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진실은 언제나 불편하다 - #위왓치유 [영화]

그래서 기꺼이 택한다.
글 입력 2021.06.0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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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연결이 단절된 비대면 시대에서 콘텐츠가 얻는 힘은 더욱 커진다. 자극적이고, 유쾌하고, 재밌고, 즐겁고, 감동을 주는 스토리텔링에 특히 관심이 쏠린다. 끔찍한 일에 대한 분노와 공포는 길어야 한두 달이지만, 밈(meme)은 오래, 그리고 쉽게 사람들 입에 오른다. 이렇듯 사람은 기본적으로 ‘좋은’ 감정을 선호한다. 당연하다. 충격적으로 나쁜 일은 생각을 나 자신, 그리고 사회 전체를 아프게 한다.


이 맥락에서 ‘불편한 진실’이라는 말이 탄생한 게 아닌가 싶다. 아프고, 괴롭고, 슬픈 일을 외면하지 않는 건 인간의 도리라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눈길을 주고 싶지 않은 거다. 진실 앞에 ‘불편함’을 붙이면, 이 비겁한 마음을 감추기 쉽다. 불편함은 누구나 피하고 싶은 상태 아닌가. 그러니 어느 정도 언급하고, 안타까워하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만한 사안이 되는 거다. 말 그대로, 불편하니까.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불편하다. 쉽지 않고, 재미도 없고, 에너지가 끝없이 소모된다. 그래서 우리는 잠깐 들끓었다가 금세 흩어진다. 물론 종일 세상의 나쁜 소식만 접하며 모든 피해자의 마음을 대리로 느끼며 살아가는 게 옳다는 건 아니다. 사실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불편하다는 불평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는 거다.


세상엔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사건/사고 중에서 오늘은 디지털 성범죄를 화두에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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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분홍빛이 깔린 따스한 포스터. 촬영하는 쪽과 모니터링과 지시를 담당하는 쪽이 나누어져 있다. 그러니까, 배우와 제작진 같다. 무슨 촬영일까. 위쪽 분홍색 말풍선을 읽어본다. 10일 동안 20대 배우 세 명이 페이크 계정을 운영하고, 2천 명이 넘는 자가 ‘덫에 걸린다’.


처음 보았을 때 이 포스터가 표하는 바가 불분명하다고 느꼈다. 먼저 ‘디지털 성범죄자 검거 프로젝트’라는 글자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또, 가해자들이 덫에 걸렸다는 표현은 최종본을 컨펌 하기 전에 한 번 더 검토했어야 한다. 덫에 걸리는 건 12살을 연기하는 배우들이다. 현실에서는 어린 여자아이들이겠다.


그러나 팸플릿을 비롯한 책자는 사려 깊었다. 영화의 탄생 배경, 배우와 감독 인터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간단한 명명과 피해 지원 방법을 제시한 것까지. 여태 보아온 영화 팸플릿 중에서 가장 알차다고 느꼈다. 그럼 이제 현실을 담은 리얼 다큐멘터리 영화, #위왓치유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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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세트장. 세 명의 여성 배우. 세 개의 가짜 계정. 성과학자, 변호사, 심리학자 등 전문가의 의견 아래 진행된 실험 프로젝트. 앳된 얼굴의 배우들은 12살인 것처럼 연기하며 온라인 세상에 프로필 사진을 올리고, 계정을 열어두었다. 그러자마자 쏟아지는 메시지와 연락들.


배우들은 엄격한 지침에 맞춰 행동했다. 먼저 연락하지 않고, 의도가 뻔한 질문에 ‘모르겠다’는 답으로 응하고, 자신이 12살임을 강조하고, 프로젝트 진행 동안 전문가의 심리 상담을 받는 등 열 가지 남짓한 행동강령이었다. 아이들에게 연락을 취한 이들은 다양했다. 국적도, 인종도, 나이도. 하지만 요구하는 것이나 그 눈빛은 똑같았다.


자신의 성기를 보내고, 포르노 영상을 보내고, 성희롱하고, 영상 통화 장면을 캡처한다. 왜 찍느냐는 물음에 한결같은 답을 보냈다. 그냥, 예뻐서. 얼굴 일부를 가려도 그 번들거리는 눈은 숨겨지지 않았다.


이상했다. 어떻게 자신의 성기 사진이나 자위 영상을 당당하게 보낼 수 있을까. 자신은 아이의 사진을 마음대로 찍고 저장해두니 알 것이다. 인터넷에 무언가를 올리면 순식간에 퍼질 수 있음을. 그런데 왜 자신의 얼굴과 성기는 세상에 퍼져도 괜찮다는 듯 당당할까.


세상의 지탄이 무섭지도 않은가? 무서울 게 없다. 남성의 성기 사진은 일부러 찾아보려 하지 않는다. 도촬된 사진이라면, 가해자를 탓하지 피해자를 탓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 착취 범죄의 피해자 여성은, 온갖 손가락질을 받는다. ‘즐긴 거 아니냐, 원해서 한 거 아니냐, 그러게 왜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에 응했냐.’


사람은 긍정적인 경험보다 부정적인 것을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 성범죄나 성 착취 범죄가 공론화되었을 때, 피해 사실보다 피해자의 순수성 증명에 이목이 쏠린다. 그러니 아이들은 거짓으로 점철된 요구와 위협에 응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물을 테니까.


세상이 달라졌다 말하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N번 방 사건의 반응도 똑같았다. 딱 봐도 이상한 조건인데 그런 말에 따른 피해자가 이상하다고. 이상한 건 세상이지, 피해자가 아니다. 범죄를 저지른 쪽의 잘못이지, 피해자가 된 게 잘못이지 않은가. 당연히 고개를 끄덕일 이 말이 현실에서 통하지 않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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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디지털 성범죄 ‘예방’이라는 말로,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교육한다. 조심해라, 이런 건 하면 안 된다, 이런 일이 생기면 여기에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아쉽게도, 감독 중 한 명인 비트 클루삭의 인터뷰를 보면 그의 기획방향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보호’는 임시방편이다. 문제의 뿌리를 뽑으면 이후의 논의는 필요가 없다.


이런 맥락에서 다큐멘터리에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탄생했다고 본다. 배우가 며칠째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자들과 대화하다가 처음으로 ‘멀쩡한’ 사람이 등장했다. 얼굴을 드리운 블러처리가 사라질 때부터 관람객은 그의 ‘다름’을 예견했다. 배우의 눈물이 세상에도 희망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했다.


세상은 마냥 썩어 문드러지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나도 동감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대단한 게 아니라, 일반인의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이름과 얼굴을 널리 퍼뜨리며 그의 ‘선함’을 전시할 필요가 있었을까. 차라리 그 통화 이후 배우들이 나눌 대화가 더 의미 있는 담론을 만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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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세부 방향에는 아쉬움이 남지만, 영화의 취지는 공감했다. 아시아의 나라와 동유럽의 나라의 공통점이 이리도 많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 영화는 먼 나라의 이야기이지만 한국에서 발생하는 범죄 패턴과 똑같다는 사실이 가장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겼다. 어디서나 피해자가 겪는 수모는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진실을 다시 마주하니 새삼 불편했고, 불쾌했다. 그러나 이 불편함은 무뎌진 감각을 깨운다. 디지털 성범죄 근절은 아직 몇 걸음밖에 내딛지 못했다. 리셋과 추적단 불꽃의 움직임을, 우리는 계속 함께해야 한다.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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