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엑소시스트(1973) [영화]

글 입력 2021.06.0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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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영화는 우리에게 억압된 것이 표면으로 분출되는 장르다.

 

그래서 호러 영화를 보면, 당대의 어떤 이데올로기로 인해 사람들이 억압받고 그것을 내면화했는지를 알 수 있기도 하다. 여기서 억압된 것들은 주로 우리 마음속의 지하와 같은 무의식의 층위에서 자리하다 의식 세계의 다양한 괴물의 형상으로 나타나 우리의 삶을 위협해 공포를 유발한다.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무의식의 귀환이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억압의 개념과 억압의 대상을 외부로 투사해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타자성’의 개념을 살펴보고 이렇게 타자화된 대상이 내러티브 속에서 어떻게 이항대립으로 구성되고 이야기가 봉합되어 다시금 사회의 안정을 구축해나가는지 신화와 이데올로기 개념을 바탕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 구성원들을 억압하는 것은 과잉억압으로 구분된다. 프로이트가 정의한 과잉억압은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규범으로 우리를 억압하고 옥죄는 것을 말한다. 이데올로기를 따르며 존속하는 속성으로 인해 모든 사회는 어느 정도 과잉 억압적이다. 우리는 사회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 사회의 과잉억압을 내면화시키고 우리 스스로를 그에 종속시킨다. 하지만 억압된 것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무의식에 자리하기 때문에 어딘가로 표출되어야만 한다.

 

이는 꿈으로 나타나거나 혹은 다른 대상에게 우리가 경시하는 것들을 투영시켜 악으로 상정하고 처단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정상성의 범주에 포함되는 우리는 선이며 타자는 악으로 구분되고 사회가 악을 소멸시키고 사회의 질서를 회복해 나가는 다수의 호러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는 한 사회의 신화가 작동하고 있는 지점이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호러 영화 <엑소시스트>는 아이와 반 그리스도를 타자화의 대상으로 삼으며 이를 극복하고 안정을 되찾고자 하는 내러티브 구조를 통해 미국 사회가 지키고자 한 신화,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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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시스트>에서 억압된 것은 어떻게 돌아올까. <엑소시스트>에서 타자화되는 것은 이라크, 여성, 아이, 반그리스도가 된다. 이들은 우리가 사회 권력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타자화시키고 있는 요소들로 이는 우리의 내면에서 억압되어 영화를 통해 공포로 돌아온다.

 

영화 초반부, 이라크의 유적 발굴 현장에서 메린 신부가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여기서 이라크의 모습은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과 쉼 없이 낫을 아래위로 움직이는 인부들의 이미지를 통해 어떤 기괴함을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이라크에 대한 묘사는 서구 사회가 아랍 문화권을 바라보는 시각이 투영된 것으로 마치 불길한 징조, 미신적인 공포가 이라크 자체인 것처럼 그려낸다.

 

메린 신부는 작은 유물을 발견한다. 이 역시 어떤 사악한 기운이 느껴진다. 영화는 메린 신부가 조지타운으로 넘어오면서 악령의 기운 또한 같이 마치 영국으로 넘어온 것처럼 보여주며 여기에 대항하는 것으로 영화는 가톨릭을 위치시킨다.

 

유물을 통해 이라크에서 영국으로 넘어온 아랍의 악령은 어린 여자 아이 리건의 몸에 분하게 된다. 리건은 배우를 직업으로 삼은 크리스의 딸로 촬영을 위해 크리스와 함께 잠시 런던에 거주 중이다. 리건의 엄마가 직업을 가진 바쁜 여성이라는 점, 이혼을 했다는 점 등의 설정은 흥미롭다.

 

직업을 가진 바쁜 여성을 어머니의 이미지로 두고 그런 여성의 딸에게 악령이 쓰이게 된다는 설정은 마치 여성이 자신의 직업을 추구함으로써 가정에 소홀히 했기 때문에, 겉으로 충분해 보여도 딸의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가 그녀에게 죄책감을 떠넘기고 응징하듯 한다.

 

이 죄책감은 그녀에게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고 이것이 어린 아이에게 투영되어 괴물의 형태로 자신에게 공포로 돌아오는 것처럼 영화는 그려내고 있다. 크리스가 끊임없이 의식하는 리건의 부성의 부재는 사회가 부여한 죄책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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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리건을 통해 어린 여자 아이가 악령에 씌어 의사의 뺨을 때리고 성적 욕을 하고, 가톨릭을 표방하는 십자가로 자위를 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며 사회가 인정해 오지 않은 여성 및 아이의 성적 욕구를 표면으로 드러내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어린 아이에게는 반드시 없어야하는 성적 표현과 거친 욕망 등은 사회의 믿음을 반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직면하면서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리건을 악에서 구원해 안전한 사회로 돌려보내는 역할은 메린 신부와 카라스 신부가 담당한다. 두 신부는 엑소시즘을 통해 리건을 악으로부터 구원하고자 자신들의 목숨을 바치기에 이른다. 결국 카라스 신부가 악령을 몸에 받아들인 채로 창문에서 뛰어 내려 죽음을 맞게 되는 모습은 서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주류 종교인 가톨릭에 대한 이상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리건과 그의 엄마는 그리스도교로부터 자신들의 안위를 보장받게 되고 안정을 되찾는다. 그들은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정상성의 범주로 다시 돌아왔다. 안전한 질서가 회복된 것이다. 사악한 외부 문명에서 온 악령은 우리 사회의 주류 종교인 신성한 가톨릭의 힘으로 처치되었으며 선-악의 대립으로부터 가톨릭이라는 선이 승리한 것이다.

 

사회 질서가 회복되는 순간에 그것을 당기는 것은 그리스도이며 처벌당하는 것은 이라크에서 넘어온 사악한 악령이라는 이 이항 대립적 구분은 토마스 샤츠가 언급한 것처럼 수많은 요소들이 배제되고 남은 아주 단순화된 두 요소로서 우리가 속한 사회가 어떻게 정상성과 비정상성을 규정하고 그것을 회복해 사회 질서를 유지시키고자 하는 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해결’의 방식은 영화를 통해 선의 승리로 구현되며 잠시 혼란했지만 다시 안전하다고 확신하는 사회의 믿음이 반영된 신화가 드러나는 지점이 된다.

 

 

[김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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