 잊혀 갔고 극단이 호평받으면서 난 점점 보잘것없어졌어요. 그리고 난 한때 잘나갔던 반짝스타로 남았어요.


- 변호사 노라와 대화에서, 니콜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으로부터 기대한 성과와 만족을 얻지 못할 경우에 그 관계는 부서진다. 티보와 켈리(Thibaut & Kelly, 1959)는 인간관계가 유지되고 와해하는 과정을 투자와 보상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사회교환이론(Social Exchange Theory)이라고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두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는 각자에게 돌아가는 성과에 따라 그 관계의 존속 여부가 결정”된다.


각자 현재의 관계에서 얻게 되는 ‘보상’과 감수해야 하는 ‘부담’을 지니게 되고, 인간관계가 보여주는 성과는 이러한 “보상과 부담의 차이”를 의미한다. 인간관계의 “만족도는 이 성과의 크기에 비례”한다. “보상은 크고 부담은 작아야 하며, 성과가 클수록 인간관계는 만족스럽게 느낀다”고 한다(오기봉, 2013).


노라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니콜의 이야기에서 투자와 보상의 불균형이 드러난다. 니콜은 찰리와의 관계를 위해 투자했다. LA에 살던 니콜이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는 부담을 감수하며, 잘 나가는 영화배우에서 찰리의 극단의 배우가 되는 부담을 감수하며 관계에 투자했다. 그러나 니콜은 이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느낀다. 관계는 불만족으로 이어졌다.

 

 


유사성의 착각



사람은 공통점을 발견하면서 관계를 형성한다. 대인 커뮤니케이션의 동기 유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유사성(similarity)이기 때문이다. 찰스 버거(Charles Berger)의 ‘불확실성 이론(Uncertainty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이방인과 마주했을 때 ‘불확실성’을 느낀다. 이후 관계를 형성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매개로 서로 간의 불확실성을 감소해 나간다. 그가 제시하는 여덟 가지 공리 중 하나가 ‘유사성’이며 유사성이 증가할수록 불확실성은 감소한다.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유사성을 기반으로 한 공유된 '경험의 장’이 넓어지고 관계는 친밀해진다.


‘경험의 장’은 슈람(W. Schramm)의 커뮤니케이션 모델에 등장하는데, “송신자는 이 공통된 경험의 장을 토대로 메시지의 의미를 부호화하며 수신자 역시 이 경험의 장을 바탕으로 수신된 메시지의 의미를 해석”한다(조창연, 2017). 즉, 커뮤니케이션 당사자 간 공통된 경험의 장이 넓을수록 오해(잡음)가 줄어들기 때문에 소통이 순조롭다. 원활한 소통은 돈독하고 개방적인 관계를 만들고, 전보다 더 공통된 경험을 갖게 한다. 그러면 소통은 또 잘 된다. 선순환적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상대와 나의 유사성은 관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이를 만들어 준 이 ‘유사성’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비슷함에 빠진 나머지, 상대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간과하고 잊게 된다.  헤어진 연인들 대다수가 결별 이유로 ‘성격 차이’를 꼽지만 사실 이 성격 차이는, ‘성격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가 갑자기 느끼게 된 이후로 견딜 수 없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차별화 단계와 거울 이미지 편향



냅(Knapp)의 관계이론은 관계 형성과 관계 해체의 과정을 10단계로 구분한다. 각각 다섯 단계로, 관계 해체 단계에서는 ‘차별화 단계’, '경계선 긋기’, ‘정체 단계’, ‘회피 단계’, ‘해체 단계’가 있다. 관계 해체는 어느 단계에서든지 완전한 해체로 이행할 수 있으며, 심지어 관계 형성 단계 중에도 관계가 발전하지 못한다면 당장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때 ‘차별화 단계’는 두 사람 사이의 차이가 부각되면서 시작된다. 공통점 대신 차이점이 느껴지게 되는 순간 말이다. 일명 ‘성격 차이’가 수면 위로 떠 오른다.


 

나조차 내 소유가 아니었죠. 작은 물건, 쓸데없는 물건 큰 물건 할 거 없이 집에 있는 가구까지 전부 남편 취향이었어요. 내 취향도 잊어버릴 지경이었죠. 아무도 안 물어봤으니까요.

 

- 변호사 노라와 대화에서, 니콜

 


‘차별화 단계’의 흔적을 니콜의 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찰리가 좋아 그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을 때 니콜은 알지 못했다. 내가 이런저런 걸 싫어했다는 사실을. 그의 취향이 내 취향 같고, 그가 사는 뉴욕을 내 집처럼 느끼는 시간을 지나 ‘아님’을 자각하는 시기에 도달했다. 이 차이에 관대했던 지난날과 달리, 상대방과 나 사이의 차이점에 초점이 맞춰진다. 차이가 드러나며 갈등이 커지고, 갈등이 커지면서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니콜: 여기서(LA) 살기로 약속했던 거 까먹었어?

찰리: 이것저것 상의는 했지

 

(…)

 

니콜: 여기서 1년 살 수 있었는데 게펀 극장의 제안을 거절했잖아.

찰리: 안 당겼으니까. 훌륭한 극단이 있고 멋지게 살고 있었잖아.

니콜: 그게 멋진 삶이었다고?

찰리: 무슨 뜻인지 알잖아. 우리 결혼 얘기가 아니고 브루클린 생활 말이야. 일에 있어서. 솔직히 다른 거는 생각도 안 했어.

니콜: 바로 그게 문제 아니야? 난 당신 아내였는데 내 행복에도 신경 썼어야지.

찰리: 당신도 행복했잖아 괜히 이제 와서 불평하는 거지.

 

(…)

 

찰리: 당신 드라마가 편성돼서 헨리를 여기 학교에 보내기로 한 거야. 촬영이 끝나면 뉴욕으로 돌아올 줄 알고 그랬다고.

니콜: 여보, 당신 멋대로 짐작한 거지 그런 얘기는 한 적 없잖아.

찰리: 얘기했거든!

니콜: 우리가 언제?

 

- 니콜과 찰리의 대화

 

 

차이점이 눈에 띄고, 차별화 단계에 진입하면 ‘내가 이렇게 생각했는데 너는 왜 나랑 다르게 생각하는 거야’의 사고가 작용한다. 이런 인지적 편향을 ‘거울 이미지 편향(Mirror Image Bias)’이라고 한다. 거울 앞에 자신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듯이 상대가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향적인 사고다. 상대도 나와 같은 생각, 가치관, 사고방식을 갖고 판단하며 행동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니콜과 찰리도 그렇다. 니콜은 LA에서 살기로 약속했다고 생각하고, 찰리는 자신이 행복했던 것처럼 니콜도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찰리는 니콜의 이사를 자기 생각대로 이해하고 니콜도 자기 생각대로 LA로 정착하려 한다.

 

 


채워지지 않는 자아실현의 욕구



심리학자 매슬로(Maslow)는 인간의 욕구에 다섯 단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욕구 단계설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그 중요도에 따라 일련의 단계를 밟는다. 하위 욕구를 충족하면 상위 욕구를 충족하려 한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순서이다.


부부의 친밀감은 세 번째 단계인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채워진 니콜이 다른 상위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영화에서 자주 언급되었듯이 그 충족은 쉽지 않았다. 영화배우로 막 주목받기 시작하던 때에 어쩌다 뉴욕에서 포르노 취급받는 삼류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 연극을 보다가 찰리를 만나 뉴욕에 살게 됐고, 이후 찰리의 극단에서만 활동하며 영화배우로서 커리어는 단절됐다. 극단은 박수를 받았지만, 니콜은 그냥 극단 배우일 뿐이었다.


 

이 파일럿이 들어왔어요. LA에서 촬영하고 출연료도 두둑하더라고요. 생명 줄이 나타난 기분이었어요. 그건 나만의 세계였고… 남편 앞에서 부끄러웠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 난 이런 사람이야’, '내가 이 정도라고’. 바보 같긴 하지만 어쨌든 내 거였어요. 난 찰리가 꼭 안아 주며 응원해 주길 바랐어요. (…) 그런데 찰리는 그걸 비웃고 샘을 냈어요. 근데 출연료를 듣고 그걸 극단 예산으로 쓰자는 거예요. 그때 확실히 깨달았죠. 찰리는 날 인정하지 않았어요. 자기와 별개인 독립적 인격체로요.


- 변호사 노라와 대화에서, 니콜

 

 

앞서 찰리가 말한 대로 브루클린의 생활은 정말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행복의 순간은 분명히 있었으리라. 하지만 니콜은 그곳에서 니콜 자신이 될 수 없었다. 맥아더 상을 받은 천재 연출가의 아내. 그리고 그 연출가의 극단에서 연기하는 배우. 늘 수식어는 그런 식이었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잔뜩 받고 있던 참에 자신을 위한 대본이 들어왔다. 그의 이혼 결심은 생의 방향을 바꾸려는 의지와도 같다.


*


당연하게 지나가서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당연하게 잘 돼서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애초부터 안온하고 무던한 결과가 예견되어 있었던 것처럼 당연하게. 분명 누군가의 크고 작은 희생이 그 결과를 만들었음에도 희생의 가치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축소된다. 상대방에게도 잊히고 당사자조차 그 희생이 당연해지고 만다. 비단 '결혼'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삶 전체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관계를 관통하는 패턴이기도 하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알아채고 위로한다면 생각보다 갈등은 쉽게 해결된다. 온통 상대방의 기분과 생각에 관심을 쏟던 처음을 기억해보라. 상대의 작은 배려를 고맙게 여기고 그 고마움에 보답하던 때를. 일주일에 5일을 식사 메뉴로 분투하다가 딱 하루 딱 한 번 마음이 맞았을 때 ‘통했다’며 웃던 마음을. 자기 일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응원하던 때를.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참고

Tibaut &. Kelly (1959). The social psychology of groups. NY: Wiley.

박성덕. (2011). 우리,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 서울: 지식채널.

오기봉. (2013). 인간관계의 이해. 양서원.

이태연. (2014). 인간관계 심리학. 서울: 도서출판 신정.

조창연. (2017). 휴먼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이론. 커뮤니케이션북스.

최광현. (2014). 가족의 발견. 부키.

 

 

[송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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