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간의 호흡을 그리는 화가, 최백호 [미술/전시]

가수, 화가, 무엇보다도 사람 최백호
글 입력 2021.05.31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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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호라는 가수에 대하여, 이런 얕은 내가 감히 말해도 되는가, 생각해본다. 저 쓸쓸함이 나에게서 나오지는 않기를 바라는 목소리에 대하여.

 

단 몇 분의 그의 노래도 이 젊은이는 모든 구절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가 없겠다. 깊은 눈이 탐이 나다가도, 발 끝부터 켜켜이 쌓였을 시간들이 무섭다. 내가 감히 탐을 내었는가.

 

옷깃을 적셔도 여의치 않을 만큼 적당한 비가 내리는 날, 늘어선 버들길 가운데 잠시 넋을 놓고 선 내 앞에 놓인 조금 축축한 오래된 의자 하나.

 

이 의자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하면. 필시 같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던 몸체가 그다지 굵지는 않지만, 단단하고 적어도 서너번의 꺾임이 있는 거친 굴곡을 가진 노송으로 만들어졌으리라.

 

 

나무 (2021).jpg
@띠오아트

 

 

26점의 나무 그림을 시작으로 2009년에 처음 선보인 최백호님은 올해 2월, 배우 강리나님과 함께 다시 세상에 그림을 내보였다. 어린 시절 학교의 등나무 세 그루가 70여년의 긴 시간동안 따라왔고, 최백호는 여전히 나무만 화폭에 담는다.

 

 

"시시때때로 변해가는 인간세상과 무관하게 자신의 모습을 버리지 않고 항상 묵묵히 살아남아 있지 않은가?"

 

- 최백호

 


나는 반박한다. 나무는 분명 변한다. 계절에 따라 변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높이 닿으려 애쓰며 한 꺼풀씩 나이테로 둘러싸고 바깥으로부터 숨어든다.

 

순간, 밑동부터 가지까지 두껍고 단단한 몸체를 가진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휘몰아쳐 나무에 매달린 초록잎들이 옆으로 누울 지경이더라도 그 몸뚱이만큼은 올곧다. 나무의 뿌리까지 보일 필요가 없을만큼 기둥에서 묵묵히 쌓아온 강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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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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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11

 

 

그 두께는 숨어든 것이 아니라 견뎌냈다는 증표이고, 가장 가운데에 있을 본연을 지켜내는 방법으로 살아남았다는 표식이다. 그를 괴롭히는 캔버스의 나머지 부분은 계속 변덕스럽다. 시끄럽기도 하고, 무자비한 불의 색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나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뿌리이나, 그것을 내보여서는 안된다. 뿌리는 생명을 위해 흙 속에 위치하고, 뿌리까지 캐어볼 필요는 없다. 몸체의 유기체들이 충분히 강건함을 드러낼 수 있다. 뿌리의 내실은 밖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파리들 역시 몸체를 잠시 방문하는 존재다. 그래서 자칫 대나무로 보일수도 있을 만큼 기둥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무가 고향을 떠나 외로운 현대인들을 나타낸다고도 언급한 최백호님의 그림에는 대부분 여러 그루의 나무가 함께 한다. 명백히 외로운 그들을 외로이 두지 않기 위함인지.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그림들을 처음 보았을 때 기둥만 있는 나무들의 연속을 보면 누구든 그렇게 느낄 것이다. 최백호님의 노래도 그러했다. 씁쓸하고 쓸쓸하다고만 생각했다.

 

한 겨울에 눈이 덮힌 언덕에 홀로 서서 잔뜩 덮힌 눈 사이로 살짝 초록빛을 내비치는 사철나무같이, 한꺼풀 안쪽을 들여다보면 온기가 느껴진다.

 

음악과 화풍이 이렇게 같은 방향을 향한다. 나의 것도 이토록 솔직하고 묵직한 인생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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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19

 

 

노송도 이리저리 꺾인 모습만 가지지 않는다. 나는 그런 모습일 거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내가 이런 단단함을 가진 사람이 되어갈 수 있을까. 또 새로이 태어날 젊은이를 위로할 의자가 될만한 사람이 되어갈 수 있을까.

 

 

"여든에는 여든의 호흡으로 노래하면 된다."

 

- 최백호

 

 

호흡이라. 현대를 살면서, 미래의 호흡을 미리 가져다가 써버리지는 않았는가. 또는 이 속도로 여든까지 버텨낼 재간이 있는가. 달리는 법 밖에 모르는 현대의 이 인간이 삶의 순간, 단편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게. 최고 속력을 조절할 수 있게.

 

어쩌면 나무를 통해 ‘호흡’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볼 필요가 있다. 충분히 젊은이들에게 보여주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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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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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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