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과 영화 '말모이'

글 입력 2021.06.0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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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빅토리아 시대, 대영제국의 부활을 위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정의할 '옥스퍼드 사전 편찬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책임자로 부임한 이는 수십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괴짜 교수 제임스 머리(멜 깁슨). 그는 영어를 쓰는 모든 이들로부터 단어와 예문을 모으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전국에서 편지가 빗발치던 어느 날, 머리는 고전을 풍부하게 인용한 수백 개 예문이 담긴 편지를 발견한다. 보낸 이는 닥터 윌리엄 마이너(숀 펜), 그의 천재적인 능력으로 불가능해 보였던 사전 편찬 작업엔 속도가 붙는다. 하지만 윌리엄이 정신병원에 구금된 미치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는데...

 

*


현존하는 최고의 사전이라 불리는 옥스퍼드 영어사전.


사실 영화를 보기 전 필자에게 옥스퍼드 사전은 사전일 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나 실제 사전의 초본이 나오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이를 완성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지를 영화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영화를 보며 계속하여 우리나라 사전 편찬의 내용을 담은 영화 <말모이>가 생각났다. 실제 보도자료에서도 이번 영화를 영국판 말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프로페서 앤 매드맨>은 실제 빅토리아 시대에 대영제국의 부활을 위해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국에서 진행한 ‘옥스퍼드 사전 편찬 프로젝트’의 비하인드를 다루고 있으며, 영화 <말모이>는 우리말을 모아 조선말 사전을 만들려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대거 옥고를 치렀던 ‘조선어학회’사건을 바탕으로 한 실화기반의 영화다.


그렇기에 두 영화를 자연히 비교하며 볼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영국의 사전과 우리나라의 사전이 어떻게 사전을 제작한다는 큰 틀과 방식에서는 비슷했지만, 많이 부분에서 다른 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리뷰는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 출판기를 담은 프로페서 앤 매드맨과 우리나라 사전의 출판기 말모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위주로 써보고자 한다.


(작성하는 글은 정확한 역사적인 사실보단 두 영화의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하였다는 점을 밝힌다.)

 

 


1. 편지를 통한 단어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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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하는 데 백 평생 걸린다면 백 명이 한 평생에 할 수 있겠죠" -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 중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낫다" - 영화 <말모이> 중

 

 

두 영화의 가장 큰 공통점은 바로 ‘편지’에 있다.

 

20년째 진전이 없는 옥스퍼드 사전 편찬 프로젝트에 구세주로 등장한 머리 교수는 수십 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음을 뽐내며 프로젝트 책임자로 부임한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진척이 없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편지’라는 새롭고도 파격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책 사이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넣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특히 이 편지는 정신 병동에 갇혀 있던 미국 군의관 출신의 미치광이 윌리엄 마이너에까지 전해졌고, 윌리엄의 편지로 인해 approve에 진도가 막혀  난항을 겪던 겪던 머리 교수팀은 큰 도움을 얻으며 사전 편찬을 이어가게 된다.


영화 <말모이> 또한 편지로부터 사전편찬에 큰 도움을 받는다. 조선어학회가 발행하던 잡지 '한글'에 ‘전국의 사투리를 모집합니다’라는 광고를 실었고, 전국에서 편지가 도착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조선어학회의 행보를 응원하는 모든 사람이 편지를 보내왔고, 옛말, 새말, 사투리, 전문어, 고유 명사 등으로 일일이 구분해 가려내어져서 차츰 사전의 형태를 갖추어 나가게 된다.


이처럼 두 영화는 모두 ‘편지’를 통해 한 사람이 아닌 다수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2. 범죄자와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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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의 또 다른 공통점은 범죄자와의 우정이다.


영화 <말모이>에서는 전과자 출신의 까막눈 판수와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과의 관계가 극의 케미를 이끌어간다면, 프로페서 앤 매드맨은 옥스퍼드 사전 편찬을 맡은 머리 교수와 미국 군의관 출신 살인자 윌리엄의 우정을 그려냈다. 군의관이었지만 탈영한 군인의 얼굴에 낙인을 찍은 죄책감으로 환청과 환상을 보다 민간인을 죽이게 된 윌리엄은 감옥에서 머리의 편지를 마주하고 잠시나마 정신적인 고통에서 구원을 받는다.


이 두 관계는 서로 다른 출신, 성격, 배경 등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우정을 나누고, ‘사전’이라는 목표를 향해 함께 힘을 모아 나가는 데서 공통점을 가진다.


사실 두 사람의 우정을 다룬 점에서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에 조금은 아쉬움을 느꼈다. 제목에서부터 주인공 두 사람을 지칭하고 있기에 이 둘의 우정을 담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옥스퍼드 사전 편찬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영화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두 사람의 우정이 주가 되어 사전 편찬에 대한 집중이 조금은 흐려지게 되었다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전 편찬’을 통해 인생 최대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머리박사와 정신적인 고통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윌리엄의 모습을 보며 이 둘의 다른 상황이 어떻게 사전 편찬을 이끌어나가며, 각자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느낄 수 있어 영화의 마지막이 더욱 감동스럽게 다가왔음은 부정할 수 없다.

 

 


3. 말의 의미



두 나라의 사전은 나라를 위해 제작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두 나라의 '나라를 위해'는 다른 목적을 가진다.


빅토리아시대의 영국은 대영제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그리고 한국은 우리나라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사전을 제작한다. 한 국가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이른 시기에 국가의 힘을 위해 사전편찬을 시작했지만,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사전을 편찬하기 시작한다. 두 나라의 서로 다른 목적을 상기하면 씁쓸하면서도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 두 나라의 사전편찬 과정을 보며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어떻게 사전을 통해 나라의 영광을 되찾고, 어떻게 말을 통해 나라를 지킬 수 있을까?

 

 

"모든 단어의 역사를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단어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선 단어의 탄생부터 찾아야 합니다. 단어는 처음으로 탄생한 후 세월을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내려옵니다. 단어의 뜻은 더해지고 덜어지면서 원래의 의미에서 미묘하게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흔적을 남기죠. 드넓은 문학 작품의 세계에 남아 있습니다. 우린 단어들을 추격하고 사냥할 것입니다. 모든 단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 세기의 문헌에서 찾아내려면 존재하는 모든 작품을 읽어야만 합니다."

 

-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 중

 

 

"말은 곧 정신이다. 말과 글이라는 게 민족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입니다"

"글자가 모이면 단어가 되고, 단어가 모이면 말이 되며, 말이 모이면 정신이 된다."

 

- 영화 <말모이> 중

 


영화를 보며 의사소통을 위해 당연시 사용되는 이 '말'이 사실은 엄청난 힘과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를 알았기에 영국에서는 사전을 편찬하여 과거의 영광을 찾으려 했을 것이며, 우리나라는 사전을 통해 나라를 되찾으려 했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이 단어가 어디서 왔는지, 정확히 어떤 정의를 가지는지 잘 생각해보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쓰는 이 말과 단어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이지 않을까.


최근 한 인스타그램 웹툰을 통해 영어엔 ‘나라 잃은 슬픔’이라는 표현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미국은 나라를 잃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만화를 읽으며 우리가 평소 자연스럽게 쓰던 이 표현이 사실은 슬픈 과거를 품고 있음을 다시금 깨달으며 단어는 탄생 후 세월을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내려온다는 머리 박사의 말이 떠올랐다.


이처럼 말에는 역사와 시대가 담겼다. 영화 말모이의 대사처럼 글자가 모여 단어가 되었고, 단어가 모이면 말이 되었으며, 말이 모여 정신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와 말은 굽이굽이 긴 길을 걸어와 우리의 정신을 담는다.


*


아마도 사전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완벽한 사전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기에 새로운 말은 계속 태어날 것이고, 쓰이지 않는 단어는 사라질 것이다. 사전은 우리의 현재를 계속하여 기록하며 새로운 과거를, 새로운 역사를 기록해갈 것이다. 사전 속에는 인류의 시간이 우리의 걸음과 함께 걸어가고 있고 있음을 깨닫는다. 영화는 휴머니즘적인 내용이 강조되었지만, 말의 시작과 시간을 알 수 있게 해준데 사전의 역할이 엄청남을 영화를 통해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다.

 

 

[김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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