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휠지언정 부러질, 그래서 스러져가는 것들에 대해 - 조중균의 세계 [도서]

글 입력 2021.06.0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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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예전부터 나에겐 다른 건 몰라도 책 읽는 것 하나 만큼은 정말 즐거운 행위였다.

 

학교에서 알 수 없는 묘한 외로움을 느끼면서 집에 돌아올 때나, 예상했던 성적이 아니어서 우울할 때면 책을 읽었다. 정확히는 문학 소설위주의 독서를 즐겼다. 그 시간만큼은 현실을 잊을 수 있었고 혹은 현실을 더 힘차게 살아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름의 시간동안 소설 위주의 편식적 독서를 해온 결과, 나의 도서 취향 정도는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외국 소설보다는 국내 소설이 좋고, 근대 소설이나 고전 소설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한국의 현대 문학이 가장 좋다는 것. 그 취향은 여전히 그리고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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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을 알기까지 몇 가지 데이터가 되어 준 소설들 중 하나에는, 바로 김금희 작가의 소설이 있다.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는 그러한 소설들 중에서도 나의 취향을 백프로 저격한 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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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듯 하면서도, 가만히 보면 평범하지 않은. 평소에 불현듯 느꼈던 갑작스러운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해야하나 고민만하다 그저 뭉뚱그려 기억 속 어딘가에 처박아두었던 것들. 그런 것들을 김금희 작가는 본인만의 문체로, 세세하고도 자연스럽게 그렇지만 어디서도 본적 없이 없는 생경한 표현으로 구체화시킨다.

 

단순한 표현에 익숙해져 대충 비슷한 감정이면 어느 정도 대충대충, 뭐 그냥 그런 느낌이야. 하며 표현해버리고 마는 나의 언어와는 다른 세계의 언어같았다. 나태주 시인의 그 유명한 시 풀꽃의 '자세히 봐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와 같은 문장이 생각나는.

 

김금희 작가의 소설들은 모두 하나같이 그런 분위기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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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두번째 목차에 실린 단편 소설 '조중균의 세계'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

 

소설은 조중균이라는 한 남성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주인공의 눈을 빌려 그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그 세계가 여러모로 많은 사회 속 개인들의 세계를 대변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에서 도서의 교정과 검수를 맡고 있는 비정규직 직원 조중균씨는 조용하고 조금은 예민한 사람이다.

 

업무 중 누군가가 내는 무의식적인 소음에도 흠칫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귀마개를 끼고 교정 작업을 한다. 그리고 조중균씨는 우직하고, 고집있다. 흔히들 말하는 유도리라는 것 따위는 찾아볼 수 없으며, 원칙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a를 하라고 하면 a'에 대한 건 쳐다도 안 볼 정도의 그런 사람이다.

 

상사는 그런 조중균씨를 못마땅해하며 툭하면 주인공과 주변인들에게 그의 흉을 본다. 직접적으로 볼때도 있고, 에둘러 이야기할 때도 있다. 그런 조중균씨를 보는데 왜인지 답답하다거나 이상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소설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그의 고집을 소신으로 느껴지게 했고 주류라는 존재를 개의치 않아하는 사람처럼 그려냈다. 나의 주관적인 감상이기에 또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때론 그의 우직함이 조금은 안쓰러웠다.

 

다들 모른 척 그렇게 사는 세상인데 왜 당신은 그렇게 어렵게 사느냐고. 부러우면서도 안타까운 물음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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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중반부터 그의 우직함이 더욱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 노교수가 자신이 집필한 옛 저작을 학교 수업 때 교재로 쓰기위한 재출판 작업을 주인공네 회사에 요청했다. 업무가 많다보니 어느 정도 대충 교정보고 빨리 인쇄작업으로 넘어가게끔 하라는 상사의 지시는 조중균씨 앞에서 보기 좋게 뒤틀렸다.

 

각종 논문과 용어집, 백과사전을 가져와 교정작업의 모든 걸 완수해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조중균씨였기 때문이다. 작업의 기간은 하릴없이 늘어만 가고, 노교수의 항의전화와 상사인 부장의 난처한 기색 또한 늘어간다. 그리고 부장이 조중균씨의 작업량을 시간대별로 체크하라 주인공에게 지시한다.

 

이 책 조중균의 세계를 읽으면서 이 지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그 쯤되면 그만할법도 한데, 조중균씨는 주인공에게 다가와서 자신의 수첩을 내민다. 날짜와 시간, 그리고 그옆엔 '나는 나태하지 않았습니다.'를 적은 조중균씨의 글씨. 그 옆에다 주인공에게 싸인을 해달라 내민 것이다.

 

조중균 씨는 그런 사람이다. 부드럽고도 강한 자기만의 세계를 지닌 사람.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세계는 여실히 드러난다. 어떤 권력이나 강한 힘 앞에서도 휘지 않는 그만의 세계가 따듯하고 우직하게 보였지만 때론 알 수 없는 처연함을 느끼곤 했다. 그의 세계는 매번 휘지 않았지만 그 대신 부러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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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균씨의 세계를 직간접적으로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거대한 세계를 떠올렸다. 사회의 어떤 측면에서든 변화를 선도하고 주류를 만들어내는 거대한 흐름이 있다. 그에 올라타지 않을 선택권이 주어지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러지 않는 개인에게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사회는 부여한다.

 

그리고 변화에 적응하지 않을 선택을 했으니 그에 따른 책임이라고 종종 사회는 설명한다. 그럴 때마다 마치 옳은 길을 가지 않았으니 너는 어느 정도의 불이익을 감수해야한다는 논리가 함께 느껴진다.

 

인간 사회는 꼭 변화에 적응해야만 하는 걸까? 변화하지 않을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건가. 설령 변화와 주류를 향한 선택은 편리하다 할지라도 좀 더 자신의 신념에 가까운 불편함을 감수하겠다는 이들에게 왜 은근한 비웃음이 따르는 것이며, 나조차 왜 그런 사실에 익숙한가. 해고당한 조중균씨를 지켜보면서 자꾸만 그런 복잡미묘한 감상을 했다. 부럽고도 약한 조중균씨의 세계는 정말 나에게 한없이 부러운 세계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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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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