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켜보는 것은 당신이 아닌 우리다. - #위왓치유

당신이 절대 걸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도 결국 당신은 우리에게 걸릴 것이다.
글 입력 2021.06.0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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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촬영장 안에 각각 12살의 방으로 공들여 꾸며진 세 개의 세트장이 있다. 그 세트장 안에서 세 명의 20대 여성 배우들은 12살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아동복을 입고,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표정으로 모니터 안의 자신의 12살 페이스북 계정을 본다. 친구들과 같이 놀고 있는 모습, 생일케이크 등이 올려진 그들의 계정은 지극히 평범하다. 세트장 안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이 12살의 것들이었다. 테디베어 인형, 분홍색 아동복, 바흐의 피아노곡, 친구들과의 웃음소리.


그들은 그곳에서 페이스북 계정 메세지로 성기 사진을 보내는 2,458명의 성인 성범죄자들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중 21명의 성범죄자들을 대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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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성이 좋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실제로 접근성이 높다고 이야기되는 대부분의 상황은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만약 운동 등 평소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무언가를 하기로 간신히 마음먹었는데, 접근성이 높으면 출발하기 전부터 기운이 빠질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성의 긍정적인 의미는 어디까지나 성숙한 대상과 건전한 공간을 대상으로 했을 때 한정된다.

 

미성숙한 존재들은 보호가 필요하다.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가 세워질 무렵, 세상을 어지럽게 느낄 무렵이다. 사소한 것에 호기심을 갖게 되고, 작은 것도 크게 어려운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호기심과 시련은 절제되지 않은 행동으로까지 이어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미성숙한 존재란 그런 존재니까.


하지만 이런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그 미성숙함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성욕은 인터넷 세상 속에서 지저분하고 더러운 방식으로 이제 막 12살이 된 소년·소녀들에게 접근한다. 순식간에 그들의 삶에 파고들어 죄책감과 두려움, 미성숙함을 이용해 그들에게 성적인 범죄를 저지른다. '접근성이 좋은' 인터넷 세상은 이렇게 미성년자들을 향한 성범죄자들의 범죄의 장이 되었다.


'#위왓치유'는 인터넷 성범죄를 추적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담은 체코의 다큐멘터리다. 변호사, 성범죄전문가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자문을 실시간으로 들으며 세 명의 20대 여성 배우들은 감쪽같이 12살을 연기했고, 그렇게 2,458명의 성범죄자를 마주했다. 배우들에게는 성범죄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몇 개의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이야기했다. 그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본질적이었던 가이드라인은, '일부러 남성들을 도발하거나 성적인 내용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도록 하지 않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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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그렇다. 어떤 12살의 소년·소녀들이 먼저 성적인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낸다는 것인가? 그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내용으로 대화가 이끌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일반적인 12살의 소년·소녀들이 그러하듯. 그러나 이런 가이드라인 속에서 배우들이 연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성범죄자들은 12살의 것으로 꾸민 SNS 페이크 계정에서 다양한 성기가 노출된 사진이나 성적인 이야기들을 건넸다.


그곳에는 어떠한 인공적인 연출도 없었다. 일부러 남자 배우들을 고용하지도 않았다. 20대 배우들의 꾸며진 모습을 보고 12살의 소녀들이라 생각하고 성적인 연락을 취한 모두가 정상적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일반인이었다. 우리 일상 속에서 쉽게 볼 수 있을 법한 2,458명의 성인 남성들 말이다. 심지어 그중 한 사람은 촬영 스태프가 사적으로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어린이 캠프'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에 촬영장 곳곳에서 탄식이 나왔다.


성범죄자들이 미성년자들에게 어떻게 성범죄를 저지르는지 그 과정을 알기 위해 배우들은 12살 소녀의 모습으로 그들과 지속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가슴을 보여주라'는 등의 요구사항을 듣고, 포르노 영상을 받고, 나체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요구를 들었다. 12살의 소녀들이 싫다고 해도 억지로 요구했고, 때로는 자신의 불행은 나체사진을 안 보냈기 때문이라는 터무니없는 말까지 하면서 겁먹게 했다. 끊임없는 요구 속에서 촬영 스태프들은 다른 모델의 나체 사진과 배우들의 얼굴을 합성해 진짜 그들의 나체 사진인 것처럼 성범죄자들에게 전송했다. 이후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급격히 돌변했다. '자신만 간직하고 있겠다.', '나체 사진만 보내주면 더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던 그들은 순식간에 페이크 사진을 갖고 12살 소녀들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다른 영상과 사진, 혹은 실제로의 만남을 요구했고, 그러지 않을 시 보내준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했다.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 모두 퍼뜨리겠다고 했다. 그렇게 12살의 소녀들은 21명의 남성을 직접 대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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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범죄자들과 연락을 취하게 되는 것은 미성년자들의 잘못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그들은 먼저 도발적인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고, 계정도 그저 평범하게 '친구들과의 사진'들만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범죄자들은 접근했으며, 죄책감과 호기심, 순수함을 이용해 다양하게 12살의 소녀들을 꾀어냈다. 그 나이대의 어린아이들이 호기심과 순수함을 가진 것은 절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또한 당혹감 속에서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음은 당연하다.



2. 미성년자들을 인터넷 성범죄로부터 지키는 방법은 SNS 등의 인터넷 사용을 금하는 것일까?


절대 아니다. SNS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이 본질적인 잘못이 아니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고, SNS는 미성년자뿐만 아닌 모든 사람의 삶에 녹아들게 되었다. 특히 교우관계를 중요시하는 소년기에 SNS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3. 그렇다면 미성년자들을 성범죄로부터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영화 속에서 협박하던 한 성범죄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12살의 소녀를 연기하는 배우에게 "네 나체 사진을 부모님께 보낼 거야"라고 협박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가장 의지하고 믿을 수 있어야 하는 부모님들이, 하나의 협박 수단이 되었다.


세상에는 성범죄자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다양하게 미성년자와 접촉한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때 그들과 접촉하는 것은 절대 미성년자들의 잘못이 아니며, 그들은 언제든 벗어날 수 있고, 그 누구도 그들을 질책하지 않을 것이고, 문제가 있을 때 어른들에게 이야기하면 해결책을 찾아줄 것이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해 '현실'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고 혹시나 성범죄를 당해도 빠져나올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진정한 방법이 아닐까.



4. 지켜보고 있는 것은 당신이 아닌 우리다. #위왓치유


배우들을 나체사진으로 협박하며 성범죄자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이 12살의 소녀는 항상 내가 지켜보고 있다. 그들의 나체사진까지 가지고 있으니 이제 이들은 내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웃기지도 않는 소리, 오히려 수많은 전문가와 스태프들이 성범죄자들을 함께 지켜보며 촬영하고 있었다.

 

이것은 다큐멘터리 촬영에 운 나쁘게 걸려서가 아니다. 그들이 발을 붙이고 사는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영화 속 스태프와 전문가들처럼 성범죄자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다.


당신이 절대 걸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도

결국 당신은 우리에게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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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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