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가 뭐래도 자신이 명랑한 사람임을 잊지 않고 있다면, - 명랑한 은둔자 [도서]

'우리의 나라'에서 외톨이 은둔자로 살아남기
글 입력 2021.06.06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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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글쓰기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는 날이 있다. 그럴 때, 타인의 글을 읽는 것만큼 글쓰기의 욕구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오피니언을 주욱 훑어보면, 지쳐 있을 때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글을 읽으며 쓰고자 하는 욕구를 되찾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 느껴진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으며 기고한 몽골 여행기가 그랬고, <아무튼, 여름>을 읽으며 써 내려간 여름에 대한 단상이 그랬다. 뱉어내지 않고는 못 배기겠는 순간에 적어낸 글들. 그런 글들에는 당시의 퇴색되지 않은 산뜻한 기쁨이 묻어나는 것 같아서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쓰인 글들을 좋아한다.

 

그렇게 누군가의 글을 읽다가 글을 쓰게 되면, 종종 내 문체에 그들의 숨결이 조금은 닿아있음을 느낀다. 어떤 글은 조금 더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하고, 위트 있는 작가의 글은 웃기지도 않고 쓸데도 없는 나의 유머 감각을 호출 한다. 또, 어떤 글은 지나치게 감성에 젖어 들게 만든다. 종종 나는 내가 쓴 글을 읽다가 화들짝 놀라서 재빨리 화면을 끄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는 멍하니 중얼거린다. “나 저거… 새벽에 썼나?”

 

그리고 어떤 글은, 내게 조금은 솔직해져도 된다고 말을 건다.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가 그렇다. 지나치게 솔직한 이들의 글을 보면 어느 때는 죄책감이 든다. 이 사람은 있는 대로 자신의 밑바닥까지 드러내며 용기를 주는데, 나는 뭐가 그렇게 두렵다고 글 속에서조차 나를 드러내지 않으려 전전긍긍하나, 하는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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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라인 냅은 지적이고 유려한 회고록 성격의 에세이를 쓴 작가이다. 20년 가까이 저널리스트로 살며 글을 썼지만, 폐암으로 인해 2002년에 4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명랑한 은둔자>는 냅이 30세부터 42세까지 쓴 에세이들을 묶어낸 책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혼자 살고 혼자 일하며, 가족과 친구와 개와 소중한 관계를 맺으며 자기 앞의 고독을 외면하지 않았던 삶을 이야기한다.

 

 

 

명랑한 은둔자


 

근래 들어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기말고사기간인 데다가 하루도 제대로 쉰 적이 없이 벌인 일들을 수습하기에 바빴다. 그런 와중에도 친구들과의 약속은 부지런히 잡았다. 만남에 대한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동안은 여가를 즐길 때마다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에너지를 얻는 삶을 살아왔고, 늘 그래왔으니까, ‘이제는 한번 만날 때가 되었군.’ 하며 그들을 만났던 것 같다. 깊고 좁은 관계를 추구해왔기에 언제 만나도 불편하지 않은 친구들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 내내 피곤했다. 주변인들은 대부분 내게 다정한 사람들이었고 그래서인지 고마운 일들이 자주 생겼지만, 고마움을 표현할 기운조차 없어서 속상했다. 연락하기 위해 들어 올린 휴대폰의 무게가 천근만근으로 느껴졌다. 같이 있을 때면 진로에 대한 갖가지 고민들 때문에 푹푹 나오는 한숨을 숨기는 것에 종일 신경을 쏟았다. 억지로 분위기를 띄우느라 더 쉽게 지쳤다.

 

몇 년 만이었다. 인간관계에, 일상생활을 하는 것에 이 정도로 지치고 회의감이 든 것이. 사람을 좋아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탓에, 방학 때마다 나의 존재를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곤 했었다. 그곳에서 나는 사회적으로 부여된, 때로는 나를 옥죄여오기도 했던 여러 가지 정체성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를 누렸다. 정기적으로 해방된 시간은 지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게 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로는 어딘가에서 그렇게 오래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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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어 든 책이 이 책이었다.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고 싶지 않을 때, 고독을 즐기고는 싶지만 고립되고 싶지는 않을 때, 쉽게 과몰입하고 무절제한 나를 이해받고 싶을 때. 냅의 글을 읽으면 공허한 마음이 어느 정도는 채워졌다. 종이책 하나가 뭐라고, 세상과 연결되어있는 가느다란 끈처럼 느껴졌다. 가볍고 진지한 태도로 시종일관 자신을 냉철하게 분석하며, 유쾌하게 그의 유약함을 자조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홀로 걸어가며 속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나는, ‘우리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외톨이 은둔자다.

 

 

“‘우리’라는 단어. 그것은 꽤 무거운 단어다.” 그녀는 우리의 세계에서 홀로 명랑하게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냅은 자신을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러한 숫기 없는 성격에 대해 오랜 시간 열등감에 시달렸다. 그러던 보통의 어느 날, 그녀에게 단순한 사실적 진술 하나가 완전한 문장의 형태로 다가온다.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그 마술적이고 변혁적인 순간을 경험한 냅은, 더는 혼자인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다. 타인과의 관계로만 그 자신을 정의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생활의 속도와 리듬에서 안도한다. 자신을 ‘38살의 독신 여성’,‘외톨이’,‘결혼해야 하는 나이’로 정의 내리지 않고, ‘명랑하게’ 혼자인 삶을 만끽하고 긍정하며 나아간다.

 

자신의 약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TV 앞으로 경쾌한 발걸음을 내딛는 그녀를 보면서 왜 나는 안도감을 느꼈을까. ‘우리’라는 단어 앞에서, 외계인이 되어버린 것 같은 순간. 부적응자가 되어버린 것 같은 순간이 내게도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쉼 없이 연애를 하는 친구들 앞에서는, 종종 연애라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는 이유를 해명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렸다. 누군가 묻지 않아도 스스로 의문이 들기도 했다. 자의적으로 비연애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그보다 많은 이들이 진정한 짝을 만나기를 희망하고, 상대방과 함께하고 있으니까. 아직도 연애와 결혼은 왜 하냐고 묻지는 않지만, 왜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것 중 하나이니까.

 

또한, 나는 혼자이기 싫어 함께여야만 하는 관계는 불편한 사람이었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공을 들이고 천천히 알아가는 순간이 좋았고,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은 5년, 10년 동안 곁에 남아서 축적된 시간만큼이나 깊이 있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주었다. 사회생활을 위한 어느 정도의 교류나 소통이 아닌, 홀로 떠돌지 않기 위해 불편한 순간들을 감수하며 ‘우리’의 세계 안에 존재해야만 하는 의무를 지기가 싫었다. 그것이 성향에 맞으면야 좋겠지만, 집단의 인식과 시선 때문에 얽매이는 것은 시간과 감정 소모가 너무 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냥 단순한 성향 차이일 뿐인데, 내면에서 장엄한 사연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변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외향성의 지표가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있다면, 함께 하는 모든 것들을 좋아해야지. 인연에 고마워해야지. 왜 나는 이렇게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혼자 있기를 택하지? 그래, 뭐, 세상에는 사람을 좋아해도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거야. 과거에는 그렇게 택한 것이 고독을 즐기는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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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혼자 있는 시간에 매우 만족했다. 나의 개성으로 가득한 방에서 나만의 리듬을 즐기며 산다는 것. 안전하고 확실한 행복이었다. ‘인간관계는 역시 피로하고 지쳐. 저녁에는 양키 캔들을 켜놓고 오래도록 전해져온 중고 LP를 켜두고 속세와의 완벽한 단절을 느낄 거야. 유행가와 멀어져 어제의 세계를 탐험할 거야. 나의 노래를 부를 거야.’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 사실 그전까지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 같다. 더는 고독을 즐기고 있지 않았고, 내가 쳐둔 울타리에 스스로 갇히기 시작했다. 고립이 시작된 것이다.

 

 

-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쬐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고립은 고독의 사악한 쌍둥이, 아니면 못된 친척이다. 그것은 예고도 없이 들이닥쳐서 우리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 ‘네 삶에 다른 사람들은 별로 필요 없어, 너도 알잖아. 넌 혼자로도 완벽하게 괜찮아.’ 이것은 자족감으로 가장한 두려움의 목소리, 독립성으로 가장한 고립의 충동이다.

 

 

냅은 고독과 고립의 경계를 유지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사회적 기술은 근육과도 같아서 쉽게 위축된다며, 고독은 종종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두고 즐길 때 가장 흡족하고 유익하다고 말한다. 무언가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이때의 고립되었던 기억 탓에, 나는 나를 무작정 사교 파티의 장에만 밀어 넣었었다. ‘우리의 나라’의 문을 두드리면서도, 급격히 밀려오는 피로도를 조절하지 못했다. 명랑하게 은둔하는 삶 또한 연습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통찰은 신빙성이 느껴진다. 프라이버시와 교유의 균형을 달성하는 것에 있어 37세의 나이에 이제 겨우 시작한 수준이라며, 자신에게도 망설임 없는 평가를 하는 모습에, 스스로를 한심하고 궤도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며 자책하려던 손길을 슬그머니 뒤로 하게 되었다. 나를 아는 것은 평생의 숙제다. 20대 중반에도, 30대 후반에도, 적절한 균형을 찾는 삶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연습과 실패가 필요하다. 일상은 변화할 것이며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다.

 

명랑한 삶을 살고자 한다. 고독과 고립의 아스라한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며, 프라이버시와 교유의 균형을 달성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고독을 직시하며 자의로 동굴 밖을 벗어나기를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 과정은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냅의 글이 있다. 대단히 사적인 경험들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나열하고, 자신을 냉철하게 관찰하는 냅의 시선은 나에게도 투영될 수 있을 것이다.

 

캐럴라인 냅은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Drinking>에서 알코올 중독의 삶을, <세상은 왜 날씬한 여자를 원하는가 Appetites>에서 다이어트 강박증과 섭식장애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명랑한 은둔자>에서 역시 냅은 중독과 그것에서 벗어난 변화의 순간들을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로 다룬다. 스스로를 무절제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나를 잘 다스리기까지 고군분투해온 사람으로서 그녀의 글은 경험 많은 든든한 언니의 말처럼 느껴졌다. 홀로인 삶에 관한 이야기를 제외하고도, 중독과 변화, 사랑과 우정 등 다양한 키워드로 분류된 글들은 한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보는 듯한 생생함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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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수줍음이 많고, 가족에 대해 불가해한 죄책감이 어렴풋이 있고, 우정을 존중하고, 최소한의 친구들과 깊은 우정을 특히나 좋아하고, 자신의 어두운 면과 과잉된 면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걸 잘 다스릴 수 있게 되기까지 방기와 고투를 반복해왔다면, 가끔은 자신이 미친 것은 아닐까 흠칫 놀라고, 평범함을 지극히 사랑하고,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에 자기 경험을 겹쳐두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면, 누가 알아주든 아니든, 자신이 명랑한 사람임을 잊지 않고 있다면.

 

-김소연 시인의 추천사

 

 

책을 읽으면서 선물하고 싶은 친구 두어 명의 얼굴이 뇌리에 스쳤다. 내 세계는 화려한 별나라도 아니고, 왁자지껄하지도 않지만, 좋은 글을 읽으면 순식간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히는 게으르고 무기력한 순간들에 잠식되다가도, 고투를 반복하며 일어서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어느 때이든지 내 두 발로 경쾌하게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익숙함과 안도감을 느낀 이들이 있다면, 도서 <명랑한 은둔자>를 조심스레 추천한다. 정직하게 글을 쓰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며, 당신이 끈끈한 우정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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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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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진금미
    • <명랑한 은둔자>는 제가 정말 사랑하는 에세이 책이어서 헤드라인에 뜨자마자 기쁜 마음으로 글을 읽었는데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네요! 책에 대해 쓰신 글 모든 구절이 공감돼요. 저에게도 이 책은 고독을 사랑하게 되면서 우정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거든요. 저는 냅이 자신의 고통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본인의 경험이 사회에서 어떤 맥락 위에 위치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통찰력이 존경스러웠어요. 그래서 절절한 내용이 많았지만 절망스럽기는커녕 보다 마음이 가벼워졌던 기억이 떠올라요. 좋아하는 책에 대해 멋진 글을 써주셔서 감사해요. 에디터님의 글을 읽으니 <명랑한 은둔자> 같은 책은 오랫동안 벗삼으면서 외로움에 속아 나 자신을 믿지 못할 때마다 주기적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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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세나
    • 2021.06.17 09:3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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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금미고독이 고립으로 넘어가는 듯한 시점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되면, 냅의 얼음 같이 냉정한 시선과 통찰력으로 저를 다시 살필 수 있게 되더라구요. 저야말로 책에 대한 감상과 함께 정성스런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명랑한 은둔자>는 그 동안에도 애정을 담고 읽던 책인데, 필진 님의 온기 가득한 댓글 덕분에 더욱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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