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언어로 주고받은 희망 -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

글 입력 2021.06.01 12:1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빅토리아 시대, ‘옥스퍼드 사전 편찬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부임한 괴짜 교수 제임스 머리는 단어의 적절한 예문을 구하지 못해 편찬에 애를 먹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고전을 풍부하게 인용한 수백 개의 예문을 담은 편지가 도착한다. 보낸 이는 닥터 윌리엄 마이너. 그의 도움으로 사전 편찬 작업에는 속도가 붙는다. 이에 제임스는 고마움의 뜻으로 완성된 사전의 초판본을 들고 윌리엄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임스는 윌리엄이 살인을 저지르고, 정신병원에 수감된 광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은 옥스퍼드 사전 편찬 당시 활약했던 교수와 광인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미 <교수와 광인>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된 적이 있다. 스무 살 때 즐겨듣던 팟캐스트 진행자의 추천으로 읽어본 적이 있는데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던 책으로 기억한다. 당시엔 책이 절판되서 도서관이나 중고 서점이 아니면 구하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재출간도 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걸 보면 기분이 묘하다.

 

 

0.jpg

 

 

여하튼 오는 6월 2일 개봉하는 <프로페서 앤 매드맨>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영화의 원제인 ‘The Professor and the Madman’은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나뉜다. 하나는 ‘교수와 광인’이란 뜻이고, 다른 하나는 ‘교수이자 광인’이라는 뜻이다.

 

책은 원제의 뜻을 후자로 본 경우다. 책은 교수인 제임스 머리와 광인인 윌리엄 마이너의 생애를 비교 기술하며 이들이 옥스퍼드 사전 편찬에 끼친 영향에 집중한다. 덕분에 책을 읽다 보면 어쩌면 천재(교수)와 광인은 정말 한 끗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조금만 더 안정적인 환경이었다면 윌리엄 마이너도 천재 소리를 들으며 평안한 삶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반면 영화는 원제의 뜻을 전자로 해석한다. 교수와 광인,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숀 펜이 연기한 윌리엄 마이너의 생애에 초점을 맞춰 용서와 구원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영화는 대사에 성경 구절을 인용하거나 클로즈업 쇼트를 자주 구사하는데 여기엔 관객이 인물의 감정과 처지에 공감하기를 바라는 감독의 의도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점 때문에 오히려 영화가 관념적이거나 조바심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2.jpg

 

 

<프로페서 앤 매드맨>을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은 배우들의 연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숀 펜의 연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이번 영화에서 숀 펜은 자기 자신을 거의 내던지다시피 하며 윌리엄 마이너라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이미 <아이 엠 샘> 같은 영화를 통해 자신의 연기력을 증명한 그였지만 이번 작품에서 숀 펜은 시선, 손의 떨림, 미세한 표정 연기 등 온몸으로 한 인물의 내면의 어두운 밑바닥을 표현한다.

 

제임스 머리 역을 맡은 멜 깁슨의 연기도 훌륭하다. 보통 멜 깁슨 하면 <매드맥스>, <패트리어트>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었듯 마초적이거나 강인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멜 깁슨은 푸짐한 풍채와 덥수룩한 수염을 통해 이미지 변신에 완벽하게 성공한다. 오죽하면 영화를 보는 내내 그가 ‘멜 깁슨’이란 걸 몰랐을 정도였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다시는 자신을 찾아오지 말라는 윌리엄의 말에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은 웬만한 로맨스 영화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애절하다.

 

이외에도 나탈리 도머, 스티브 쿠건, 에디 마산 등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모두가 등장할 때마다 자신의 몫을 제대로 챙겨가는 듯한 느낌이다. 특히 윌리엄을 치료하던 중 그가 겪는 고통에 참담해진 나머지 밖으로 나와 조용히 마음을 삭히는 먼시(에디 마산)의 모습은 영화의 베스트 장면 중 하나로 꼽고 싶을 정도다.

 

 

1.jpg

 

 

<프로페서 앤 매드맨>에는 두 세계가 존재한다. 하나는 윌리엄 마이너의 세계다. 그 세계는 폭력과 고통으로 얼룩진 전쟁터와 다름없다. 다른 하나는 제임스 머리의 세계다. 그 세계는 안정적이고 평온하다. 마치 한가로운 시골 마을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중간에 일라이자의 세계가 있다. 그녀는 원래 제임스의 세계에 살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윌리엄이 저지른 범죄로 인해 그녀의 삶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렇기에 그녀는 윌리엄을 저주한다. 윌리엄이 사죄의 뜻으로 보낸 군인연금도 받기를 거부하며 아이들과 함께 조금씩 어둠 속으로 스며든다. 한편 윌리엄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밤마다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망상에 빠진다. 극도의 불안과 죄책감은 결국 스스로를 자해하도록 만든다. 제임스 역시 곤란한 처지에 있는 건 마찬가지다. 어렵게 들어간 사전 편찬위원회 사람들은 그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견제한다. 설상가상으로 편찬 작업의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그런 가운데 영화는 서로 다른 세계에 놓인 세 인물의 관계를 통해 용서와 구원의 숭고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숭고함의 질료는 바로 ‘언어’다.

 

영화의 초반부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사전 편찬 작업을 하던 중 제임스 머리의 두 조수는 서로 의견이 달라 다툼을 벌인다. 한바탕의 소동이 지나간 후, 조수 중 하나가 사과랍시고 쪽지에 영어 단어 ‘apology(사과하다)’의 뜻을 적어 건넨다. 이를 받아본 나머지 조수는 씨익 웃으며 그의 사과를 흔쾌히 받아들인다.

 

이렇듯 영화 속의 인물들은 언어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쌓는다. 정신병원의 간수들은 젊은 간수의 목숨을 구해준 보답으로 윌리엄에게 책을 선물한다. 일라이자 역시 책을 선물하는 것으로 윌리엄에게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겠다는 대답을 한다. 이후 윌리엄은 문맹인 일라이자에게 글을 가르치고,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이해한다. 또한 윌리엄은 사전 편찬에 도움을 주기 위해 예문을 담은 편지들을 제임스에게 보내고, 제임스는 그 보답으로 옥스퍼드 사전의 초판본을 선물한다. 그들은 만날 때마다 마치 게임을 하듯 단어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아나간다.

 

그렇다면 이렇게 언어를 주고받는 행위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3.jpg

 

 

영화 속에선 사전 편찬 작업을 두고 두 견해가 대립한다. 하나는 사전 편찬에 엄격한 기준을 세워 기준에 미달하는 단어들은 싣지 말자고 주장하는 쪽이다. 이들은 영어가 고도로 세련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오염될 일만 남았다며,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자격을 충족하는 단어들만 사전에 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영어란 국가의 위신이자 자신들의 품위를 드러내는 수단인 셈이다.

 

반면 사전에 모든 단어를 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 있다. 이들은 영어가 완전무결하다고 보지 않는다. 항상 새로운 단어가 생겨나고, 뜻도 달라지는 등 세월에 따라 그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영어는 사용하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고, 영어를 사용하는 모두가 영어의 주인이다. 그렇기에 하녀들이 몰래 속삭이는 비속어나 은어조차도 사전에 담을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제임스, 윌리엄, 일라이자 등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그 목적과 가치를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어를 주고받음으로써 함께 소통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희망을 나눈다. 바로 그게 언어의 본질이다.

 

윌리엄은 글을 가르치며 일라이자를 무지의 세계에서 구원한다. 책을 선물하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윌리엄을 이해하게 된 일라이자는 마침내 그를 용서하고 사랑을 가르친다. 또한 윌리엄은 사전 편찬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제임스의 공고를 보고 단어들의 예문을 찾으며 불안을 잊는다. 그리고 그 예문들을 편지로 보내 언어의 바다를 떠도는 제임스에게 길을 제시한다. 한편 제임스는 그런 윌리엄이 형 집행정지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말하자면 이들은 언어를 통해 서로를 구원한 셈이다.

 

이러한 모습은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 의미심장하다. 오늘날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는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외에도 학벌, 계층, 사는 곳, 성적 취향(동성애), 장애, 연령 등등. 심지어 생각이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차별과 배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영화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언어를 나눌 것을, 대화를 할 것을 주문한다. 그래야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며. 그래야만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며 간곡히 호소한다. Hope. 희망.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람. 앞으로 잘 될 수 있는 가능성. 영화 속에서 그들은 언어를 통해 희망을 주고받았다. 그 희망이 현재의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기어이 서로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포스터.jpg

 

 

프로페서 앤 매드맨

- The Professor and the Madman -

 

 

감독 : P.B. 셰므란(파하드 사피니아)

 

출연

멜 깁슨, 숀 펜, 나탈리 도머,

스티브 쿠건, 에디 마산, 제니퍼 엘

 

장르 :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개봉

2021년 06월 02일

 

등급

15세 관람가

 

상영시간

124분

 

 

 

컬처리스트_이중민.jpg

 

 

[이중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39095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1.07.28, 22시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부일로205번길 54 824호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1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