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떠나보내는 마음

다른 과 교수님의 정년 퇴직을 기념하는 일
글 입력 2021.06.0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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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자취를 감추는 것을 실감하게 됐을 때의 기분이 어땠는지, 그 기분을 언어로 표현하고자 하면 가장 적합한 단어는 무엇이 있을지 몇 번을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 아리송한 기분을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으며, 그렇다면 그 상황에 딱 어울릴만한 감정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까.

 

이번 학기는 내게 꽤 의미가 남다른 학기다. 1년의 휴학을 끝내고 다시 시작한 학기임과 동시에 팬데믹에 직면하게 된 후 완전히 바뀌어버린 강의 시스템을 직접 접하게 된 학기이기도 하다. 어수선했던 3월을 지나 이제 곧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시점, 얼마 전에 완전히 새로운 감정을 직면했었다.

 

나는 연계 전공을 수강하고 있다. 한국어문학과 연극학을 아우르는 연계 전공 과정을 밟고 있어, 자연히 내 시간표는 한국어문학과의 수업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게 된 지 꽤 됐다. 소설에 막 관심을 두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국문학 수업을 듣게 되었고, 본래 전공 수업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문학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가 붙어 자부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수강했다.

 

이번 학기에는 독특하게 한국어문학과의 전공 심화 수업을 들었다. 쉽지 않을 과목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배우고자 하는 의지만으로 수강했던 수업이었다. 예상했듯 쉽지 않았다.  '한국문학사'라는 수업 명처럼 단군신화를 거쳐 삼국, 조선까지 길고 긴 우리의 역사 속에서 늘 자리 잡고 있던 문학의 흐름을 배우는 수업이라 한순간도 놓쳐서는 안 되는 수업이었기에, 한 학기 내내 그 과목에 투자했던 시간이 제일 많았을 만큼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인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난이도가 높았던 커리큘럼이나, 쉽지 않은 수업 내용 등도 인상적이었지만 교수님께서 수업을 대하는 태도가 제일 인상 깊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과 대면 수업을 병행하는 학교 운영 방침에 따라 대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갈수록 줄어들었지만, 교수님은 몇 안 되는 수강생들에게 늘 '잘하고 있다', '고생이 많다.' 등의 독려를 끊임없이 해 주셨고, 매주 내려주시는 과제를 한 번도 빠짐 없이 피드백해 주시며 어떤 부분의 보완이 필요한지 꼼꼼하게 살펴주셨다.

 

또한 가끔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께서는 타과생인 내게 수업이 어땠는지 여쭤보시거나 과제를 열심히 하고 있다며 칭찬해주셨던 기억, 수업 시간에 눈을 맞추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 등이 몽글하게 피어올라 종강을 준비하고 있을 때쯤, 어제 마지막 수업에서 교수님의 정년퇴직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수업의 끄트머리에 30년 교직 생활의 마무리가 이번 학기였고, 지금까지 힘든 과제와 수업을 잘 따라와 줘서 고마웠다는 말씀을 덧붙이시다가, 현실이 어렵고 힘들어도 자기 자신을 불행한 사람으로 여기지 말라며, 자기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끝으로 수업을 마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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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고서는 대면 출석을 한 학생들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연구해 온 고전문학을 집대성한 저서를 기념으로 주시겠다며, 수강생들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적어 직접 건네주셨다. 이 책이 어떤 의미를 가진 책인지 알기에 책을 건네받고 치미는 감정을 죽이느라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연구실에서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배웅하셨을 때 환히 웃으셨던 모습을 끝으로 한국문학사 수업은 종강을 맞았다.

 

나는 감정에 둔한 편이다. 일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어떤 것이 행복인지, 어떤 것이 슬픔인지 헤아리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런데 6월 2일의 그 감정은 왜 계속해서 생각이 나는지, 왜 생각만 해도 가슴이 뻣뻣하고 아릿해지는지, 이 마음을 한 단어로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2학년이 되고 해당 교수님의 수업을 한 번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지금처럼 학업에 대한 열의도 없었던 상태였고, 난이도가 높은 수업에 대해 괜스레 반감이 있었던 터라 매주 쏟아지는 과제에 불만을 품고 학교에 다녔던 기억이 난다.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왜 교수님께서 매주 왜 그때 고전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하고, 이번 수업에서도 국문학의 역사를 담은 저서를 요약하는 과제를 주셨던 건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교수님의 피드백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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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본인의 수업을 통해 진심으로 배워갔으면 좋겠는 마음. 그 과정이 힘들고, 그 결과가 눈에 훤히 보이지 않더라도 과정에 보탠 노력이 언젠가는 발현될 것이라는 믿음. 헛된 노력이 아닐 거라는 확신. 그 믿음대로 내 과제가 갈수록 개선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늘 감정에 관해서 서술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던 터라, 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도 이 감정을 먹먹하다고 해야 할지, 아쉽다고 해야 할지 표현하기가 버겁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배웅해주셨던 교수님의 얼굴이 아직까지도 안 잊히는 것도 수업에 대한 감사함 때문인지,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교수님의 입장에서 학생들을 바라봤을 때의 교수님이 어렴풋이 느끼셨을 마음은 어땠을지 가히 추측해본다. 30년을 지키고 있던 곳에서 떠나는 마음, 본인의 연구를 총정리한 책을 직접 선물해주시는 마음, 제자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 이 감정을 절실하게 느껴보지 못한 터라 내가 표현 하는데는 한계가 있지만, 30년의 세월을 두고 떠나야 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굳이 느껴보지 않아도 '30년'이라는 표현만으로 느낄 수 있는 무거움이 있으니까.

 

다음 학기부터 교수님은 안 계시겠지만, 교수님의 흔적은 내게 오래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수님을 통해 얻었던 배움, 교수님께서 직접 주신 저서, 남겨주신 피드백 등 나를 향했던 따스한 말들이 언제나 나를 더 배우고 싶게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렇게 이별을 포장해야겠다. 못내 아쉽고 서글프지만 그 사람이 남긴 흔적을 통해 내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는 것으로. 마지막으로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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