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새들의 무덤

글 입력 2021.06.0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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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날개의 붉은 새가 그려진 포스터를 보며, 어떤 연극일까 상상해보았다.

 

저 새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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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새들의 무덤>은 고향을 찾은 주인공 오루가 그곳에서 우연히 새끼 새를 만나며 자신의 과거사의 중요했던 순간들 속을 여행하게 되는 일종의 시대극이다.

 

불운한 사고로 딸을 잃은 아버지 오루, 사무치게 보고 싶은 딸을 향한 그리움을 안고 고향을 찾은 오루는 그곳에서 어미 없이 혼자 날갯짓을 하고 있는 새끼 새를 만나게 된다. 새끼 새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던 중, 5살 꼬마였던 그때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 그는 자신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날에 닿는다.

 

1968년, 오루는 자신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에도 삼촌과 마을 사람들이 돈 때문에 싸우는 장면을 목격해야만 했다.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살았던 이웃이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보다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그 현장에서 오루는 반쯤 정신이 나간 듯 칼을 쥐고 돼지의 배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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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13살이 된 오루는 마을에서 친하게 지내던 누나 종숙이 학생운동을 하다 시골로 도망 온 성규와 함께 새섬으로 떠나고자 마을 어른들에게 배를 태워 달라고 조르던 그날은 파도가 매섭게 내리치고 있었다.

 

성규가 경찰에게 잡혀가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던 종숙은 어른들의 만류에도 바다로 나서고 빨갱이라는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자신의 이상을 끝내 실현하지 못한 성규의 울부짖음과 함께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1988년, 우연히 서울에서 판수를 만난 25의 오루는 판수를 도와 허드렛일을 하며 그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하지만 정식 월급을 받고 싶었던 그가 판수에게 월급을 요청하자 평화롭게만 보였던 집안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고 서로의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서울에서 고생 끝에 자수성가한 것처럼 보였던 판수의 재산이 사실은 빈민촌 철거 작업에 앞장선 대가였다는 사실은 고향 마을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주창하던 그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라져있었다. 시대의 파도를 거스를 수 없다는 말로 스스로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판수를 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1997년, 오루는 아내 배손과 봉제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가 악화되어 일감이 줄어들고, 공장의 운영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공장의 압류 절차를 밟기 위해 은행원이 찾아온다.

 

은행원은 오루에게 공임 단가를 낮추고 노조를 만들려는 직원을 해고하면 압류를 보류해 주겠다 제안하고, 배손은 결코 그럴 수는 없다 한사코 오루를 말리지만 이대로 공장의 압류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오루는 갈등한다. 그 순간, 배손의 진통이 시작되고 정신없는 통에 공장은 압류 위기를 직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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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1976, 1980, 1988, 1997, 그리고 2014년. 한국 역사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시대의 흐름은 오루의 삶에도 잊을 수 없는 흔적들을 남겼다.

 

영화 <국제시장>이 생각나는 연극의 시퀀스 구조는 오루라는 인물이 격동의 시대를 살아오며 견뎌야 했을 아픔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인물을 통해 구현되는 역사의 아픔은 관객으로 하여금 더욱 몰입감을 자아내는 효과를 발휘한다.

 

나 또한 관객으로서, 오루의 인생에 묻어있는 땀과 눈물을 함께 흘릴 수 있었다. 다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던 것이 아쉬웠다. 굵직한 사건들이기에, 한두 가지 연관된 사건들에만 초점을 맞췄어도 충분히, 어쩌면 더 깊은 감정을 끌어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연출자님의 의도가 아픔에 머물러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럼에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아가 의도적으로 시대를 나열하며 인물의 기억을 통해 시대를 표현했다는 인터뷰를 통해서 이 같은 구조를 취하신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극을 다 보고 난 후 떠오르는 단어는 '희망'보다는 '위로'였던 나로서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들었던 것 같다.

 

극의 마지막, 잘 날지 못하던 새끼 새를 공중으로 날려보내며 집으로 가야지,라고 말하는 오루의 모습이 참으로 처연하게 느껴졌다. 오루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날갯짓을 멈춘 적 없었다. 하지만 그 날갯짓이 하늘을 향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새에게 하늘을 날지 못한다는 것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매 순간을 하늘 위로 올라가기 위해 날갯짓을 해왔지만, 결코 날아오르지 못했던 오루가 이제는 정말 날아오르겠노라 굳은 다짐을 하는 것 같아 오루의 비행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었다.

 

참 쉽지 않은 삶이다. 하지만 그 삶에도 웃음이 존재한다. 시련은 끝나지 않고 찾아오지만, 그래도 지금 어디냐며 전화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오루 역시, 또 다시 살아갈 것이다. 굳게 다짐했건만 또 다시 비행에 실패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오루의 날갯짓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쟁의 가운데 서 있는 오루를 위로한다. 그런 우리를 위로한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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